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로 세력화한 증시 개미들...뭉칠수록 커지는 '동원' 리스크
입력 2023.04.25 07:00
    취재노트
    2021년 시장도 못이기고 대부분 손실냈던 '동학개미'
    배터리 소재株 줄줄이 '폭등' 후 "결이 달라졌다" 평
    시장 반감 중심 세력화하니 기관이 '대패'…사과까지
    개인투자자 세력 이용한 성공 사례 늘어나니 우려 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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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 2021년 자본시장연구원에서 재밌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코로나 이후 증시에 무더기로 입성한 개인투자자의 투자 방식이나 성과를 살펴보니 "투자습관 개선을 위한 교육과 홍보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결론이 났다. 당연히 시장수익률도 이기지 못했고, 새로 유입된 투자자 60%는 손실을 봤는데, 개중 꼴찌는 '소액으로 투자하는 젊은 남성들'이었다. 

      기존 국내외 실증연구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는 ▲주식 본질가치보단 심리적 영향에 따라 ▲분산할 생각 없이 투기적으로 거래하는 편이라 ▲평균 투자 성과가 시장수익률이나 기관투자자보다 낮았다고 한다. 자본시장연구원에서는 코로나 이후 유동성 장세에서 대거 유입된 소위 '동학개미'들은 과연 다를까 짚어본 셈인데, 결론적으로는 투자 성과나 행태 모두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도 시장에선 부쩍 늘어난 개인투자자 영향력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예상과 다르게 증시는 V자 반등을 보이며 전 국민에 조급증을 불러일으켰고, SK바이오팜 이후 공모주 대박 사례가 속출한 데다 제로금리가 넉넉한 실탄까지 제공하며 모든 조건이 맞아들어간 덕이다. 

      그래도 "한동안 이러다 말겠지"라는 반응이 많았다. 증권사도 천수답 브로커리지 부문에서 막대한 수익을 챙겼고, 기업도 줄상장으로 돈을 쓸어갔으니 크게 나쁠 것만도 없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배터리 소재기업 주가 폭등은 결이 좀 다른 것 같다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원래 트레이더들 사이에선 코스닥 대장주 시가총액에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캡(한도)이 있는데, 보통 거기까지 버틴 공매도 포지션은 엄청난 수익을 남겼다"라며 "이번 에코프로그룹 폭등에선 적정 가치를 아득히 벗어나는 상황에서도 기관이 대패한 것을 넘어 해고에 사과문까지 등장했다"라고 설명했다. 

      개인투자자에 대한 분석 자체를 새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 이후 시작된 유동성 장세 덕에 잠깐 다녀가는 손님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개인투자자 수가 늘고 동원 가능한 현금이 늘어봤자 제가끔 투기하다 손실이나 보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시장에 대한 반감을 서로 확인하고 세력화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는 것.

      증권사 한 연구원은 "나만 공매도가 싫었던 게 아니구나, 공매도 싫어하는 동지들이 이렇게 많았네. 이렇게 공매도가 그냥 싫고 미운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몰려들며 터진 게 '게임스탑' 사태"라며 "현재 에코프로그룹 등으로 고수익을 낸 개인투자자들이 커뮤니티 내에서 다음 타깃을 거론하는 걸 보면 섹터 내에 게임스탑이 줄줄이 널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이 그냥 세력화하는 것 자체는 문제 삼기 어려울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이들이 올라탄 기업 주가가 날아가고 있지만 이미 장기 지속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말 게임스탑처럼 단순히 기관이나 시장에 대한 단순 반감으로 밀어올린 주가라면 한 번만 와르르 무너져도 세력 자체가 와해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전문가 직함을 내걸고 무리를 통솔하려는 꽤 위험한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 채널을 활용하면 최소한의 내부통제나 준법감시 의무 없이도 그게 가능하다는 게 이번 배터리 소재기업 주가 폭등 사태로 드러나고 있다. 

      이제 호응만 이끌어낼 수 있다면 개인투자자들을 규합해 일종의 출자자(LP)로 끌어쓸 수 있게 된 셈이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심지어 일부는 본인도 주주임을 밝히며 불가능한 수익률 목표치를 버젓이 내걸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제도권 내에 있는 실무자들은 최근 유튜브 등지를 보면서 심심찮게 '저 정도면 수갑 찰 수도 있을 텐데'라는 걱정을 늘어놓는다"라며 "전에도 위험한 유튜브 채널이 없지 않았지만, 이만한 성공 사례가 쌓이면 배터리 소재기업이 아니더라도 유사한 시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