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표 선임 절차 미확정…당분간 경영 공백 불가피
현대차그룹, 사실상 국민연금과 동일한 의결권 행사 전망
KT 경영 공백에 주요 거래 재평가 전망
현대차 협력 등 구 대표이사 중점 사업도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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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림 사장이 결국 KT 대표이사 후보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국민연금으로부터 촉발한 대표이사 내정 갈등은 KT의 주요 인선은 물론이고, 중요한 경영 판단도 내릴 수 없는 초유의 공백사태를 야기했다. 주주총회를 불과 나흘 앞두고 새로운 CEO 후보를 선임하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인데 앞으로도 지난한 선임 절차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을 통한 기업 경영 개입에 재계의 불안감은 커졌는데 사실 KT의 대주주인 현대자동차그룹의 입장도 상당히 애매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은 27일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하며 "이해관계자들의 기대수준을 넘어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새로운 CEO가 선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KT는 아직까지 "추후 대표이사 선임 절차에 대해선 확정된 바 없다"고 했다.
KT의 주주는 국민연금 8.5%, 현대차그룹 7.7%, 신한은행 5.6%, 소액주주 56.4% 등으로 구성돼 있다.
대표이사 선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국민연금은 지난해 12월 말 구현모 대표이사가 단독 대표이사 후보로 추대한 당일, 최고투자책임자(CIO) 명의로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이후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바 없다. 다만 새로운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도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정치권에서 '이권 카르텔' 논란을 키울 때도 사실상 함구하면서 KT 대표이사 후보에 반대표를 행사할 것이 유력하게 점쳐져 왔다. 국민연금은 상당수의 지분을 위탁운용사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데 통상적으로 1~2주 전에 의결권을 각 운용사들에 위임하는 것과는 달리 KT에 대해선 직접 의결권 행사할 것을 시사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반대표 행사가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사태를 비쳐볼 때 향후 진행될 새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도 상당한 잡음이 예상된다. 이미 회사가 16인의 적격 내부 후보자를 모두 공개한 상황에서, 구현모 현 대표이사, 윤경림 현 사장을 대신할 차순위 또는 차차순위의 후보를 발탁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또 한번의 정치권의 화살이 향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외부 인사 발탁도 가능하지만 역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더러 내부 구성원과 투자자들의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KT의 경영공백이 상당 기간 지속할 우려가 크다"며 "어떠한 후보가 추대 되더라도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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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KT 대표이사 선임 논란에서 입장이 애매해진 곳은 단연 현대차그룹이다. 지난해 KT와의 주식교환으로 인해 대주주 지위를 획득한 현대차그룹은 국민연금이 꾸준히 지분율을 낮추자 현재는 지분율 1%포인트(p)도 차이가 나지 않는 2대주주가 됐다.
구현모 대표이사, 윤경림 사장이 후보로 추대됐을 당시 현대차그룹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 국민연금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지분 각각 7.7%, 9%를 보유한 2대주주이다. 국민연금이 현대차그룹 경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이 국민연금에 반(反)하는 의결권을 행사하기란 사실상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KT와 주식을 교환한 지난해 9월 당시만 해도 현대차그룹과 KT의 시너지 효과에 주목하는 투자자들이 많았다. 6G 기반의 자율주행 기순, 위성통신 기반의 항공모빌리티(AAM) 통신망 공동 연구 등 차세대 ICT 분야에서 포괄적인 협력이 기대돼 왔다. 이 같은 협력의 배경엔 구현모 대표이사가 존재했고, 현대차가 추후 구현모 대표이사의 연임에 힘을 보탤 유력한 백기사로 거론돼 온 게 사실이다.
구현모 대표이사의 낙마 그리고 구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하는 윤경림 사장까지 중도 후보 사퇴하면서 현대차의 주요 협상 대상자(Counterparty)가 모호해 졌다는 지적도 있다.
KT의 경영 공백으로 현대차뿐만아니라 주요한 거래들에서 이해관계자들의 불확실성도 크게 증가했다. KT가 추진 중인 클라우드 사업부의 분사와 외부 투자유치 작업 또한 예상보다 시일이 상당히 길어지고 있는데 해당 사업이 구 대표이사의 역점 사업이었던만큼 추후 사업의 연속성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현모 대표이사의 대표적인 치적인 '디지코(DIGICO)' 사업의 선봉장 케이뱅크 투자자들도 대표이사 교체에 촉각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이 KT 측에 이사 선임 과정에서 대주주의 의견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대차그룹이 KT 대표이사 후보를 직접 추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그리 높진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칫 KT 대표이사 선정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만과 정치적 리스크가 현대차그룹에 번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는 탓이다. 결국 국민연금과 어쩔 수 없이 한 배를 타고 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현대차그룹의 KT 발(發) 경영의 불확실성도 점차 커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