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스·한결, LKB·린 합병 등 대형화 시도 주목
부티크 로펌, 기존 파이프라인 영업 한계 시선도
중소사간 합병, 대형사로 흡수 등 이어질까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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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처음 변호사가 배출된 2012년말 국내 법무법인 사무소는 630곳, 소속 변호사 수는 5303명이었다. 10년이 지난 현재는 법무법인 사무소 1436곳, 소속 변호사 1만4368명(작년 11월말 기준)으로 늘었다. 대형 법무법인들이 큰 시장에서 존재감을 강화하는 사이 틈새 시장을 노린 중소형사들도 빠르게 생겨났다.
중소형 로펌 중에는 헌법재판소, 감사원, 법원 등의 퇴임 전관(前官)이 설립한 경우가 많다. 풍부한 업무 경험과 배경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법무법인 내 이해관계로 갈라지거나, 비용과 위험을 절감하기 위해 간판만 함께 내건 곳도 적지 않다. 다만 이런 곳들은 경쟁력을 갖추기 쉽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은 대형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들이 의기투합하는 사례가 잦았다. 송무나 자문, 국제중재, 스타트업, IT테크 등 특장점을 앞세워 ‘부티크 로펌’이라 불린 곳들이다. 대형 로펌에서 실무를 도맡지만 위로 올라갈 자리가 많지 않다고 생각한 전문가들이 독립한 경우가 많다. 기존 고객과 관계를 유지하고 법률자문 시장도 매년 꾸준히 성장했기 때문에 살림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최근 들어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 로펌들은 2020~2021년 자문 시장에서 ‘코로나 특수’를 누렸지만, 불과 1년 새 유동성의 힘이 사라지며 먹거리도 줄었다. 송무 분야에선 돈이 되는 ‘대기업’ ‘오너’ 일감이 뜸해졌다. 경쟁 격화에 대형 로펌까지 염가 수임에 나서며 중소형사의 입지는 좁아졌다. 과거엔 특정 영역에서의 전문성이 무기였다면, 이제는 비어있는 영역의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되는 분위기다.
법무법인들이 의기투합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불확실성에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갖추기 위해 '대형화' 전략을 펴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클라스와 한결이 합병하기로 뜻을 모았다. 감사원장 출신 황찬현 변호사가 2018년 세운 클라스는 송무, 헌법재판관을 지낸 송두환 변호사 등이 설립한 한결은 부동산·건설·자문 분야에 강점이 있다. 판사 출신 이광범 변호사가 2011년 설립한 LKB앤파트너스와 김앤장 출신 임진석 변호사가 2017년 세운 린도 합병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초동 김앤장’ LKB앤파트너스는 형사 송무, 린은 기업 자문에서 전문성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합병하면 대형 로펌으로 가는 기틀을 닦게 된다.
부티크 로펌들이 독자 노선을 계속 걸을 것인지도 관심사다. 이전까지는 대형 일감이나 우량 고객 일부만 잡고 있어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KL파트너스는 수백억원대 보수가 예상되는 론스타 국제중재 일감이 있어 독립할 수 있었다. 다른 부티크 로펌의 변호사는 대기업 오너 자문으로 수백억원의 수입을 챙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일감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피터앤킴(국제중재, 대표변호사 김갑유)처럼 중소형사가 한 시장을 꽉 쥐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몇몇 파이프라인에만 의존하는 영업 방식이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견들이 나온다. 기존에 하지 않던 영역을 다루기엔 인력과 조직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전관을 모시고 전문 변호사를 끌어오는 시도가 이어졌으나 세무, 특허 등까지 영역을 넓히기엔 한계가 있다.
로펌 설립자들은 자기 ‘브랜드’를 내려 놓기 쉽지 않은데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다. 여유가 있는 대형 로펌은 수임이 용이하고 업무 부담도 분산할 수 있지만, 소규모 로펌들은 구성원 모두가 최고 수준의 업무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런 실력있는 인력을 대형 로펌보다 좋은 조건에 영입하기는 어렵다.
이전에도 부티크 로펌간의 합종연횡, 대형 법무법인으로의 흡수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KL파트너스(자문·국제중재), 기현(기업법무), LAB파트너스(M&A·금융), 세움(스타트업·IT) 등 역량있는 곳들의 향방에 시선이 모이고 있다.
실제 일부 로펌들은 합병 안건을 테이블에 올렸지만 의견을 모으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존심을 건 매출 경쟁을 벌이는 수위권 대형 로펌들도 아직까지 색채가 선명한 부티크 로펌들에 계속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부티크 로펌도 대형사로 들어가면 일감 걱정은 덜 수 있다. 올해가 대형 로펌과 부티크 로펌간 연합의 분수령이 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현재 사업이 잘 되고 있는 부티크 로펌에서도 합병 바람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 부티크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중소 로펌들도 팬데믹 구간 초호황을 누렸지만 시장이 침체하면서 파이프라인 하나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중소 로펌들은 저마다 색깔이 강해 합쳐지기 어렵지만 올해 전망이 워낙 불투명하다보니 합병 사례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