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시대 차입 확대가 이제 발목잡아
적자 지속인데 투자금은 계속 필요
하이닉스·SK온 실적개선만 기다려야 할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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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SK그룹에 경고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유동성 위기와 재무이슈가 부각되는 중이다. 반도체와 배터리가 그룹 중심축이 된 상황에서, 급격한 금리인상과 지정학적 이슈로 그간의 레버리지 확장 전략이 꼬이기 시작하면서다.
크레딧 시장에서는 "써야 할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은 크게 줄어든" 탓에 SK그룹이 최대 '보릿고개'를 맞이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칫 상황이 지속되면 공고하던 SK그룹의 신용도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급격하게 늘어난 차입금…반도체와 배터리에 집중 투자
SK그룹은 지난 몇 년간 재계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외형을 키웠다. 2018년 이후 사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도체·배터리·소재'로 사업의 중심축을 바꿔왔다. 코로나 기간에도 투자는 멈추지 않았고, 재계 순위는 현대차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필요한 투자금은 역사적인 초저금리에 힘입어 대부분 '외부 투자'와 '차입'으로 마련했다. 그간 SK가 강조해온 '파이낸셜 스토리'와 정확히 궤를 같이 한다. 이로 인해 SK그룹의 차입금은 단기간에 급증했다. 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말 61조원이었던 차입금 규모는 작년말 105조원 수준을 기록, 불과 3년만에 44조원이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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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차입으로 마련된 돈은 '반도체'와 '배터리'에 집중 투하됐다. 작년말 기준 SK그룹 전체 차입금은 부문별로 ▲ 반도체 24% ▲정유·화학·배터리 부문 26% ▲ 정보통신 13% ▲ 지주사 11%, ▲ 그 외 부문 27%로 구성돼 있다. 즉 그룹 전체 부채 절반이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지게 된 '빚'이다.
이런 반도체와 배터리의 실적이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크게 꺾이고 있다. 여기에 대규모 장치산업인 반도체와 배터리에는 앞으로도 대규모 추가 자금투입이 불가피하다. 최근 SK의 자금 조달 능력은 이에 필요한 투자금 규모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작년말부터 시작된 급격한 금리인상이 또 다른 쇼크를 주기 시작했다. 100조원이 넘는 차입금에 대한 이자비용 증가가 만만치 않아졌다.
한마디로 "앞으로도 써야 할 돈은 많은데, 버는 돈은 급감했고, 외부에서 돈을 더 빌릴 여력은 줄었는데, 이미 빌린 돈 이자는 급증하는" 이른바 '사중고'에 처한 셈이다.
아직까지 그룹 부채비율과 순차입금의존도(작년말 연결 합산 기준)는 각각 134.7%, 25.7%로 여전히 우수한 편에 속한다. 그러나 외부 차입 의존도가 커지면서 재무 완충력은 소진됐고, 그룹 전반의 신용위험이 커지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올해가 바로 그 정점이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인텔 공장으로 발목 잡혀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SK하이닉스는 일단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일단 직격탄을 맞았다. 작년 4분기 영업적자가 2조원에 육박했는데 올 1분기에는 4조원 적자 전망까지 나온다.
이런 SK하이닉스를 더 어렵게 만든 건 2020년 10월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와 중국 다롄 공장을 인수하면서 진 '빚'이다. 인수 과정에서 미화 90억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12조원가량이 들어간다. 2021년말 1차 인수대금으로 70억달러가 지급됐고, 2025년 이후 남은 20억달러가 2차로 지급된다. 대규모 차입이 이뤄졌는데 이때만 해도 초저금리 시대라 대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금리 인상으로 하이닉스와 SK그룹에 가시밭길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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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조원 수준이었던 SK하이닉스의 차입금은 2년만에 두 배로 급증, 지난해 말 23조원 수준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이 차입금의 상당량이 1년내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이라는 점이다. 재작년만 해도 단기차입금은 3조원에 불과했는데 지난해에는 무려 7조4000억원에 달했다.
