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의 '부동산 살리기' 기조 흔들리는데
증권사에 지원 받을 수 있는 건설사는 일부
정부 입김에…죽지 못하고 '좀비'된 건설사들
"리먼 사태 때도 정부 대책에 연명하다 연쇄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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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위기가 본격 터질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말부터는 분양이 원활하지 않고 공사비 회수가 되지 않아 매출채권을 대손처리하는 건설사가 늘어날 거란 전망이다. 연쇄적으로 부도가 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분양 아파트는 9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월 말 전국 일반 미분양 주택은 총 7만5438채다. 매달 약 1만채씩 급증하던 일반 미분양 주택 증가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4월 예정된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없으며, 이는 2014년 7월 이후 처음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부동산 시장의) 대세 반전을 얘기하기에는 이르다"며 "(증가하는) 기울기는 완만하겠지만 미분양 물량 10만호까지는 예측 내지 각오하고 있다"고 밝혔다.
악성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은 8554채로 1월보다 13.4%로 급증했다. 수도권의 증가 폭(15.9%)이 지방(12.8%)보다 컸다. 사업자의 자발적 신고에 의존해 통계를 집계하기 때문에 신고되지 않은 물량까지 감안하면 실제 악성 미분양 규모는 국토부 통계보다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악성 미분양 물량이 통계보다 2배 이상 클 거란 분석도 나왔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분양 분위기가 이어지면 내년에는 건설사들이 돈 받을 기약도 없이 사업장을 올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그래도 지금은 분양이 잘되는 사업장이 있지만, 내년에는 대형 건설사도 '돈 없다'는 얘기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대우건설이 울산 사업장에서 브릿지론 디폴트를 선언한 것처럼 앞으로 다른 사업장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거란 예측도 나온다. 그동안 건설사의 책임준공 의무가 관행으로 굳어지며, 브릿지론 디폴트 선언은 이례적으로 평가됐다. 대우건설이 '스타트'를 끊은 이상 후발주자는 '심적 부담'이 덜할 거란 분석이다.
대우조선해양건설(도급 순위 83위)은 이미 지방 사업장에서 PF 디폴트를 선언했다. 서울회생법원은 대우조선해양건설 노조가 제출한 회사에 대한 회생신청을 받아들여 2월 회생절차 개시결정을 내렸다. 에이치엔아이엔씨(도급 순위 133위)은 최근 서울회생법원에 법인회생을 신청했다. 이외에도 이미 채무불이행 상태나 도산 위기에 처한 중소형 건설사가 암암리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내부에서 '부동산 살리기' 기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건설사의 고민은 깊어진다. 롯데건설·태영건설 등 건설사들은 정부의 PF 지원이 줄거나 멈출 경우를 대비해 증권사의 자금 지원을 받고는 있지만, 이마저도 '건실한' 건설사에 한정된다.
작년말부터 정부의 '입김'에 은행이 부동산 PF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지만, 문제있는 곳을 안 터뜨리고 '좀비'를 만들어놨다는 비판도 나온다. '연명'한다고 사업성이 좋아지는 게 아니며, 추후 문제가 생길 경우 뒷수습이 더 어려워질 거란 평가도 존재한다.
한 부동산 PF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정부가 부동산 PF 지원안을 내놓는 건 모든 건설사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며 "단기간에 많은 건설사가 망하면 레고랜드 때와 같은 여파가 또 찾아오고 그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 속도를 조절하고 그사이 자구책을 찾은 곳들은 살 수 있게끔 안전망을 만드는 게 취지다"고 말했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건설사일수록 자구책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평가다. 단기 회사채 만기가 부담이라는 분석이다. BBB급 건설사의 회사채 규모는 약 1조3000억원이며 이중 5000억원가량이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한다. HL D&I·한신공영이 각각 1년물 500억원 규모 수요예측에서 대부분 팔리지 않아 산업은행이 떠안는 등 차환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평사도 만기가 도래하는 건설사를 위주로 집중 모니터링하고 있다. 이들 건설사는 신평사에 보유 부동산을 팔거나 담보대출을 통해 상환할 계획이라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시행사와 시공사가 보유한 땅은 대부분 2020년과 2021년에 고점에서 산 경우가 대부분이라, 현재는 '제값'을 받기 어렵다. 담보대출의 경우도 금융기관이 담보평가시 감정가액을 높게 쳐주지 않고 있다. 건설사는 점차 유동성이 말라갈 우려가 큰 상황이다.
부동산 리스크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연쇄적으로 건설사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금리가 하락 추세로 돌아서며 부동산 심리가 반전되기 전에는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기 어려울 거란 분석도 나온다.
다른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건설사 위기는 이제 초입이다"며 "2008년 리먼 사태 이후에도 건설사가 정부 대책에 연명했지만, 악성 미분양이 쌓이고 돈을 못 받고 이자가 쌓이니 결국 2010년에 부도가 급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