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2년 CEO들 성과급 잔치…연일 주가 하락후 올해는 부담
현금ㆍ주식 섞어 받는 CEO 많아…주식 많이 받으면 되레 불만?
'추가 보상방안 마련할 것' 예상도…단기간내 없애긴 어려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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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3월은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의 '고액연봉'이 화제가 되는 시기다. 5억원 이상 급여ㆍ성과급 지급내역이 담긴 사업보고서가 3월말에 공개되면서 "작년 연봉킹은 누구였느냐"가 여기저기서 대서특필된다.
다만 이는 작년 한해 동안 지급된 내역이 뒤늦게 알려지는 것이다. 실제 일선에서 관심사는 "올해 2월에 CEO와 임원들이 보너스를 얼마나 받느냐"다. 상당수 기업들은 작년 경영실적을 평가, 이를 기반으로 2~4월에 임원과 CEO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한다. 이 지급 내역은 그 해 6월말 기준 반기보고서가 나오고서야 외부에 알려진다.
최근 재계에서 CEO 성과급이 화제가 된 곳 중 하나로 SK그룹이 꼽힌다. 삼성그룹에 이어 임원들의 성과보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기도 하거니와, 성과 평가에 '주가'를 연동시켰는데 그룹 계열사 상당수의 주가가 계속 바닥을 기고 있어서다. 금융권과 재계에서는 "주가가 저 모양인데 올해도 작년 같은 성과급 지급이 가능하겠느냐"가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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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주가 등 감안해 CEO 보너스도 결정…연말연초에 금액 결정
SK그룹은 상장 계열사 및 경영진 평가에서 ‘주가’를 가장 먼저 신경 써왔는데, 작년부터는 예년보다 평가 비중을 더 높였다. 이러다보니 계열사들 사이에서 ‘주가가 회사의 가치를 온전히 표상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도 나왔지만 ‘일단 시행해보자’는 것으로 그룹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자연히 그룹 인사 직전인 10~11월까지의 주가가 연초 대비 얼마나 올랐느냐가 경영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성과급의 일부는 '주식'으로 제공된다. 정확히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Restricted stock unit)’인데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권리인 스톡옵션과 별개로,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를 그대로 넘기는 형태다. 해외에서는 경영진을 독려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도입된 방식이다. 일부 SK 계열사는 성과급을 주식으로 지급하면서 주주가 된다는 의미에서 '주주참여 프로그램'으로 대외에 알리기도 했다.
이 성과급은 연말연초 경영진 성과 평가-연초 이사회 결의-주주총회 의결 등 절차를 거쳐 확정된다. 이사회 내에 별도의 인사위원회를 만들어 여기서 CEO나 임원들의 급여ㆍ성과급을 결정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계량지표'(매출, 영업이익, 자기자본이익률, 주가수익률)와 '비계량지표'(그룹 과제 수행, 리더십 및 전문성 발휘 등) 등이 반영된다. 주가 변동이 성과 보상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2021~22년 대규모 성과급 잔치…부회장 및 대표이사들 수십억 보너스
SK는 지난 수년간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유동성 장세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다. 비주력 사업은 후한 값에 팔았고, 플랫폼 등 성장 기업은 높은 가치로 증시 입성을 노렸다. 선명한 화두를 제시한 덕에 시장 유동성을 먼저 빠르게 빨아들였고, 이를 활용해 환경·배터리·바이오 등 새로운 영역을 넓혀 나갔다. 재무 성과가 쌓이다 보니 계열사 주가도 증시 호황을 타고 꾸준히 상승했다.
이로 인해 경영진들이 챙겨가는 이익도 쏠쏠했다. 매출 및 영업이익 증가, M&A와 주식 투자, 그룹 차원의 친환경 사업, 지배구조 및 포트폴리오 개편, 생산설비 확장 등 다양한 명목으로 후한 상여금과 주식 보상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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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수펙스추구협의회의 조대식 의장의 경우 2021년에는 현금으로 42억원가량의 성과급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현금 24억원, 주식 21억원의 성과급을 챙겼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SK텔레콤ㆍSK하이닉스 등에서 복수로 성과급을 받으면서 주목 받기도 했다. 2021년에는 현금 주식 합쳐 22억원가량을, 작년에는 SK텔레콤에서 21억원, SK하이닉스에서 45억원가량을 순수 성과급으로 받았다. SK하이닉스에서 받은 성과급은 '인텔 낸드사업부문 인수ㆍSSD사업 및 대련자산 인수' 등이 지급 근거로 제시됐다.