이 와중에 SK하이닉스이 순이익은 1/5 토막이 났다. 같은 기간 9조원에 달했던 이익규모가 지난해 2조원대로 급락했다. 그리고 올해는? 분기마다 적자, 그리고 연간 영업적자가 확실시 된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하필 이 시기에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 시장이 경색됐고 회사채 등 장기 조달이 어려워져 단기차입금을 늘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가뜩이나 SK하이닉스는 현금 비축을 많이 하지 않는데 반도체 사이클이 꺼지면서 동시에 재무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SK하이닉스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설투자 규모를 줄여 '추가로 쓸 돈'이라도 줄이는 정도다.
하지만 메모리 분야에서 지속적인 투자가 사라지면 경쟁력 급감이 불가피하다. 그러잖아도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이 불확실성을 더 키우고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행여 SK하이닉스가 인수한 중국 공장이 차세대 공정 도입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하이닉스 전체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결국 빚은 많고 계속 적자가 나고 있어도 어떤 식으로든 자금을 조달, 공장 첨단화를 하는 데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비메모리 투자'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
최근 SK하이닉스의 2조원대의 해외 교환사채(EB)를 발행도 이런 배경이 원인으로 꼽힌다. 당장 운영자금이 필요한데 국내에서 무보증사채를 발행하기엔 SK하이닉스에 대한 신뢰도도, 시장의 환경도 좋지 않아서 EB로 자금을 마련했다는 것.
다만 SK하이닉스 측은 "연초에 지속가능연계채권(10억달러) 발행했고 최근에는 운영자금 확보 차원으로 EB를 발행했다"며 "낮은 금리로 이자부담도 완화했고 선제 조달을 성공적으로 했다고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투자시장의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중국 현지 메모리 생산설비에 장비 반입을 계속해서 허용할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지금의 메모리 업황 부진은 1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이례적 상황인데다, 미중 갈등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메모리업체의 자금수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단정짓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유동성 블랙홀 배터리, 흑자는 언제쯤?
또 다른 자금 '블랙홀'인 SK온은 연일 적자 상황이고, 흑자 전환 시기도 미뤄지고 있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1조727억원으로 전년 대비 6배 이상(567%) 늘어났다. 연초만 해도 흑자 전환을 계획했지만 이제는 내년을 기약하고 있다.
적자가 이어져도 돈은 계속 쓰고 있다.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한 시설 투자와 경상 투자는 지속되고 있으며 올해 예상 투자금액만 총 7조원이다.
다행히 수익성 개선세는 이어지는 추세다. 하지만 돈을 못벌고 있는데다 투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차입금 증가가 불가피하다. 작년말 기준 SK온의 부채비율은 258.1%, 차입금의존도는 51%를 기록했고 차입금 규모는 2021년말 4조5000억원에서 작년 11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상장(IPO)'이라도 성공적으로 이뤄져 대규모 외부 투자금 조달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에 대한 기대감도 떨어졌다. 작년 프리IPO에서 SK온이 인정받은 가치는 주당 5만5000원, 기업가치 22조원 수준에 그쳤다. 당초 회사 측은 기업가치를 35조~40조원을 예상해 3조원 이상 자금을 조달하려 했지만 한투PE 등과 1조3200억원의 투자유치 주주간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흥행에 실패했다. 결국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이 유상증자를 통해 2조원을 투입했다.
