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매출 비중 큰 SK하이닉스…"삼성전자보다 부담 클 것"
美 지원금 수령 않는 안도 제기…"결정 자체가 쉽지는 않을 듯"
-
"차라리 SK하이닉스가 보조금을 받지 않는 편이 어떻겠나" (한 운용사 주식운용역)
미국의 반도체지원 및 과학법, 이른바 '칩스법(Chips Act)'의 보조금 지급 기준에 중국 견제 기조가 여실히 드러나며 중국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SK하이닉스의 결정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기관투자자(이하 기관)들은 또다른 보조금 수혜 대상인 삼성전자보다도 SK하이닉스가, 보조금을 지원받을 경우 감내할 손실이 크다는 부분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28일 미국 상무부는 칩스법 보조금 신청절차 및 기준을 발표했다. 지원 조건으로는 ▲국가안보 지원 ▲초과이익 환수 ▲인력양성 ▲공급과잉 해소 협력 ▲가드레일(안전장치) 등 6가지를 제시했다. 지난해 8월 공표된 칩스법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25%의 세액공제(인센티브)를 해주는 내용이 골자다.
구체화된 조건들에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오가는 와중, 여전히 기관들은 '가드레일 조항'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가드레일 조항에 따르면 미국 정부로부터 세액 공제나 보조금을 지원받는 기업들은 향후 10년간 중국을 비롯한 우려 국가에 첨단 반도체 시설을 짓거나 추가로 투자하지 못하며 이를 어길 시 지원금을 전액 반환해야 한다. 향후 가드레일 조항 관련 구체화된 가이드라인이 새로 나올 전망인 가운데, 중국 매출 비중이 없진 않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결정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 운용사 운용역은 "반도체 부문은 한국의 시장점유율이 큰 시장이어서 협상을 계속 이어간다면 돌파구가 있을 것이라곤 본다"라면서도 "칩스법 공표 이후부터 줄곧 이어져 온 중국 견제 기조가 오히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을 키울 것으로 보여진다"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지원금 수령 시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SK하이닉스의 중국 매출 비중은 25%로 전분기 대비 5%가량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삼성전자(9.64%)에 비해선 높은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낸드)만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면, SK하이닉스는 낸드 뿐 아니라 D램(DRAM)도 중국에서 생산 중이다.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생산 비중도 지난해 3분기 기준 낸드와 D램 각각 25%, 46% 수준이다.
중국 다롄공장 활용법 고민도 부담이다. SK하이닉스는 2021년말 인텔 낸드사업부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중국 내 생산공장 또한 인수했다. 미국의 중국 반도체 굴기 견제에 따라 넘겨받은 중국 공장에 대한 투자 계획을 세우기도 쉽지 않아졌다. 일단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적용은 1년간 유예되긴 했으나, 연장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와 관련한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해 4분기 컨퍼런스콜 이후 삼성증권 리서치센터는 보고서를 통해 "실적발표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언급이 거의 되지 않은 것이 중국 공장에 대한 활용계획"이라며 "미국의 대중국 장비 수출 규제로 1년 유예를 받고 있으나 추가적인 라이선스를 장담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 제품의 경쟁력 약화 또한 우려된다. 통상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매년 공정장비를 새로 들여와 공정전환을 해야만 기술과 원가 측면에서의 경쟁력 유지가 가능하다. 칩스법 보조금을 받고 나면 중국 내 공장에 대한 추가 투자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10월 만료되는 유예기간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중국 우시 공장에서 최첨단 설비로의 교체가 불가능해진다. 경기 이천시에 위치한 사업장에서 첨단 작업을 한 다음 중국 우시 공장으로 옮기거나 해야 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추가적인 운송비용이나 관리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칩스법 지원금을 받지 않는 안이 거론되기도 한다. 일단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반도체 관련 투자를 집행한 바가 없다보니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을 두 곳 보유한 삼성전자에 비해 지원금 수령 여부를 결정할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울 것이란 지적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 들어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을 위한 부지를 물색 중인데, 착공과 관련해 구체화된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 감소로 인한 실적 악화에 더해 거대한 차입금을 감수하면서까지 추진했던 인텔의 낸드사업부 인수 결정이 악수가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라며 "미국 법안이 아직 확정된 상황이 아닌 까닭에, SK하이닉스가 지원금을 받지 않을 경우 SK그룹에 미칠 영향까지는 우려할 상황은 아니긴 하지만, 쉽게 미국 지원금을 받지 않는 안을 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측은 "보조금 관련 제시된 조건들을 검토 중인 상태로 밝힐 수 있는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