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은 불안…수신구조 취약할수록 LCR 올라가는 탓
요구불예금 위주 수신구조, 작년 하반기만 30% '증발'
이탈율은 '10%'만 적용…인뱅 등장 이전 만들어진 규제
남은 OCI 채권 3.9조…예금인출 이어지면 미실현 평가손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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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뱅크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833.5%로, 평균(100%)을 유지하는 시중은행 대비 월등히 높은 수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동성 공급에 차질 없이 준비돼 있다는 의미입니다." (3월 27일, 홍민택 토스뱅크 대표)
토스뱅크는 정말로 '뱅크런' 위기 앞에서 안전한걸까. '은행 유동성 위기를 관리하는 지표인 LCR 비율이 충분히 높으니 걱정하지 말라"는게 지금까지의 주장이다.
문제는 이 LCR 비율이 스마트폰 뱅킹서비스가 보편화된 은행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권은 물론, 감독당국도 맹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 상황에서 토스뱅크의 현행 채권 운용 구조로는 연말 기준 예금이 4조원 이상 일시에 이탈할 경우 SVB와 비슷하게 채권 매각 손실 위험에 노출될거란 지적마저 나온다.
"위기 터져도 예금 인출은 10%에 그친다"는 비현실적 가정이 담긴 LCR 비율
LCR은 '뱅크런 사태가 터졌을때 고객들의 예금인출에 대비할 수 있는 수준'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고객들이 30일 동안 급하게 찾을 것으로 예상하는 금액 (순현금유출액)을 산출하고, 이 금액의 몇 배만큼 은행이 현금화 가능한 자산 (고유동성자산)을 보유하고 있느냐를 따져 계산한다.
대형 시중은행들의 비율이 100% 언저리인데, 100%면 고객들의 다급한 인출수요를 감안해도 전액 지급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토스뱅크는 해당 수치가 KB나 신한 같은 대형은행보다도 무려 8배나 높다고 설명했다.
관건은 '금융위기' 가 발생했을 때 고객들이 앞다퉈 은행 예금을 해지하고 찾아가는 비율이 얼마만큼 많을 것이냐에 달려있다. 현행 LCR비율 규제는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요구불예금이든 정기예금이든 상관없이 개인 소매예금의 30일간 이탈률이 5~10%에 불과하다고 '가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1조원의 예금이 있는 은행에서 1달간 빠져나갈 예금은 불과 1000억원에 불과할 것이란 가정법에 기인한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에서 확인됐듯, 모바일로 1초 만에 돈을 옮길 수 있는 지금 세상에서 "30일간 예금 이탈율이 10%에 그칠 것"이라는 건 비현실적인 전제라는 지적이 많다. 비록 SVB의 예금주는 '금융사'들이 대부분이고 토스뱅크의 예금주는 '개인'이 많아 적용되는 가중치가 다르다고 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토스뱅크조차 위기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 작년 하반기 전체 수신의 30%에 달하는 6조원 가량이 단기간에 빠져 나간 사례가 있다.
왜 이런 가정법이 도입됐을까. LCR 비율이 인터넷전문은행이 도입되기 이전에 만들어진 규제여서다.
실제로 정부가 관련법을 개정하고 LCR 비율을 적용한 것은 2015년인데, 그해 말 겨우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예비인가를 받았다. 즉 스마트폰으로 불과 몇 분만에 은행 예적금에 가입하며, 필요하면 금방 해지하는 게 가능해진 현실이 반영되지 못한 비율이다.
'요구불예금'으로 급성장한 인터넷은행…금리 오르면 '머니무브'의 희생양
인터넷은행의 수신구조는 언제든 돈을 쉽게 뺄 수 있는 '요구불예금'에 편중돼 있다. 토스뱅크만 봐도 출범 이후, 아무 조건 없이 2% 이자를 지급하는 통장을 내놓으며 고객을 확보해왔다. 정기예금처럼 일정 기간 돈이 묶일 필요도 없고 언제든 넣고 뺄 수 있는 요구불예금에도 금리를 2%나 쳐준 것. 덕분에 2021년말 13조7000억원 수준이던 총수신은 매 분기 약 7조원씩 늘어 반년 만에 28조원까지 불어난다.
이런 편중된 수신구조는 작년 하반기에 몰아닥친 예금금리 상승 '광풍'에 곧바로 취약점을 드러냈다.
당시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5% 안팎 정기예금 상품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에 고객들이 고금리 예금에 가입하고자 기존에 가입했던 요구불예금을 빼는 이른바 대대적인 '머니무브'가 일어났다.
이는 인터넷은행들에 미치는 여파가 컸다. 다른 시중은행들은 요구불예금에 급여통장 설정이나 신용카드ㆍ공과금 자동이체 등을 통해 다양한 '안전장치' 걸어놓았다. 해지하려고 해도 급여통장을 재설정하거나 자동이체를 일일이 바꾸는 게 귀찮아 해지율이 떨어지는 셈. 반면 인터넷은행의 요구불 예금에는 이런 안전장치가 많지 않은터라 이들은 머니무브의 희생양이 될 판국이었다.