SK E&S 유정준 부회장이 지난해 38억원, 장동현 SK 부회장이 41억원,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이 20억원 등을 받아갔다. 모두 급여를 제외한 순수 성과급들이다.
계열사 CEO들 가운데는 SK텔레콤 유영상 대표가 지난해 11억원, SK 박성하 대표가 12억원 가량을 받았다. 두 대표 모두 성과급의 3분의 1가량은 재직 회사 자사주로 받았다.
가장 젊은 SK 계열사 대표로 꼽히는 추형욱 SK E&S 대표(1974년생)가 지난해 17억원대의 성과급을 받으면서 '선배 CEO'들을 제쳤다. SK E&S가 비상장사다보니 현금 8억5000만원과 SK㈜ 주식 8억3000만원이 지급됐다. 부회장급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성과급이다. 'LNG 밸류체인 최적화', '자산유동화 등을 통한 포트폴리오 질적성장' , '미래 친환경 에너지 균형적 확대' 등이 지급 근거로 제시됐다.
작년부터 계열사 대부분 주가 바닥 수준….올해도 성과급 그만큼?
문제는 올해 성과급이다. 그룹 계열사 주가 상당수가 연일 바닥을 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자랑했던 SK그룹의 '파이낸셜 스토리'가 시장 유동성의 힘이 떨어지며 색채를 잃은 상황이다. 이에 계열사별로 자사주 매입·소각, 투자 성과 발표, 미래 비전 제시 등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떨어진 주가를 끌어올리기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그룹의 중추 사업들도 부진하다. 2차 전지 사업은 사업제휴나 투자유치가 차질을 빚으면서 시간표가 틀어지고 있고, 반도체는 미중 갈등에 수요 부진까지 겹치면서 실적에 빨간불이 켜졌다. 증시 부진이 이어지며 재무적투자자(FI)에 투자금을 돌려주는 것도 애를 먹고 있다.
계열사 주가들도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지주사 SK㈜는 2년전 성과급이 지급될 당시 주가가 30만원대, 작년에 성과급이 나갈 때 주가는 23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작년말 주가는 18만원대를 기록했고, 최근에는 16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인적분할 이후 한때 6만원 훌쩍 웃돌던 SK텔레콤 주가는 이후 4만원 중반에 멈춰있다. 13만원을 웃돌기도 하던 SK하이닉스 주가는 작년말 9만원대로 떨어졌고 최근에는 8만원선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이외에도 SK이노베이션ㆍSK네트웍스ㆍSK케미칼 등 어느 계열사를 막론하고 주가들이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가 연동체계'로서는 올해 CEO들이 받을 성과급도 크게 줄어들어야 할 상황이다.
게다가 주가가 떨어지니 성과급으로 받은 주식들도 썩 매력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 RSU를 활용하면 현금 지출을 줄이고 계열 내 주식 보유 비율도 올라가니 득이 되는데 미국 상장사에서는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수단”이라며 “SK그룹도 작년부터 상여금을 현금과 주식으로 나눠주고 있는데 주가가 부진하다보니 임원들이 싫어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성과급과 별개로 제공된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의 가치도 줄어들었다. 주가가 떨어지니 기본적으로 평가가 박해지고, 기존에 가지고 있는 스톡옵션의 기대 이익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러다보니 일부 CEO들과 임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성과급 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불거지고, 이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표면상 '주가 연동'의 의미가 ‘장기 보상체계’를 의미했는데 오히려 단기간 주가에 신경 쓰면서 각 계열사 수장들이 중심을 잡고 ‘장기 비전’을 펴기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확실한 복안이 있다면 지금의 낮은 주가가 나쁠 것이 없지만 당장 가까운 미래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일부 계열사 CEO들은 사업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업계 일각에서는 SK CEO와 임원들이 주가연동과 별개로 다른 형태로 성과급 지급체계를 보완, 작년보다 부족해진 보너스를 채울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 SK그룹이 단기간내 주가연동 성과평가 체계를 줄이거나 없애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수년째 지속된데다, 이를 수정하면 실패한 시스템이라는 외부인식과 함께 이에 대한 '책임소재' 문제도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초반 파이낸셜 스토리는 기업가치를 언제까지 얼마로 맞추겠다는 목표가 선명해서 솔깃하게 들렸지만 현 상황에선 방향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 상황이 바뀌었으면 가치판단 잣대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없고 벌인 일은 많아 SK그룹의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