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요구 모두 수용시 사실상 아시아나 공중분해
실익 없거나 무산될 가능성 고려해야 한다 지적도
무산 시 새 기업 물색·UAE 자금 활용 가능성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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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이 해외 경쟁당국에 막혀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 해외의 요구에 다 맞추자니 사실상 아시아나항공을 공중분해하는 결과가 되고 M&A 실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사자들은 최대한 빨리 거래를 마무리한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점차 M&A 무산에 대비한 계획이 부상할 가능성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다.
2020년 산업은행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되자 대한항공으로의 매각을 추진했는데 2년여가 지나도록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이 거래는 전형적인 수평결합(경쟁사간 기업결합)으로 각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깐깐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4개국의 심사가 남아 있는데, 이 중 유럽연합(EU)과 미국의 벽이 특히 높은 분위기다. 미국은 당초 예정과 달리 해를 넘겨 올해도 심사를 이어가고 있다. EU도 조만간 2단계 심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상 상반기 결론 도출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수익성이 좋은 노선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지배력 강화가, 수익성이 떨어지는 노선은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을 받아줄 곳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한 곳의 슬롯을 내놓으려 해도 항공동맹을 맺고 있는 항공사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미국 항공사의 영향력과 로비력을 감안하면 미국 법무부도 ‘어느 한쪽의 슬롯을 줄이라’는 조건을 부가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EU 집행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 역시 경쟁제한성을 문제 삼고 있다. 유럽 주요 공항의 슬롯이나 운수권(항공편을 취항할 수 있는 권리)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은 런던 히스로 노선 하나뿐이라 아시아나항공의 슬롯을 현지 항공사에 양보해도 큰 문제가 없지만 유럽은 파리, 베를린, 로마, 바르셀로나 등 핵심 노선이 많다. 아시아나항공의 사업을 모두 포기하자니 애초 기대한 M&A의 실익이 사라지고, 유지하자니 기업결합 승인의 벽이 높다.
대한항공은 계획대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사실상 공중분해 된 상태에서 인수하더라도 경쟁자를 줄인다는 면에서 이득이다. 산업은행에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와 해외 기업결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우리 정부가 힘을 실어준다 하더라도 해외 경쟁당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란 평가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실패 사례처럼 핵심 시장에서 기업결합 승인을 얻지 못하면 M&A는 무산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EU의 시각이 완고한 터라 이제는 노딜(No deal)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시 대응책, 즉 플랜B를 검토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시선이 많아지는 분위기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 경영진은 아시아나항공이 공중분해돼도 밑질 것이 없고 기업결합 승인도 낙관적으로 보는 분위기”라며 “그러나 실제로는 EU·미국의 승인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거래 무산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고 산업은행 주변에서도 플랜B 가능성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M&A 업계 관계자는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EU와 미국 쪽 심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 시장의 일치된 평가”라며 “거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대놓고 움직이기 어렵겠지만 산업은행 입장에서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사들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화물운송사업 호조 및 리오프닝에 따른 여객 수요 회복 등으로 실적이 반등했다. 대한항공은 팬데믹 첫해 별도기준 매출 7조4050억원, 영업이익 2383억원을 기록했는데 작년엔 잠정 매출 13조4127억원, 영업이익 2조8836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2020년 631억원 적자를 냈던 아시아나항공도 작년 3분기까지 6175억원의 이익을 기록했다. 재무구조는 여전히 취약하지만 대한항공 외에 선택지가 없다고 단언하던 때보다는 영업 사정이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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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해외 기업결합 승인 문제로 거래가 불가피하게 무산된다면 ‘기안자’인 산업은행의 입지가 난처해진다. 다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지원을 도맡을 여력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인수자를 빨리 찾아야 한다. 주요 대기업들도 재무 압박이 커진 상황이라 항공사 인수에 부담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올해 다시 화물 운송 실적이 감소하고, 여객 증가에 따른 비용도 함께 늘어날 것이란 예상도 있다.
그러나 정부와 산업은행이 한진칼 수준의 지원을 해주면 아시아나항공을 살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매각 시도 때는 HDC현대산업개발 외에 GS그룹, SK그룹 등이 인수를 검토하거나 잠재 인수자로 거론됐었다. 일각에선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무산되자마자 한화그룹을 모셔오는 ‘깜짝 성과’를 낸 전례가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기업 정리에서 ‘컨소시엄’ 구성에 관대한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등 사절단과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방문해 UAE 국부펀드 ‘무바달라’ 등으로부터 300억달러(약 38조원)를 유치했다. 투자 분야는 아직 미정인데 UAE는 한국 정부와 기업의 의견을 들어 투자처를 정하기로 했다. 관련법상 외국인, 외국 정부나 공공단체 및 법인은 항공사업 면허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주체들이 지분 50% 미만을 소유한 법인은 이론적으로 인수자로 나설 수 있다.
또 다른 M&A 업계 관계자는 “시나리오 차원에서 UAE 투자금을 아시아나항공에 넣으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며 “외국 자금이라 쉽지 않지만 국내에 홀딩컴퍼니를 만들고 정부가 투자 승인을 도와주면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플랜B, 플랜C와 등은 아시아나항공 M&A가 공식적으로 무산되기 전까지는 드러나기 어렵다. 산업은행과 대한항공 역시 거래 종결을 최우선으로 하는 분위기다. 시장에도 공식·비공식적으로 차질없이 진행 중이라는 뜻을 내비치는 것으로 전해진다.
M&A 무산 시 대안 검토 가능성에 대해 산업은행 측은 “기업결합 관련 대응은 대한항공에서 전담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대한항공 역시 “각국 경쟁당국에서 보완하라고 하는 자료를 다 제출하고 있으며 최대한 빨리 절차를 끝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