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들 자금 위기 넘겼지만 출자 고민은 여전
자금 모집 경쟁에 GP들 '하향지원' 움직임도
시장 규모 정상화…중소 GP는 더 어려워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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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사모펀드(PEF) 시장은 지난 수년간 유동성 축제를 벌였지만 다시 차분함을 되찾는 분위기다. 작년 하반기 이후 자금 운용에 애를 먹은 기관투자가들은 올해도 보수적인 출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역량보다 큰 자금을 받아 굴리던 운용사(GP)에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이다. 펀드 자금을 구하기 어렵다 보니 체급을 낮춰 출자사업에 지원하는 GP도 나타나고 있다.
2019년 국내에서 등록한 전체 PEF 규모는 10조원 수준으로 주춤했는데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팬데믹 유동성이 최고조에 달한 2021년엔 등록 PEF 규모가 23조원을 넘어섰고 약정액 1000억원 이상 PEF가 70곳에 육박했다. 대형사들은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조단위 자금을 쉽게 모았고, 중형급 GP들도 2~3년마다 블라인드펀드를 꾸리면서 수천억원씩 덩치를 키웠다.
이런 유동성 장세는 2021년 말부터 주춤해지기 시작했고, 이듬해 대기근이 찾아왔다. 전세계적인 금리 인상 기조에 레고랜드 사태까지 터지며 투자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고객과 회원들의 자금 소요에 대응하기도 벅찬 기관투자가와 금융사들은 PEF 시장에 자금을 투입하기 어려웠다. 2021년 정점을 찍은 PEF 시장은 지난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올해 들어선 유동성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금리 인상 종료가 머지 않았다는 시각이 늘었고, 출자자(LP)들도 이제는 여유가 생겼다. 그럼에도 아직 투자는 적극적으로 늘리기는 어렵다는 분위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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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투자가들은 국내외 PEF들에 후하게 돈을 나눠줬는데 PEF들은 그 자금을 작년부터 잘 소진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집행해야 할 자금 약정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자금을 출자하겠다고 나서기 부담스럽다.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올려둔 금리가 부담스럽고, 후행적으로 반영될 대체투자 손실 성적표도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
캐피탈이나 저축은행 등 중소형 LP들은 더욱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GP들은 어느 기관에 자금줄이 열렸나 정보를 공유하느라 분주하다. 해외에서도 자금을 모을 수 있는 대형 PEF들은 무풍지대지만 그 외는 이래저래 자금을 모으기 어렵다.
한 기관투자가 투자책임자는 “작년보다는 자금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간 올려둔 급여율 금리, 이전에 약정해 둔 출자금 규모까지 감안하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며 “예전이면 1000억원을 출자했다면 이제는 500억원, 250억원으로 규모를 줄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규모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한국 시장 규모에서 조 단위 펀드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것이 정상은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테마를 달리해서 한 GP 공동체가 막대한 자금을 흡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었다. 역량 대비 많은 자금을 받아서 굴리니 자금 집행을 서두르거나 적정가보다 높은 값에 투자하는 사례도 많았다.
다른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한국 시장 규모에서 조 단위 펀드를 소화하기는 쉽지 않다”며 “유동성 풍년에 역량보다 많은 자금을 받은 곳들이 있었는데 점차 이런 사례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출자자들이 깐깐해진 상황이라 운용사들이 원하는 만큼 자금을 받아오기 쉽지 않다. 자연히 운용사들의 눈높이도 낮아지는 분위기다. 새 블라인드펀드를 꾸릴 때마다 규모를 키우는 것이 표준이었지만, 이제는 직전 빈티지 수준만 돼도 만족한다는 곳들이 많다.
대형 출자 사업에 참여할 트랙레코드가 있는 운용사가 중형이나 소형으로 눈을 돌리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산업은행의 혁신성장펀드 출자 사업에선 프리미어파트너스 등 이름값 있는 곳들이 대거 소형 분야에 지원하기도 했다. 이미 핵심 펀드를 만든 터라 눈높이를 낮춘 것도 있지만, 목표 규모를 낮춰 펀드 결성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가 쉽지 않은 분위기에선 출자금을 많이 받을수록 자금 목적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만 커진다는 것이다.
대형사조차 시장 분위기에 따라 눈을 낮추니 그보다 작은 운용사들의 자금 모집은 더욱 어려워진 분위기다. 같은 출자사업이면 트랙레코드와 인력이 잘 갖춰진 대형사가 중소형사에 비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기관투자가들도 이왕 출자에 나서야 한다면 검증된 곳에 자금을 집행하려는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 펀드 결성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려운 소형이나 신생 운용사보다는 자금 여력이 있는 대형사가 안전하다는 것이다. 일부 LP가 ‘루키리그’ 자금 집행을 포기했고, 일부는 루키리그 축소나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아예 지원 등급을 단일화하려는 고민을 하기도 한다.
프로젝트펀드 시장에서 소형 GP의 등용문 역할을 하던 새마을금고 중앙는 최근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며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신생 운용사가 수천억원짜리 펀드를 뚝딱 만드는 일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또 다른 기관투자가 투자책임자는 “자금 모집 경쟁이 치열해지고 업력있는 운용사들의 하향 지원이 이어지면서 중소형 운용사들이 자금을 모으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