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소유구조'와 '지배구조' 교묘히 섞인 개혁 당위
이 둘 별개인 것 모를리 없는데…진의 두고 '설왕설래'
개혁 빌미로 특허發 수혜 기업 쥐어짜내는 거란 평도
前정부 대비 '자리'도 부족하고…'회장님 놀이' 괘씸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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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정부 투자 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하며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소유가 분산된 형태로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으니 절차와 방식에 있어 공정성 ·투명성이 보장될 수 있게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경영 관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소유 분산 기업은 소위 주인(지배주주) 없는 기업을 말한다. 대통령은 이를 콕 집어 견제가 필요하다 말한 셈이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가 속도감 있게 후속 조치에 나서자 시장은 은행지주 주식을 내던지고 있다. 정부 철학이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정상화에 있고, '이자장사'로 '돈잔치' 벌이던 은행이 드디어 핵심 개혁 대상에 오른 구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간 은행지주 업태에 문제가 없지 않겠지만 개혁이라기엔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엉성하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국정책임자의 발언이라기엔 정부당국이 기업의 소유구조와 지배구조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준다는 평가다. 정부가 보기엔 소유 분산 기업의 지배구조가 더 엉망이라는 건지, 소위 오너 기업은 상대적으로 스튜어드십으로부터 자유로워도 괜찮다는 건지 뒷말이 무성하다.
기업의 주인이 있냐, 없냐는 지배구조와 별개 문제다. 어느 쪽이건 기업 의사결정이 독립성, 전문성을 갖춘 이사회 중심으로 굴러가지 않으면 지배구조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특히 상장사의 경우 이사회가 회사, 즉 전체 주주의 이익을 성실하게, 충직하게 대변하지 못할 경우 기관투자자를 비롯한 주주의 적극적인 관여와 개입이 필요하다. 실제로 현재 시장 이슈 대부분을 집어삼킨 행동주의 펀드들은 오너기업과 소유 분산 기업을 가리지 않고 주주행동을 벌이고 있다. 모두 이사회가 제구실을 못한 곳들이다.
정부당국 전문성이 떨어져서 소유구조와 지배구조 문제를 혼동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 둘을 교묘히 섞어서 국정동력으로 삼겠다는 건지, 진의를 유추하기 위한 설왕설래가 한창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음모론도 나온다. 개혁을 가장해 정부 덕에 수혜를 누린 기업을 쥐어짜 민생 안정을 꾀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대통령은 소유 분산 기업에 이어 정부 특허로 진입장벽을 구축해 과점 수혜를 누리는 산업에 대해서도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들에게도 이익 일부를 사회에 돌리라는 압박이 전해진다. 이렇게 보면 은행지주뿐 아니라 통신 3사도 개혁 대상에 오른 셈이다. 은행이 소유 분산 구조에, 과점에, 이자장사까지 더해져 '삼진'을 당한 모양새일 뿐 현재 정부가 압박을 가하는 대상은 은행에 한정되지 않는다.
은행과 통신사업자의 공통점은 지난해 갑작스러운 기준금리 인상 국면에서 '무풍지대'에 있었다는 점이다. 은행업은 금리가 오를수록 돈을 더 버는 라이선스고, 통신사업은 경기와 무관하게 일정한 수익을 남기는 라이선스로 통한다. 실제로 증권가에선 지난해 시장 경색으로 조달난이 한창일 때 은행은 '노가 난' 곳으로, 통신 3사는 '태평한' 곳으로 통하기도 했다.
당시 증권사 한 RM은 "담당하고 있는 통신사를 방문하면 우리랑 다른 시장에 속해 있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안락한 분위기"라며 "원래도 발행 금리를 산정할 때 갑질이 많았지만, 이런 상황에서마저 증권사 팔 비틀어 시장 금리 아래로 조달하려는 통신사를 보면서 경기가 엉망일수록 정부가 발급한 라이선스가 깡패라는 걸 새삼 느꼈다"라고 전했다.
정부가 실제로 추가 라이선스를 발급해 경쟁 촉진에 나설지 알기 어렵지만 쉽지 않을 거란 시각이 우세하다. 이렇게 보자면 개혁은 빌미고, 정부가 내준 내준 특허로 수혜를 누린 사업자들에 사후 정산 식으로 사회 환원을 요구하는 거란 분석이 얼추 들어맞는다. 은행권은 물론 통신3사도 부랴부랴 사회 환원이나 소비자 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마침 대출 금리와 통신요금 부담이 전에 없이 커진 터라 여론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전임 정부에 비해 정권 출범 수훈자들에 나눠 줄 자리가 부족해서란 분석도 적지 않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전임 정부에서 시중 유동성이 막대하게 풀려났던 만큼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이나 모험자본 육성 등 새로 벌일 사업이 많았는데, 이번 정부는 그 끝물에 출범하면서 활용 가능한 자릿수 자체가 적은 편"이라며 "그러니 인허가나 인사권 등을 활용해 주인 없는 기업부터 흔드는 것이란 시각이 많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과점 지위를 부여받은 소유 분산 기업은 4대 은행지주 외 KT도 포함된다. 실제로 지난 연말 신한금융을 시작으로 연초 우리금융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수장이 교체됐는데, KT도 차기 회장 선임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3월 주총 시즌을 앞두고 은행지주 사외이사 자리엔 벌써부터 정부와 연이 있는 인사 중심의 하마평이 돌고 있다. 이달 들어 공기업 사장 자리에 대선캠프 출신 인사가 내정되며 '낙하산' 인사가 본격화할 거란 전망도 늘어나고 있다.
일각에선 주인도 아니면서 '회장님 놀이' 해온 기업들에 대한 괘씸죄를 묻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소유 분산 기업들이 정부 압박에도 방을 비우지 않고 버티는 모양새였던 데다, 소유 분산 기업만 콕 집어 문제 삼는 것이 꼭 과거 재벌해체 주장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다. 시장 우려에도 불구하고 연임 횟수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등 방안이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