이에 대응하고자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요구불예금 금리를 2.7%까지 올렸다. 토스뱅크는 동일한 수준으로 올리지 못했다. 결국 토스뱅크의 금리 매력이 떨어지자 한 분기에만 6조원 가까운 예금이 빠져나갔다. 당시 토스뱅크 총수신의 18% 수준인데, 전 업권을 통틀어 가장 하락폭이 컸다. 수신의 86%가 별도 안전장치가 없는 요구불예금이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뒤따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전까지 수신을 끌어올린 속도가 빨랐던 만큼 가파르게 빠져나간 건데 토스뱅크의 요구불예금이 다른 은행의 요구불예금에 비해 불안정하다는 인상을 줬다"라며 "달리 말하면 토스뱅크가 제공하는 소비자 효용이 0.5% 안팎의 금리차를 넘어설 정도는 아니라는 의미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즉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겨우 시중은행에서 고금리 상품이 좀 더 나왔을 뿐인데 예금의 30%가까이가 빠져나가는 게 토스뱅크의 불안한 수신구조라는 의미도 된다.
최근 논란이 된 토스뱅크의 '3.5% 선이자 예금상품'도 이런 수신구조를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요구불예금에 편중된 구조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고자 이런 미끼상품을 내놓았다는 해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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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R의 '마법' 혹은 '역설'…예금이 빠져나갔는데 비율은 올라간다?
여기서 LCR 비율의 또 다른 '역설'이 발생한다. 작년 3분기 머니무브로 토스뱅크 수신고가 크게 쪼그라들었는데 바로 이 시기에 LCR 비율은 무려 920%로 껑충 뛰어오르게 된다.
LCR비율이 높아지려면 현금화가 가능한 고유동성 자산을 많이 쌓든가, 아니면 위기상황에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하는 순현금유출액이 줄어들어야 한다. 일단 토스뱅크는 원화 유가증권등 이른바 현금화가 가능한 고유동성자산을 많이 쌓아놓았다.
이에 더해 은행권 금리경쟁 상황에서 토스뱅크에서 6조원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LCR비율이 개선되는 효과가 생겼다. 즉 LCR비율을 좌우하는 순현금유출액을 계산할때 각각의 예금(안정적 예금ㆍ불안정적 예금)에 가중치를 매기고, 이를 합산해서 순현금유출액을 산출한다. 그런데 예금규모 자체가 단기간에 30%가량 줄어들어버리니 동시에 위기상황에 빠져나갈 것으로 생각되는 순현금유출액 절대 규모도 같이 줄어들어버리게 된 것.
오히려 토스뱅크보다 안정적 예금 비중이 높고 총수신 규모에 별 변화가 없었던 카카오뱅크는 반대 현상을 겪었다. 영업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데도 불구, 위험요소인 순현금유출액 수치가 올라가고 되레 LCR 비율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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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현행 LCR 규제로 인터넷은행의 유동성 위험을 판단하면 "고객이 돈을 무더기로 인출해버리니 '돈을 못 돌려줄' 위험은 줄어들었다"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결과가 도출되는 셈이다. "LCR 비율이 800%를 훌쩍 넘는다"라는 사실이 해당 은행의 수신구조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유동성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감독당국도 이런 맹점을 인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행 LCR 지표에 맹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가 일리는 있지만 현재로선 LCR을 산출할 때 토스뱅크에만 다른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일단은 토스뱅크의 조달과 운용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지 않을지 집중적으로 체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LCR 비율은 국제금융조약(바젤) 기준에 따른 것으로 국내에만 적용되는 규제가 아니다. 다만 현행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세칙은 금융감독원장이 개별 은행에 대해 보다 엄격한 기준 또는 변수를 적용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다. 감독당국의 모니터링 결과나 의지에 따라 토스뱅크의 LCR 비율이 조정될 수도 있는 셈이다.
토스뱅크는 지난해 2644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채권에서 680억여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했고, 1800억여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지난해 말 기준 예대율은 47%였다. 은행권에서 흑자전환 기준으로 보는 예대율은 70~80%선이다. 토스뱅크가 하반기 흑자전환이라는 목표를 천명한 건, 올해 대출을 6조원이상 늘리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관건은 수신 성장이 지속되는 가운데 여신 성장을 늘릴 수 있느냐다. 단단한 수신 기반은 안정적 여신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미 치솟기 시작한 연체율도 이슈다. 연체율이 우상향한다면 이익의 상당부분을 충당금으로 도로 쌓을 수밖에 없다.
토스뱅크의 채권 매각 손실위험은 또 다른 불안요소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토스뱅크는 지난 4분기까지 예금 인출에 대응하기 위해 원화 유가증권 중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FV-OCI) 계정에 담긴 채권을 상당수 매각했다"라며 "OCI 계정에 담긴 3조9000억원 수준 이상의 채권 이상으로 예금 인출 시도가 발생하면 만기보유 목적(AC 계정) 채권까지 팔아야 하는데 그러면 SVB와 똑같이 미실현 평가손을 떠안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