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개선 힘입어 물밑에서 매각 고민 중
작년 유니콘 등극…최대 2조 몸값도 거론
해외 여행 확대·박해진 플랫폼 평가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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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여행 플랫폼 여기어때컴퍼니(이하 여기어때)가 올해 M&A 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여러 지표에서 경쟁사 야놀자를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최대주주인 CVC캐피탈(이하 CVC)이 경영권 매각을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어때는 작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에 등극했고 현재 잠재 몸값이 2조원까지 거론되고 있다. 플랫폼에 박해진 시장 분위기 속에 성장성을 어떻게 이어갈 것이냐하는 질문을 받게 될 전망이다.
7일 복수의 투자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CVC는 투자 시장 관계자와 기업들을 접촉해 여기어때 매각 의향이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아직 본격적으로 매각 주관사를 선정하거나 구체적인 매각 일정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최근 행보를 감안하면 올해 중 매각 절차를 공식화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정명훈 여기어때 대표도 시장에 이 같은 뜻을 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CVC가 잠재 인수 후보가 될 수 있는 곳들을 대상으로 여기어때를 내놓을 것이란 뜻을 내비치고 있다”며 “최근 분위기가 괜찮은 영향인지 몸값도 2조원은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여기어때는 2015년 설립돼 야놀자가 선도하던 숙박앱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수수료 무료 정책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급성장했는데, 2018년 창업자 심명섭 대표가 음란물 유포 방조 혐의에 휘말리며 회사가 주춤했다. 2019년 CVC가 여기어때 경영권 지분을 약 3000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여기어때는 ‘만년 2인자’ 자리를 유지했다. 야놀자는 2015년 시리즈A(100억원)부터 2021년 소프트뱅크비전펀드II의 시리즈E 투자(약 2조원)까지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하며 데카콘(기업가치 10조원 이상) 등극을 눈앞에 뒀으나, 여기어때는 CVC의 M&A 이전엔 시리즈A(2015년, 130억원)와 시리즈B(2016년 200억원)를 진행한 것이 전부였다.
자금력에서 밀리니 사업 확장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야놀자가 인터파크, 데이블, 산하정보기술 등을 인수하고 야놀자클라우드를 설립하는 등 IT 기업으로 변모를 가속화했지만 여기어때는 소극적인 투자행보를 보였다. 인터파크 인수전에서도 야놀자에 밀렸다. 실적 면에서도 체급차가 나타났다.
작년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빅데이터 플랫폼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작년 부산 여행객들의 숙박앱 이용 순위는 야놀자(48.4%), 여기어때(41%) 순으로 격차가 크지 않았다. 다른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2월 여기어때 앱 신규 설치 건수가 33만여건으로 야놀자(21만여건)를 넘어섰다. 올해 월간활성이용자수(MAU)나 주간활성이용자수(WAU) 역시 격차가 근소해지거나, 여기어때가 일시적으로 넘어서는 사례가 나왔다.
작년 매출 성장률은 야놀자가 높았지만 이익은 여기어때가 많았다. 여기어때는 작년 미래에셋캐피탈, 산은캐피탈 등으로부터 시리즈C(500억원)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조2000억원을 인정받았다. 야놀자는 올해 원격근무를 종료하며 임직원들의 불만이 커졌는데, 배보찬 대표가 이에 대해 사과하면서 회사가 역사상 처음으로 역성장했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야놀자가 외연을 확장하는 사이 ‘본업’에 집중한 여기어때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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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기어때 투자사 관계자는 “아직 M&A 계획에 대해 공유 받은 것은 없다”면서도 “야놀자가 1위 지위를 앞세워 이것저것 사업을 확장했다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여기어때가 앞서가기 시작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CVC나 투자사 입장에선 여기어때가 이미 유니콘에 등극했기 때문에 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필요성이 있다. 이 때문에 1조원을 훌쩍 넘어 2조원도 거론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명훈 대표는 CVC에서 여기어때를 인수한 후 대표로 적을 옮기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는데, 여기어때 투자에도 개인적으로 수십억원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성사 시 대규모 투자 차익을 거둘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여기어때의 상황이 어느 때보다 좋아진 것은 맞지만, M&A 시장에서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아들지는 미지수다. 회사가 성장성을 이어가고 있고, 여행 관련 사업에 관심이 있는 대기업도 많지만 조단위 몸값은 부담스럽다. 플랫폼 기업들이 후한 가치를 인정받기도 어려워졌다. 웬만해선 연간거래액(GMV)이나 주가매출비율(PSR)을 따지는 가치산정 방식으로는 시장의 공감을 얻기 쉽지 않다.
국내 여행 플랫폼이 해외 비교기업(Peer Group)보다 가치평가 배수가 높게 적용됐다는 지적도 있다. 소프트뱅크는 야놀자의 주춤한 성장세에 난처한 기색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어때의 가장 확실한 비교 대상인 야놀자는 나스닥 상장을 검토 중이지만 눈이 번쩍 뜨일 몸값을 인정받을지는 예단하기 이르다. 매출이 아닌 이익으로 플랫폼 가치를 따지는 분위기가 이어지면 후한 값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해외 여행이 본격화하는 점도 변수다. 여기어때는 팬데믹 기간 국내 여행 시장이 급성장하며 성장세를 보였다. 이제 해외 여행이 본격화하면 국내 사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기어때는 작년 특가 상품을 내놓는 등 해외 여행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거래액이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유수의 글로벌 플랫폼과 얼마나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다른 투자 업계 관계자는 “여기어때가 국내에서 좋은 성과를 내긴 했지만 올해부터 해외 여행 시장이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하면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플랫폼 가치를 PSR로 살피는 시기는 지났고 얼마나 현금을 창출하느냐 따지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기어때가 후한 몸값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