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 적자 이마트, 오프라인 매장 재강조
컬리, 흑자로 투자자 설득 가능한지 주목
쿠팡 고민은 역시 주가…추가 확장성 숙제
-
2023년 1분기 유통업계엔 이변이 일어났다. 이커머스 강자 쿠팡이 전통의 오프라인 유통 강자 이마트와 롯데쇼핑을 제치고 유통업계 매출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쿠팡은 뉴욕 증시 상장 당시 있었던 여러 우려들을 '불식'시키며 여타 이커머스 업체들은 따라 올 수 없을 정도로 격차를 벌여놨다. 그리고 이젠 오프라인 유통 공룡 '신세계'와 '롯데'를 조준하고 있다.
한 때 상장 기치를 앞세웠던 이마트의 쓱닷컴과 컬리의 입지는 갈수록 애매해지고 있다. 쿠팡을 따라잡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이들 회사는 투자자들에게 외형 확장이 아닌, 수익성을 눈으로 보여줘야 하는 타이밍인데 마땅찮다. 쿠팡도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사상 최대 매출에 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주가는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은 확장성인데 역시나 말처럼 풀기엔 어려운 숙제다.
"지구상 최고 서비스를 만들겠다" 같은 호언장담은 웬만해선 하기 쉽지 않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1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와우 멤버십을 그렇게 만들 것이고, 이를 위해 멤버십 혜택을 계속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쿠팡의 실적 개선 키(key)는 결국 와우 멤버십이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1분기 매출은 전년(6조1653억원)보다 20% 증가한 7조3990억원(58억53만달러)를 기록, 사상 최대 분기 매출을 경신했다. 영업이익은 1362억원(1억677만달러)으로, 지난해 3분기(1037억원·7742만달러), 4분기(1133억원·8340만달러)에 이어 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1억달러 고지를 처음으로 돌파하며 최대 분기 영업이익도 경신했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한 것에 대해 "향후 3년 내에 5500억달러(약 7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한 유통시장에서 쿠팡의 시장점유율은 아직 한 자릿수로, 우리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쿠팡의 당기순이익은 1160억원(9085만달러)으로 지난해 1분기 당기순손실 2521억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조정 EBITDA(상각전 영업이익)는 2억4091만달러로, 마진율은 4.2%를 기록했다. 김 창업자는 특히 고객 경험을 희생하지 않고 수익성 개선 노력에 성공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쿠팡은 단순히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은 것이 아니라 유통 시장 전체 1등을 넘보고 있다. 1분기 매출 기준으로 쿠팡은 이미 롯데쇼핑(3조5616억원)은 물론, 이마트(7조1354억원)마저 제쳤다. 백화점 부문인 신세계(1조5634억원)를 더하면 신세계그룹의 1분기 매출은 8조7000억원이다. 올해가 한국 유통 시장의 최강자가 누가 될 것인지 분수령인 해인데 쿠팡은 더 나아가 콘텐츠 시장에선 '큰 손'이 될 여지가 있고, 물류 시장에선 선두 업체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한 때 쿠팡과 자웅을 다투려고 의지를 다졌던 SSG.COM(쓱닷컴)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1분기 순매출액은 421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156억원으로 전년 보다 100억원가량 손실 규모를 줄인 것에 그나마 만족해야 한다. G마켓을 더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G마켓 1분기 매출액은 3031억원으로 역시나 전년보다 4.2% 감소했고, 10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미래형 점포'인 이마트 연수점을 찾는 등 오히려 오프라인에 힘을 싣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마트의 이커머스 기업들은 사실상 자체 외형 확장은 포기, 수익성 개선으로 방향을 튼 모습이다. 이마트는 쓱닷컴의 SSG PAY(쓱페이)와 G마켓의 스마일페이 등 간편결제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대신 이커머스 기업별로 사업 연동에 힘을 싣고 있다. 또 각사의 멤버십을 합친 '유니버스 클럽 멤버십'을 통해 매출 기여도가 높은 충성고객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같은 그룹 차원의 활동이 쓱닷컴 재무적투자자(FI)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도 나온다. 