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력 정리 속 LG엔솔 매각 가능성 수면 위로
석유화학 부진 속 현금 마르자 재원마련 본격화 평
자산 매각 이어 사업부 선제 조정 가능성도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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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이 배터리 사업 확대로 인한 투자비 부담으로 고민에 빠져있다. 비주력 사업 매각과 차입으로 투자비를 충당하는 가운데,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LG엔솔) 지분 매각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다.
전방 시장 성장에 올라타기 위해 이익이 날 때까지 설비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 주력인 석유화학 업황에 따라 본업 구조조정까지 진행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가 일각에서는 지난 5월부터 LG화학이 자회사 LG엔솔 지분 매각에 나설 거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LG화학 지배력이 81.84%에 달하는 만큼 언젠가 유동화에 나설 거란 시각이 많았지만, 지난 하반기 이후 석유화학 부문 실적 부진으로 현금 흐름이 줄어들며 가능성이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이다. 매년 4조원 이상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만큼 재원 마련이 시급해졌단 분석이 뒤따랐다.
LG화학은 올해 체외진단용 의료기기 사업을 사모펀드(PEF) 운용사 글렌우드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한 데 이어 익산 소재 양극재 공장 매각을 추진 중이다. 석유화학 사업 실적이 저조한 상황이라 해당 딜이 모두 완료돼도 당장 필요한 투자비 규모에는 미치지 못할 전망이 나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4월 이후 여수 나프타분해설비(NCC) 매각과 LG엔솔 지분 매각 등 방안이 테이블 위에 올라간 것으로 파악된다"라며 "NCC 업황 우려가 큰데 석유화학 설비 가동률은 정기보수를 마쳐도 계속 줄어들고 있고, 현금흐름이 마르는 상황에서 법인세나 배당금을 내면서 부담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시장에서 추정하는 LG엔솔 지분 매각 규모는 2조원 안팎에 달한다. 아직까지 회사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시장에선 정해진 자금 스케쥴 상 연내 LG엔솔 지분 등 자산 매각을 통한 대규모 자금 조달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G화학은 "일부 자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나 자회사 LG엔솔 지분 매각 계획에 대해선 아직 확인된 바 없다"라고 밝혔다.
LG엔솔 지분 매각설까지 부각할 정도로 현재 LG화학이 놓인 상황은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다.
배터리 산업은 크게 배터리 셀과 소재 부문으로 나뉘는데, 셀을 담당하는 LG엔솔이 상장한 이후 모회사인 LG화학은 배터리 소재를 담당하는 첨단소재 사업부에 힘을 실어 왔다. 소재 사업의 경우 필요 투자비 부담이 셀에 비해 낫지만 전장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맞춰 조 단위 증설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는 똑같다. 물가 인상으로 인한 단위투자비 증가와 고금리 상황에서 이익이 날 때까지 증설 경쟁을 이어가야 한다.
LG엔솔이 상장을 통해 10조원 이상 시중 자금을 쓸어간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 3사 중에선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반면 후발이던 SK온은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 IPO)가 늘어지다 최근 티끌 모아 태산 격으로 겨우 조달을 마쳤다. 셀 업체뿐 아니라 포스코퓨처엠 등 소재 업체 역시 비슷한 시기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발행 등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한 바 있다.
LG화학의 경우 국내 1위 석유화학 사업체인 데다 자회사 상장으로 상당한 돈을 쥐게 된 만큼 첨단소재 사업 확대로 인한 부담이 그리 주목받지 않았던 편이다. LG엔솔 상장 당시 전체 공모금액의 20%인 2조5500억원이 구주매출로 LG화학에 유입됐다. 그러나 자회사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약·지속가능 소재 및 첨단소재 사업부 투자를 늘리며 대부분 소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1분기 별도기준 영업현금흐름에서 약 1700억원 규모 순유출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투자활동으로 인한 유출까지 포함하면 현금 순유출액이 2조원에 달한다. 올 1분기 말 기준 별도 현금성자산은 1년 만에 8000억원 아래로 떨어졌다. 주력인 석유화학 업황 부진이 길어지는 가운데 매년 4조원을 투입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부담이 점점 커지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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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이나 재무적 부담 없이 당장 자금을 확보하자면 LG엔솔 지분 매각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LG엔솔 주가는 지분 매각 가능성이 제기된 19일 약 4.59% 하락 마감한 뒤 20일 들어 보합세를 보이는 중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LG화학 보유 지분이 81%를 넘기기 때문에 지배력 우려도 없고 상장 당시부터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는 호주머니를 찬 구도란 평이 많았다"라며 "유일한 부담이라면 LG엔솔 주가에 대한 오버행 우려인데, 첨단소재 부문이 본 궤도에 오를 때까지 곳간 관리 정도에 따라 자회사 주가가 눌릴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자산 매각을 통한 투자비 마련을 넘어 LG화학의 사업 구조조정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도 늘고 있다. LG화학은 석유화학 시장에서 국내 최대 NCC를 보유한 업스트림 사업자로 통한다. 그러나 중국의 NCC 증설에 따른 자급률 확대로 중장기 업황 전망이 점점 불투명해지는 가운데, 탄소중립 등 규제 강화 추세로 인한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그간 국내 화학사는 중국이 캐파(CAPA)를 늘리고 자급률을 높이면 고부가 제품으로 믹스를 개선하거나 배터리 사업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대응해왔는데 이게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시각이 늘었다"라며 "중국이 올해 NCC 증설로 미국을 넘어서면 국내 NCC의 장기 수익성 전망이 예전만 못할 가능성은 커지고, ESG 공시 도입이나 각국 규제 강화로 사업 유지하는 데 따른 부담도 커지는 이중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