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 대거 쌓았지만 거래 부진에 소진 부담 커
회수 및 소진 실적 없이는 새 펀드 결성도 난항
프라이빗 전략 고수 부담…옥션딜 참여 불가피
회수도 쉽지 않아…"올해 PEF 인수 많아질 것"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대형 사모펀드(PEF)들의 경쟁입찰 참여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작년 이후 거래 시장 기근이 심화하면서 쓰지 못한 드라이파우더(미소진자금)가 여전히 많다. 회수 성과가 마땅치 않은 시기라 투자라도 잘해야 하는데 독자적으로 새로운 거래를 발굴하기는 쉽지 않다. 운용사(GP)들은 자금 소진을 위해서든 출자자(LP)에 활동 상황을 보이기 위해서든 대형 경쟁입찰에 얼굴을 비춰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경쟁입찰 거래에서 대형 PEF의 적극적인 행보가 눈에 띈다. IMM PE는 이달 치러진 전주페이퍼와 전주원파워 매각 예비입찰에 이름을 올렸다. 태림포장 성공 경험이 강점으로 꼽힌다. 이 외에 IMM인베스트먼트도 입찰 참여를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LG화학 진단사업부 매각 거래에선 글랜우드PE, 이음PE, 한국투자PE 등이 이름을 올렸다. 경쟁입찰보다는 기업과 직접 협상하는 거래에 강점이 있는 곳들인데 이번엔 치열한 인수 경쟁을 벌였다. 안정적인 이익을 내고 있고, LG그룹에서 떨어져 나올 경우 사업 확장성도 크다는 평가다.
SK팜테코 상장전투자유치(프리IPO)에도 IMM PE, 스틱인베스트먼트 등 대형사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업에서 극히 제한적인 정보만 제공한 터라 투자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대기업의 성장성있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 분위기다.
-
국내 PEF 시장은 태동 후 매년 성장 가도를 달렸고 2021년 정점을 찍었다. 2016~2020년 평균의 두배 가까운 투자와 펀드 결성이 이뤄졌고, 넘치는 유동성을 담기 위해 크레딧펀드 등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는 곳이 늘었다. 그랬던 분위기가 1년 새 달라졌다. 작년 장기 불황 우려가 커지고 각국이 유동성 긴축 정책을 펴면서 LP와 GP, 금융사 모두 활동 제약이 커졌다. 한 두 달 사이 거래 성사 여부가 갈리는 사례가 많았다.
사상 최고로 쌓아둔 자금이 역설적으로 PEF의 자금 소진 부담을 키우는 모습이다. PEF가 대형화할수록 주기적으로 새 블라인드펀드를 결성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통상 기존 빈티지 펀드 자금을 60~70%를 쓴 후 새 블라인드펀드 자금 모집에 나설 수 있는데, 못쓴 자금이 많다 보니 운용사의 살림 계획이 꼬일 수밖에 없다. 1년이 늦어지면 관리보수 수령 시기도 1년이 늦어진다. 상반기 온기가 돌 듯하던 시장은 여전히 주춤하고 하반기 반등도 낙관하기 어렵다.
LP들의 자산 관리는 점점 빡빡해지고 있다. 작년엔 예년에 비해 회수 성과를 내기 쉽지 않았고, 기존 투자 자산들의 가치도 많이 떨어졌다. 자금을 받아가려면 회수 성과를 내라고 운용사를 압박하고 있다. 자금 소진율도 낮으면 출자를 기대하기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 LP 관계자는 “최근 회수 성과가 좋지 않은 분위기인데 투자도 하지 않고 있다면 출자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PEF 입장에서는 좋은 기업을 비공개적으로 인수하는 것이 최선이다. 최근 오스템임플란트처럼 대형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지만, 그런 기회가 항상 주어진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승리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렵더라도 경쟁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여러 해 전 5000억원 이상 블라인드펀드가 일상화하기 시작할 때부터 지적된 문제다. 프라이빗 거래만 고집하던 운용사들이 전략을 바꾸는 사례가 많아졌다.
최근 대형 경쟁입찰에서도 이런 고민이 드러나고 있다. PEF가 거래의 열기를 띄우는 것은 흔했지만,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투자은행(IB)이나 회계법인 등 잠재 거래를 갖고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움직임도 많아졌다.
수천억원대 블라인드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펀드 규모가 커졌는데 거래 시장은 침체가 이어지고 있어 프라이빗딜이나 소규모 메자닌 거래만으로는 자금 소진 목표를 채우기 어려워졌다”며 “프라이빗 거래를 선호하지만 다음 펀드 결성을 위해선 비용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경쟁입찰 거래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글로벌 PEF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KKR 아시아 4호 펀드(150억달러), 칼라일 아시아 파트너스 6호 펀드(85억달러), 베인캐피탈 아시아 5호 펀드(50억달러) 등 2020년 이후 유동성 장세에서 대규모 아시아 투자금을 쌓아둔 곳들이 많다. 큰 시장인 중국과 인도는 투자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 한국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크레딧, 인프라, 부동산 등 자금의 성격도 다양하다 보니 웬만한 대형 거래에선 글로벌 PEF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에어퍼스트 소수지분 매각 역시 치열한 경쟁을 벌인 글로벌 투자사들이 만족스러운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경쟁입찰 거래는 PEF보다 기업 쪽에서 많이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PEF 포트폴리오의 경우 회수 시기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보니 매각 자문을 맡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실제로 PEF가 물밑에서 회수를 검토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다만 기대 수익률을 충족하기는 어려운 분위기다.
이는 기업들도 마찬가지지만, 기업들은 투자 수익보다 유동성 확보가 중요한 경우가 많다. 신사업을 키우기 위해 비주력사업을 팔거나 투자자를 유치하는 사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어느 기업 할 것 없이 잠재 매물로 거론되는 회사나 사업부가 한 두 곳씩은 있다. PEF가 미리 개별적으로 접촉해서 투자에 성공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경쟁입찰 참여가 불가피하다.
한 IB 관계자는 “작년까지는 PEF에서 나오는 회수 거래들이 많아 쏠쏠한 성과를 냈지만 올해는 다들 회수는 쉽지 않다 보는 분위기”라며 “기업은 매각하고 PEF들은 사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