쓱닷컴은 지난 2019년 사모펀드(PEF) 운용사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벤처캐피탈(VC) 블루런벤처스(BRV)로부터 총 1조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당시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약 3조3000억원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요즘처럼 적자를 감수하는 성장 전략이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흑자 전환에 애를 먹고 있는데 거기에 매출 확대 속도마저 더디다보니 쓱닷컴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라며 "IPO에 나서기엔 아직 역부족인 몸값이라 안팎에서도 예전보다 큰 기대감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래도 쓱닷컴은 이마트라는 모회사가 있다. 계열사끼리 협업을 할 기회도 있고, 여차하면 그룹이 지분을 사들이면 된다. 문제가 좀 더 심각한 쪽은 컬리다. 유통업계와 VC업계는 "이마트 입장에선 어차피 온라인 쪽을 하지 않을 수 없다보니 쓱닷컴을 만든 것이고 어떻게든 키우려고는 애를 쓰겠지만, 컬리는 상장 타이밍은 타이밍대로 놓치고 이 때문에 회사만의 고유 색깔도 사라지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컬리는 이달초 기존 주주인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로부터 1000억원, 아스펙스캐피탈로부터 200억원의 투자를 받는 안건을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앵커PE는 지난 2021년 컬리에 25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컬리는 이번에 확보한 자금을 물류 내 테크 투자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요즘 같은 투자 빙하기에 이 정도의 투자를 유치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평이 나온다. 반면 기존 투자자의 추가 투자가 자신들의 지분 가치 하락을 막으면서 시간을 좀 더 벌기 위한 목적 아니냐는 평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지난해 컬리는 처음으로 2조원대 매출을 기록했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 기존 '신선식품(마켓컬리)'과 함께 '화장품(뷰티컬리)'을 새로운 주력 카테고리로 내세운 게 일부 효과가 있었다는 평이다. 하지만 여전히 2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 중이고 "본질을 잃었다"는 냉혹한 평가도 뒤따르고 있다. 경상권으로 샛별배송을 확대하긴 했지만 여기선 쿠팡과 싸워야 한다. 컬리는 카테고리에서나 배송에서나 '규모의 경제'를 기대하고 있지만 여러모로 녹록지 않다. 김슬아 대표의 경영권 불안 문제는 차치하고도 말이다.
이 짧은 몇 년 새 쿠팡이 만들어 놓은 멤버십과 빠른 배송의 벽은 쓱닷컴이나 컬리가 넘어설 여지를 조금도 남겨두지 않았다. 다만 쿠팡도 좀처럼 반등세를 이어가지 못하는 주가가 문제다. 3월 이후 상승세를 보이던 주가가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다시 꺾이면서 주당 16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양한 평이 나온다.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그동안 쿠팡이 적자를 기록하더라도 고평가를 받았던 것은 매분기마다 급증하는 신규회원 가입, 즉 성장성 때문이었는데 국내에서 더 끌어모을 수 있는 여력은 많이 소진이 됐다"며 "지난번 2분기 연속 흑자였을 때도 주가 반응이 미온적이었는데 이번 3분기 연속 흑자에도 주가가 반등하지 못한 이유 역시 이런 추세를 반영한 것 같다"고 전했다.
다른 IB 관계자는 "쿠팡의 주식이 미국에 상장돼 있지만 결국 주무대는 한국인데 이커머스 시장 자체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며 "애초에 직매입과 물류 배송을 함께 하는 영업구조상 마진을 높게 잡기가 쉽지가 않기에 결국 멤버십이 수익성의 핵심인데 한국 시장에서 추가로 멤버십을 더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고 현 멤버십 수준을 유지하게 하는 것도 또다른 과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쿠팡이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 국내 확장에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 쿠팡의 주가 부양 조건은 다시 수익성이 아닌, 확장이 됐다. 자연스럽게 해외 사업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쿠팡은 지난해 대만에 진출하며 로켓배송·로켓직구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데 김범석 쿠팡 창업자도 컨콜에서 "대만 사업은 초기 단계지만 현재로는 가능성이 보여 기쁜 상황"이라며 특별히 언급하기도 했다. 해외 사업에서 성과가 언제쯤 날지, 나더라도 확실한 캐시카우가 될지는 미지수다. 해외 유통과 물류 시장에서 현지업체들을 대체하기엔 쿠팡이 넘기 쉽지 않은 또 다른 유무형의 벽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