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수요 본격적으로 감소…"곧 터질 부실 PF 늘어나"
글로벌 유동성 리스크 이어지면 부동산 경기 더 나빠질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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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부터 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까지 글로벌 유동성 우려가 커지며,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미분양 부동산이 늘면서 저축은행·캐피탈 등 PF 중·후순위 대출 참여자인 2금융권의 채권 회수 가능성이 안갯속에 빠지고 있다는 평가다.
큰 고비는 넘겨 리스크가 퍼질 가능성이 작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지만 불안은 여전하다. SVB가 무너지는 데 불과 48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등 또 다른 위기가 갑작스레 찾아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리먼 사태와 비슷하게 해외에서 발생한 불안 요인이 금융 시스템 리스크로 퍼지며 경기가 둔화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에 부동산 시장이 더욱 악화하며, 지난해 9월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PF 위기가 더 확산될까 업계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로 저축은행·캐피탈의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미 일부 PF 사업의 부실이 현실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분양이 제대로 안되고 사업장이 제대로 안 돌아가며 부실 PF가 쌓이고 있다"며 "사업이 딜레이되면 분양 못 한 기간 동안 PF 이자는 계속 불어나고, 해당 PF는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저축은행·캐피탈 등 2금융권의 부동산 PF대출 잔액은 85조8000억원으로 금융권 전체 잔액(116조5000억원) 중 73.6%를 차지했다.
부동산 PF 잔액이 늘면서 2금융권의 부동산 PF 관련 위험노출액(익스포저)도 빠르게 증가했다. 지난해 9월 기준 캐피탈 등 여신전문회사의 익스포저는 27조2000억원으로, 5년 전인 2017년 말에 비해 331.7% 급증했다. 전체 업권 중 가장 빠른 증가세다. 저축은행의 익스포저는 10조6000억원으로 5년 전보다 152.4% 늘었다.
2금융권의 PF 부실 위험도 높다. 지난해 9월 기준 각 업권의 부동산 PF대출 잔액 중 고위험 사업장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저축은행 29.4% ▲증권사 24.2% ▲보험사 17.4% ▲여신전문회사 11.0% ▲시중은행 7.9% 등이었다. 고위험 사업장은 본PF 대출을 받은 사업장 중 공정률이 60% 이상이면서 분양률이 50% 이하이거나 브릿지론을 받은 사업장 중 위험 지역에 있는 곳이다. 지난해 9월 부동산 PF대출 연체율도 시중은행은 0.14%였지만 2금융권은 0.77%에 달했다.
PF 대출 부실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번에도 금융당국은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지원책을 내놨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저축은행 업계·저축은행중앙회와 태스크포스(TF)를 구성·운영해 '저축은행 PF대출 자율협약'을 개정했다. 저축은행은 주로 소규모 PF 사업장 대출을 주로 취급하며, 이에 PF 사업장의 약 60%가 저축은행만으로 컨소시엄이 구성된다. 자율협약을 통해 PF 부실화 이전에 자금지원이 신속히 이뤄질 거란 설명이다.
특히, 중앙회는 '자기자본 20% 룰' 자율규제를 유연하게 적용할 방침이다. 저축은행은 PF 사업자금의 20% 이상을 자기자본으로 조달할 수 있는 차주(시행사)에 대해서만 PF대출을 취급할 수 있었다. 자율협약 등 의결을 거친 신규 지원자금에 한해 의무를 한시적으로 미적용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번 저축은행 지원책이 PF 리스크가 커지는 걸 막기는 역부족이라 평가한다.
한 증권사 PF 관계자는 "금감원은 '부실 PF 사업장 안 만들고 싶으면 차주에게 자기자본(에쿼티)이 없더라도 저축은행이 돈 더 태워라'는 논리인데, 당장의 사업장 디폴트는 막을 수 있겠으나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이미 선순위 채권 회수도 쉽지 않은 시점에 중·후순위 주요 대주인 저축은행·캐피탈은 채권 회수가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 전했다.
최근 부동산 이슈는 지난 둔촌주공 사태와는 결이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둔촌주공 사태는 레고랜드 사태로 생긴 PF 불안감이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이슈로 금융 조달의 문제였지, 수요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다른 증권사 PF 관계자는 "둔촌주공은 서울에 위치해 수요가 있고, 시공사업단도 오퍼레이팅할 체력이 있는 곳이라 소화가 가능했지만 최근은 수요 자체가 감소하는 시기다"며 "만약 부실 사업장의 경·공매가 여러 차례 유찰될 경우 낙찰 기준가가 낮아지고 담보 가치가 훼손돼, 대출금액의 회수가 점점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새마을금고(2금융권)는 선순위를 위주로 취급하는데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지역 금고들이 대형 부동산 대출을 경쟁적으로 늘린 결과다. 최근 대구에서는 한 중견 건설사가 오피스텔 공사를 중단한 이후 지역 금고들이 새마을금고중앙회를 상대로 법정 공방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예금 인출이 빠르게 증가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안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새마을금고의 지난 1월 말 기준 건설·부동산업 대출 연체율은 9.23%를 기록했다. 1월 한 달 만에 9000억원의 추가 연체가 발생하며 한 달 새 연체율이 1.56%포인트 급증했다. 새마을금고의 건설·부동산업 대출 연체율은 ▲2019년말 2.49% ▲2020년 말 3.49% ▲2021년 말 4.08% ▲2022년 말 7.67%로 매년 상승했다.
한 NPL 투자 전문 회사 관계자는 "과거에도 경기가 안좋을 때 PF가 바로 터진 게 아니라, 부동산 거래가 점차 둔화한 이후 시차를 두고 문제가 생겼다"며 "아직 2금융권이 버틸만해 보이는 건 수면 위로 올라온 부실 PF가 없기 때문이다. 곧 문제가 생길 PF 사업장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