게다가 앞으로도 돈은 더 들어가야 한다. 해외 배터리 공장 증설을 위해 4조원 이상의 대규모 자금 조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 외에도 글로벌 투자자 및 대형 PEF들을 대상으로한 최대 3조원 이상의 자금 모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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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온 역시 하이닉스와 마찬가지로 급속하게 진행된 '단기차입금' 증가가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현재 10조원 정도의 SK온 전체 차입금 중 은행 단기차입금만 절반에 가까운 4조9000억원이다. 1년내 갚든가, 아니면 대환대출 또는 차환으로 다시 메꿔넣어야 한다. 이에 NICE신용평가는 "대규모 선투자 이후 장기적으로 회수하는 사업구조임에도 불구, 단기차입금 비중이 높아 차환부담이 존재한다"며 "SK온은 사업실적 감안시 자체 신용으로 대규모 차입금 조달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어 계열 내 직간접적 재무적 지원을 통한 자금소요 대응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평가했다.
모회사 추가 지원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이미 SK온 지원으로 적지 않은 부담을 지고 있다. 일단 SK온과 포드의 협업에서 이미 136억달러(원화 약 18조원) 규모 지급보증 및 출자이행보증을 섰다. 포드의 전기차 생산 목표나 판매 계획에 변동이 없는 한 SK온이 예정된 설비투자를 계획대로 이어나가지 않으며 부담은 SK이노베이션으로 전이된다.
SK온이 투자금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투자자에 7.5% 수준 내부수익률(IRR)과 함께 매수·매도 관련 회수장치를 보장했다. 이 중 일부는 SK이노베이션 장부에 1400억원 규모 파생금융상품부채로 반영됐다. 즉 적격 수준의 상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역시 부담은 SK이노베이션으로 전이된다. 투자시장 한 관계자는 "이는 유사시 SK이노베이션이 SK온에 투자한 투자들의 원금과 일정 수익을 보장해주겠단 의미로 통한다"라고 말했다.
당사자들은 이런 우려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에 대한 우려는 프리IPO 자금 조달 목표치를 채운 이후 지나간 상황"이라며 "정유·화학 경기가 반등하고 있고 이는 SK이노베이션에도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만 배터리 부문 부채비율과 관련해 신용등급 관리에 대응 중이라고 설명했다. SK온은 "계획한 바에 따라 자금 조달이 진행 중이고 해외 공장은 JV 형태로 지어지기 때문에 SK온이 온전히 부담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미국 세액공제(AMPC)를 통해, 최대 수율로 미국 내 전 공장을 100% 가동할 경우 최대 연간 1조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룹 차원의 '반전카드'도 없다…시장이 나아질 때까진
그렇다고 SK그룹 차원에서 이런 어려운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도 없다.
일례로 삼성전자의 경우, 역시 메모리 경기 침체 여파를 맞고 있지만 반도체 적자를 갤럭시S23를 앞세운 MX부문 선전으로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다. 배터리 부문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실적이 안정권에 접어든데다 모기업인 LG화학이 사업적으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SK하이닉스나 SK온은 이런 그룹 차원의 '상쇄효과'를 기댈 곳이 없다.
SK하이닉스는 SK스퀘어를 중심으로 한 중간지주사의 도입이 되레 약점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에는 모회사가 현금창출력이 있는 SK텔레콤이다보니 이런 저런 '덕'을 본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중간지주사를 도입으로 SK스퀘어가 모회사가 되면서 이런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정작 모회사인 SK스퀘어는 최근 SK쉴더스 매각 대금을 자사주 소각에 쓰는 등 자체 주가 부양에 신경 쓰기에도 바쁘다.
재계 관계자는 "중간지주사는 경기가 좋을 때 자회사들의 배당으로 수익을 거두는데 자회사가 적자를 기록하는 현 시점에선 가장 취약한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다른 자회사의 현금을 투입하고 싶어도 과정도 복잡하고 주주 반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의 감산 선언 덕을 보고 있고, SK온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덕에 인센티브가 기대된다. 이런 저런 효과를 감안하면 최악으로 치다를 가능성은 낮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 결국 시장에서는 반도체와 배터리 경기 사이클이 바뀌길 기다리는 것 외에는 SK그룹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 SK그룹의 최대 보릿고개인 점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