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강화·지배구조 선진화까지…허들 높아졌단 평
'중대사고' 빼도 '책임지도'…사고 터지면 '사다리타기'
은행·지주 부담 커 대응 마련 분주…발표 후 무용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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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안 발표가 한차례 더 늦춰질 전망이다. 당초 내부통제 강화에 초점을 맞춰 법률 개정을 추진해왔지만, 올 들어 지배구조 선진화가 이슈가 되며 개선안에 반영할 내용이 늘어난 탓이다.
입법 예고를 앞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 개정안에는 '중대 금융사고' 관련 내용이 빠지되, 임직원 책임 범위를 사전 명시하는 '책임 지도'는 예정대로 담길 전망이다. 때문에 은행권에서는 여전히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반응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중 발표 예정이던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안 발표가 내달로 재차 미뤄질 전망이다. 당초 1분기 중 내부통제 강화를 골자로 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올들어 정부 차원에서 은행권의 지배구조 개선에 집중하며 반영해야할 내용이 늘어난 탓이다.
금융권은 연초 대통령이 은행권의 최고경영자(CEO) 장기집권 등 '주인 없는 회사'의 지배구조에 관련한 문제를 지적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내부통제 강화에 그치지 않고 CEO 선임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장치까지 담아야 할 필요성이 생긴 셈이다.
법조계에선 이 때문에 지배구조법 개정 작업 전반의 문턱이 올라갔다는 반응이 나온다.
법조계 한 인사는 "연초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금융위가 내놓을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물론 당국 차원 지배구조 개선방안에 요구된 내용이 늘어나면서 허들이 올라간 듯하다"라며 "내부통제 강화의 경우 연초 대부분 내용이 확정됐지만 현재 정부 현안 일정과 겹쳐 세부 내용 마련에 진행 속도가 더딘 것으로 전해진다"라고 설명했다.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조명되던 중대 금융사고 관련 내용은 이번 발표에서 빠질 가능성이 크다.
원래 금융위는 사회적 파장이 크고 소비자 및 금융회사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큰 중대 금융사고를 열거해 CEO에 중징계를 내리는 내용을 담으려 했다. 일정 규모 이상 불완전 판매나 횡령·배임, 전산사고 등이 발생하면 당국이 CEO를 해임 또는 직무정지에 처할 수 있게 한 내용이라 금융권 반발이 상당했다.
중대 금융사고 관련 내용은 빠지지만, 은행권에서 특히 부담을 느끼고 있는 '책임지도'는 예정대로 도입될 전망이다. 책임지도는 금융회사 임직원의 업무와 책임 범위를 미리 확정해야 하는 규제다.
현행 지배구조법은 금융회사에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할 의무만 부여하고 있다. 책임지도가 도입되면 내부통제 실패가 발생할 경우 사전에 기재한 책무구조에 따라 관련 임직원부터 CEO는 물론 이사회까지 책임을 지게 된다. 개정안이 입법예고를 거쳐 국회를 통과·시행되면 은행과 금융지주회사는 6개월 이내에 각 업무 영역마다 책무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각 업무마다 책무 구조를 그려놓은 뒤 내부통제가 불거지면 사다리 타기를 거꾸로 하듯 이사회까지 책임을 묻는 게 책임지도 제도"라며 "은행권의 부담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고, 이 때문에 은행 사외이사진의 불안감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4대 은행지주를 중심으로 벌써부터 대응 마련에 분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정안 시행까지 난항을 예상하는 시각도 있지만 법안 통과 여부를 떠나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큰 탓으로 풀이된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주요 대형 은행금융지주들은 컨설팅사는 물론, 회계법인과 법무법인 등에 분주히 자문을 구하고 있다. 법안 통과 이후 책무구조 마련까지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증권·보험업계에서도 은행과 지주사 동향을 살피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당국에서 사전 주의 노력에 따라 책임 경감 여부를 따질 때 용역비용 등도 판단 근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구체적인 법안 내용이 드러나면 결국 다시 대응 방안을 꾸려야 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현재 금융당국이 참고한 영국의 책임지도 제도 등을 중심으로 컨설팅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이나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타국의 제도를 기반으로 한 기존 대응책은 효력이 적을 수 있다"며 "실제로 현재 주요 은행지주들도 계열사에서 내부통제 실패가 발생했을 경우 지주사의 책무구조는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등에서 혼란하단 반응을 보이고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