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뿐 아니라 보험, 카드, 증권 등도 압박
잇따른 관치에 해외투자자 이탈
부작용 만만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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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부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경영 간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은행을 시작으로 보험, 카드, 증권으로까지 금융당국의 칼날이 향하고 있다. 금융지주 산하 계열사들이 금융당국의 표적이 되면서 사업계획 짜기도 힘들다는 '곡소리'가 나고 있다. 해외 투자자도 관치(官治)의 정도가 과도하다는 우려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잇따라 은행 영업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하나은행, KB국민은행, BNK부산은행에 이어 신한은행, DGB대구은행 등 방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원장이 방문할때마다, 은행들은 약속한 듯 금리 인하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 9일 KB국민은행 방문 당시에는 KB국민은행은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 전 상품에 대해 금리 인하를 단행하겠다고 약속했다. BNK부산은행은 판매 중인 주택, 전세, 신용대출 전 상품의 신규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등 총 1조6929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을 약속했다.
이 원장은 이를 독려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은행이 국민경제 일원으로 고통 분담하며 상생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라며 "KB국민은행의 지원발표는 시의적절하고 은행권 전반에 확산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노력이 일회성이나 전시성으로 흘러가지 않고 진정성있는, 지속 가능한 형태로 자리 잡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은행 다음은 보험, 카드, 증권 등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들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금융지주로선 비단 은행뿐 아니라 사실상 전 계열사가 금융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금융당국의 압박은 전방위적이다. 비단 금리 인한뿐 아니라 CEO 인사부터 배당까지 금융사의 주요 경영 판단에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죽하면 금융지주에서 한해 사업을 짜기도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부 은행들은 사정기관이 총출동해서 조사를 진행하며 업무마비를 겪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케이스처럼 은행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인데, 국내 금융지주는 사정기관 대응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당장 지난 연말인사에서 임기가 종료된 금융지주 회장 모두 교체됐다. 금융의 특성상 사람이 중심으로 비지니스가 이뤄지다 보니 통상적으로 '인사부'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는데, 이런 인사부의 역할이 금융당국으로 넘어가는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비단 금융지주 회장뿐 아니라 계열사 CEO 인사에서도 금융당국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금융사 임원은 "인사 시즌에 금융지주 회장 보다는 정부나 정치권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성과급 및 배당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나친 성과급 및 배당을 문제삼으며 이를 자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비단 은행뿐 아니라 보험, 카드사들에 대한 압박 수위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금융사들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않고 주주와 임직원 배만 불린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깔려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 지나치게 비판적인 시선이란 의견이 나온다. 계열사들에 대한 배당자제 압박은 금융지주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요소다. 금융지주가 사실상 유명무실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비판하는 이자장사에서 벗어나 비이자수익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금융지주가 계열사로 부터 확보한 재원을 적절하게 분배해야 하는데, 정부의 배당압박은 이러한 기능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배당은 '주주 배불리기'란 단순한 공식으로 환산해 적대시 하는 정책의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기관투자자는 "안정적인 배당정책을 통해 금융지주 주가가 높게 유지되어야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투자유치 등을 통해서 금융시장 선진화 및 건전성 강화에 필요한 재원 확보에 유리하다"라고 말했다.
해외주요 투자자들은 지난달 국내 금융지주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의 지나친 관치에 대한 우려를 표한바 있으며, 금융당국이 목소리를 높일 수록 금융지주 주가는 곤두박질 치고 있다. 당장 카드, 캐피탈사들은 금리를 누르자 이에 따른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한 금융지주 산하 캐피탈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금리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압박하니 사실상 금리 상승기 영업에 나설수 없는 판국이다"라며 "단순한 금리 목표치만 있지 실제 영업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내에서도 지나친 금리 및 배당 압박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공공요금 인상 등 물가 압박이 커지면서 금리에도 정부당국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판국이다"라며 "다만 금리의 경우 미국 금리 등에 영향을 받는 요인이 있다 보니 당국이 나선다고 해서 이를 억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