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가 주상복합 지분 담보로 1600억 조달
현금 확보하려 알짜 부동산 내놓기도
"어디까지나 버티기 모드일 뿐”
개발업계 대규모 구조조정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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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분양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띨 조짐이 보인다지만 주택과 오피스텔, 상업시설과 물류센터를 막론하고 여전히 지방 사업장의 악성 미분양은 늘어나는 추세다.
PF의 위기는 비단 금융사와 건설사들뿐 아니라 사업의 실질적인 주체인 개발업체, 시행사들의 사업성과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양 시장이 얼어붙으며 시행사들의 현금 흐름이 점점 악화하고 있는 것인데 보유 현금이 마르면서 자금 조달에 안간힘을 쏟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로 꼽히는 A 개발업체는 지난달 말 보유한 사업장 지분을 담보로 약 1600억원을 조달했다. 해당 사업장은 서울시에 위치한 초고가 주상복합 사업장으로 GS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A시행사는 연매출 1조원의 규모가 무색하게 현재 보유한 현금이 100억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사업장의 입지가 워낙 뛰어나고, 분양률이 양호하기 때문에 사업 자체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발업체 자체의 운전 자본이 크게 감소하면서 우수한 PF 사업장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게 된 사례인데 이 경우엔 예상 가능 수익이 크게 줄 수밖에 없다.
최근 수년 간 부동산 업계에서 소위 '핫' 한 시행사로 떠오른 B 개발업체는 보유한 서울 성수동 부지를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인수 당시 땅 값은 3.3㎡당 약 2억2000만원, 총 700억원 규모였는데 현재는 3.3㎡당 1억8000만원~2억원 수준에 인수할 원매자를 찾고 있다. 사실상 손실이 확정된 상황에서 최근엔 브릿지론 만기를 연장했고 본PF 전환은 완료하지 못했다. 해당 시행사 또한 시재가 부족한 것이 자산 매각의 배경으로 꼽힌다. 임직원만 50명이 넘지만 현재 시재는 50억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톱티어(Top-Tier) 시행사 그리고 서울 내 주요 상업지에서 사업을 잇따라 성공시킨 디벨로퍼가 운전자본 부족 현상에 시달리는 점을 비쳐보면 개발업계의 전반적인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국내 최고 입지의 사업장을 보유한 A시행사가 운전 자본이 부족할 정도인데 일반 중소·중견 시행사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며 "그나마 A시행사의 사업장은 사업성이 우수하다고 평가 받아서 자금 조달이 가능했던 것이지 일반적인 대다수 PF사업장은 아주 높은 금리를 적용하지 않는 이상 지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주택과 상업지구 외에도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는 개발업체들도 자금 부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도권은 물론 지방 거점까지 유행처럼 번졌던 물류센터 사업의 경우, 임차인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업성이 악화해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개발 업체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엔 물류센터 업황이 꺾이기 시작하면서 시행사와 선매입을 약속한 운용사 간 갈등이 소송전으로 비화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자금력이 열위한 시행사들은 대주단의 압박, 이자 비용 부담 등으로 길게는 수 년의 소송 기간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분양 시장의 침체, 부동산 경기의 하락세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시행사, 개발업체들의 자금 조달 노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두 자릿수의 높은 금리를 감수하면서도 현금을 확보하려는 중소-중견 건설사들과 마찬가지로, 시행사들 또한 PF지분 또는 보유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거나 손실을 감수하면서라도 부동산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이 예상된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본PF 전환이 불투명한 사업장, 즉 사업성이 떨어지는 PF사업장을 다수 보유한 시행사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행사들이 자금 조달로 연명하는 상황은 어디까지나 버티기일뿐, 분양 시장과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이상 대대적인 업계 구조조정 가능성도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