국내 벤처대출 공백…대전서 한국형 SVB 출범 예정
이제 첫발…중기 이후 스타트업 자금난 당분간 지속
"될 만한 곳 중심으로 솎아내는 작업 가까울 것"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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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스타트업 시장을 향하는 투자금이 마르며 '죽음의 계곡(데스밸리)'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물밑에서 추진해 온 한국형 실리콘밸리은행그룹(SVB) 도입이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정부 출범부터 거론된 지역 공약이었던 만큼 대전시가 중심이 되어 연내 투자청을 신설한 뒤 순차적으로 한국형 SVB를 도입한다는 복안이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SVB를 찾아 대전투자청 설립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이 시장은 SVB 경영진과 간담회를 열고 스타트업 대출 체계 마련 및 리스크 관리 방안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동시에 대전투자청 설립에 출자 참여 등 지원을 요청했다.
SVB는 198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된 벤처투자 전문 금융기관이다. 설립 초기부터 초기 혁신벤처기업에 대출 형태로 자금 공급을 수행하며 벤처 대출(venture debt) 시장을 선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설립 이후 3만개 이상의 벤처기업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해왔다. 2021년말 기준 자산 총계는 약 262조원, 순이익은 2조3000억원에 달한다.
대전시가 SVB와 접촉하는 것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중기 이후 스타트업의 자금난을 지원할 벤처 대출 시장이 공백에 가깝기 때문이다.
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국내 스타트업에 흘러간 투자금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조원가량 줄어들었다. 하반기 금리가 치솟으며 스타트업 전반 기업 가치 논리가 깨지기 시작한 데다 출자자(LP)들이 지갑을 닫은 여파로 풀이된다. 기업공개(IPO) 시장마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되며 중기 이후 스타트업의 자금난이 본격화하는 중이다.
스타트업의 경우 자본력이 부족하고 보유 무형자산의 담보 능력이 없어 일반 은행 대출이 불가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일부 스타트업이 민간 투자사가 투자조건부 융자 형태로 벤처 대출을 진행한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SVB와 같은 전문 금융기관 수준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나마 최근 들어 극초기인 시드 투자나 시리즈 A 단계 스타트업이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그러나 중기 이후 스타트업들은 앞서 인정받은 몸값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늘며 기존 투자사와 갈등을 빚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전시가 대전투자청 설립을 앞두고 SVB와 협력을 추진하면서 일단은 한국형 SVB 도입이 첫 발을 디뎠다는 평이다.
대전시는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신기술 금융회사 형태의 대전투자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역 기반 기업금융중심은행 설립을 공약했던 만큼 대전시가 대전투자청을 설립해 향후 한국형 SVB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대전투자청은 올 상반기 중 금융위원회 등록을 마치고 연말 개청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적자금 500억을 출자한 뒤 민간자금을 유치할 계획인데, 신한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 KDB산업은행, 고려신용정보 등이 투자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장 대전투자청에 이어 대전시에 기업금융중심은행이 신설되기까지 스타트업 시장의 자금난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전투자청이 연내 출범하더라도 5000억원 이상의 펀드를 결성해 기업금융중심은행을 설립해야 하는 데다, 벤처기업이 보유한 무형자산을 담보로 활용하자면 IP(지적재산권) 금융 등 기법 활성화 등 선결 과제 역시 적지 않다.
투자 업계에서는 정부가 벤처 대출 시장 조성에 힘을 실어주는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현금 관리를 못한 스타트업을 살려주는 용도가 되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위나 중기부 등 당국 차원에서도 될 만한 스타트업을 솎아내는 작업이 더 중요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전해진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당분간 고금리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데 벤처 대출 등 금융기법이 부족해서 기껏 키워놓은 스타트업들을 말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정부에서도 관심이 많다. 아직은 시일이 필요할 것"이라며 "그러나 곳간 관리를 못한 스타트업 전반이 대상이 되긴 어렵고 될성부른 떡잎을 중심으로 솎아내는 작업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