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人 증시·채권 투자도 가속화
반도체·배터리·화학 등 산업분야에 집중
엔비디아 반사효과에 삼성전자도 고공행진
외국인 투자에 숨통트인 2차전지 SK온
韓 프라임오피스에 몰리는 외국인들
낮은 공실률 매력적, 환차익에 효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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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국내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신고액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인한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 재편, 기관투자가들의 자금 이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현재로선 한국이 탈(脫)중국의 몇 안되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다. 일부 기업들은 외국계 자금을 대거 수혈하며 숨통이 트였다. 프라임 오피스 시장은 전세계에서 한국만이 유일하게 높은 수익률을 기대해 볼만한 곳으로 변모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외국인 직접투자는 신고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3% 증가한 약 7조3000억원(56억3000만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주요 국가들이 고금리 상황 속에 긴축 기조를 이어가며 글로벌 자금시장의 경색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한국 시장에 자금이 끊임 없이 유입되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올해 5월까지 신고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직접 투자 규모 또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국인들의 증권 투자 금액도 지난달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외국인의 국내 증권 투자자금은 약 14조8600억원(114억3000만달러)이 순유입했다.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이 가운데 주식은 약 3조2200억원(24억8000만달러), 채권은 약 11조6500억원(189억6000만달러)이다. 채권의 경우 지난 2021년 2월(89억9000만달러) 이후 최대 순유입을 기록했다.
외국인들이 주목한 산업 분야는 반도체와 2차전지, 화학공학, 신재생에너지 분야 등으로 파악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역시 삼성전자였다. 올해 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의 삼성전자 주식 순매수 규모는 약 약 10조2600억원이었다.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이 본격적으로 꺼지기 시작하면서 삼성전자에 외국인 자금이 대거 몰렸었는데 당시(2000년 1~5월) 순매수 규모는 3조5900억원 수준이었다. 외국인들이 삼성전자에 순매수로 돌아선 것은 2019년 이후 처음이다. 외국인투자자들은 SK하이닉스 또한 지난 4월까지 순매도했지만 지난달부터는 순매수로 돌아선 상태다.
이 같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유입에 힘입어 삼성전자 주가는 어느새 주당 7만원을 넘어섰다. 현재는 주가 상승세가 주춤하긴 하지만 외국인에 힘입어 9만원을 돌파할 수 있단 전망도 나왔다.
외국인 투자 유입은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감산 발표가 주효했다. 또한 미국 증시에서 엔비디아 등 인공지능(AI) 반도체 관련주가 폭발적인 상승세를 기록하며 국내 반도체 대장주 삼성전자의 주가 상승폭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 사업가치와 환차익을 고려하면 매력적인 투자처란 분석이 깔려있었다.
국내 자산운용사 주식운용 한 담당자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섹터가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와 2차전지 등 다소 한정적이다"며 "삼성전자의 경우 하반기 실적 회복세가 기대되는만큼 당분간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올해 초 주식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종목은 단연 2차전지 분야의 '에코프로'였다. 주식시장에서의 열기가 다소 시들해지는가 싶더니 최근 들어선 SK온이 대규모 외국인투자자 유치에 성공하며 2차 전지 시장이 다시 주목받았다.
SK온이 최근 1년간 조달한 자금은 10조원가량이다. 지난달엔 MBK컨소시엄, SNB캐피탈로부터 약 1조2400억원을 확보했고, 1조2000억원 규모의 유로본드 발행에도 성공했다. 지난 8일엔 싱가포르계 재무적투자자(FI) 3곳으로부터 약 5300억원을 추가로 투자 받았다. 끊임 없는 조 단위 투자가 이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기업공개(IPO)까지 불투명했으나 외국인 투자 유치로 숨통을 트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증시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섹터들에 변수는 항상 존재한다. 글로벌 수급 환경, 환율의 변화 그리고 정치적 상황까지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산적해있다. 특히 일본의 엔화 약세가 지속하는 상황에선 국내에 유입한 외국인 투자 자금이 일본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일본 닛케이225 지수는 지난 16일 1990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역시 엔화 가치 하락 현상이 지속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려간 것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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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주목하는 분야는 따로 있다. 바로 부동산 시장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 주요 도시의 오피스 공실률은 경제 위기의 뇌관으로 평가 받는다. LA와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주요 도시 오피스의 공실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수준인 20% 안팎으로 치솟았다. 상하이와 홍콩 등 주요 도시의 공실률 또한 15% 수준으로 파악된다.
서울의 프라임오피스 공실률은 1분기 기준 2.7% 수준으로 공실이 거의 없는 상태로 평가받는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자리잡은 외국과 달리 국내 기업들의 재택근무는 사실상 거의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임대료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인데 렌트비를 크게 낮추거나 오피스를 헐값에 매각하는 등 외국의 사정과는 크게 다르다.
향후 광화문과 강남, 여의도 등 서울 내 주요 오피스 밀집지구 내 오피스 공급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크게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한국의 오피스 시장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리는 요인이 됐다. 특히 원화의 가치가 낮은 상황이 지속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환차익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단 점도 한국 부동산 시장에 관심을 갖는 배경으로 꼽힌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과거 홍콩과 싱가포르에 헤드쿼터를 두고 한국을 아시아·태평양 권역 중 하나로 여기고 투자한 것과는 달리 최근엔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부동산 관련 투자 인력을 대거 뽑으면서 대규모 투자 준비에 나서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외국인 투자자들과는 반대로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부동산, 오피스 투자는 다소 주춤해진 상태다. 환차익과 같은 부가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뿐더러, 현재는 신규 투자보단 이미 투자해 둔 부동산의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해진 시점이 됐다. 특히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 등이 투자한 해외 부동산 투자 리스크는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다. 리스크 관리에 잔뜩 움추린 국내 투자자들과, 한국 시장을 기회로 여기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미스매치가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