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마케팅 수단 그친단 평…투자자 판단엔 혼란
2년내 ESG 의무공시…관련 대응 성과 곧 가려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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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금융지주는 모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부문에서 소위 우등생으로 꼽힌다. 어느 한 곳 가릴 것 없이 각종 이니셔티브나 인증 사업 등지에서 '최초' 또는 '최대', '최다'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내건 타이틀들은 투자자 입장에서 ESG 관련 실제 역량을 비교·평가하는 데 가림막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년 후 의무공시 시점이 닥치면 비로소 본 실력이 가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각사 마케팅 역량이 아니라 이사회가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고 전향적으로 대응해 왔는지가 여실히 드러날 거란 얘기다.
한국ESG기준원(KCGS)은 지난해 신한지주와 KB금융의 ESG 등급을 각각 A+ 등급으로,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은 각각 A 등급으로 평가했다. 하나금융의 경우 지배구조(G)에서 A 등급을 받았고 우리금융은 환경(E)에서 A 등급을, 지배구조에서 B+ 등급을 받아 신한·KB보다 한 단계 낮게 평가됐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 등급을 믿고 투자할 수 있을까. 시장에선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아직까지 KCGS의 등급 평가만으로는 누가 지속 가능한 경영 능력을 갖추었는지 비교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장기 투자를 고려한다면 차라리 각 지주의 배당 정책이나 총주주수익률을 따져보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직까지 ESG 역량을 가를 만한 통일된 정보 체계도 마련되지 않은 데다 이를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각 산업에 반영하기 위한 연구도 한창 진행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KCGS가 구축한 등급 평가 모델' 내에서 신한·KB가 하나·우리보다 한 등급 높게 평가됐다는 해석 정도만 가능하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한 임원은 "한국ESG기준원 외에도 신용평가업체, 투자자문사, 정부 부처 및 산하 연구기관, 부티크 컨설팅펌 등 각계각층이 난립해 평가·인증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결과치들의 일관성은 50%에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라며 "누구를 찾아가느냐에 따라 ESG 역량이 들쭉날쭉하다는 얘기다. 아직 글로벌 표준이 마련되기 이전이고 규제가 본격화하기 전이다 보니 마케팅 수단 정도로 활용되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예를들자면, KB금융은 지난 19일 국내 금융사 중 유일하게 '2023 글로벌 지속가능 100대 기업'에 선정됐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선정 주체는 글로벌 ESG투자자문 그룹인 코퍼레이트 나이츠다. KB금융은 KCGS 등급 평가에서 신한지주와 함께 A+ 등급을 받았는데, 코퍼레이트 나이츠에서 선정한 지속가능 100대 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다고 하니 마치 국내 금융사 중에선 최고 수준의 ESG 역량을 갖춘 것처럼 비친다.
국내 기업의 ESG 공시 대응을 자문 중인 컨설팅 업계의 평가를 종합하면, 실제로 KB금융은 경쟁사에 비해 대응 수준이 높은 편에 속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시장에선 각사가 진행하는 이 같은 마케팅이 기업의 실질적인 ESG 대응 노력과 역량을 판단하는 데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내 '유일', '최장' 등 타이틀이 늘어날수록 투자자 입장에서 판단이 어려워질 뿐이란 얘기다.
지금은 마케팅에 가려져 있지만 ESG 의무공시 시점이 다가오면 어차피 본 실력이 드러날 예정이다.
올 들어 국제회계기준원(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오는 6월 스코프 3(Scope 3) 의무공시 규정을 발표할 예정이라 밝혔다. Scope 3는 기업 활동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가운데 기업 외부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가리킨다. 금융사 입장에선 보유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 배출 기여도를 측정하는 작업에 해당한다.
ISSB가 순차적으로 마련 중인 의무공시 규정은 IFRS가 글로벌 재무정보 공시 표준으로 자리매김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국내 기업이 따라야 할 ESG 공시 기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자산규모 2조원 이상 상장사인 국내 4대 금융지주는 2025년까지 이 기준에 맞춰 ESG 공시 준비를 마쳐야 한다.
4대 금융지주 모두 Scope 3 공시를 대비해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에 가입해 차례로 인증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 사이에선 내용 측면에서 대응 수준에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컨설팅 업계 한 전문가는 "4대 금융지주 모두 국내 금융사 중에선 선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특정 이니셔티브에서 인증 시점이 빠르다거나 횟수가 많다거나 하는 점과 무관하게 격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ESG 공시 대응이 글로벌 자본시장 활용도 측면에서 격차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사회가 보유한 전문성이나 관심에 따라 이런 차이가 두드러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