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적으로 농협은행 부행장이 부임한 탓…당국이 제동
증권사 CEO 자리는 되레 기피…금융당국 제재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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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금융지주계열 보험사 및 증권사에 은행 출신 '낙하산' 최고경영자(CEO) 인사가 자리 잡기 점점 어려워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에서 CEO에 경영 전문성 강화를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여기에다 해당 계열사의 CEO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도 무거워지면서 은행 출신 뱅커가 섣불리 CEO에 지원하기도 힘들어졌다는 평가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농협생명에 대한 수시검사를 마친 금융감독원은 회사에 대해 경영유의와 개선 조치를 내렸다. 특히 지적 내용 중 지난해 12월 기준 이사회 구성원 대부분의 보험업 경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한 게 눈에 띈다는 평가다.
실제로 농협생명 전체 이사의 평균 보험 경력은 5년에 미치지 못했으며, 대표이사를 비롯해 일부 사외이사와 비상임이사는 보험업 경력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올해 1월 부임한 윤해진 농협생명 대표이사는 1990년 농협중앙회로 입사해 신탁, 투자, 여신금융 부문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30년 넘는 기간 동안 보험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다.
농협금융 계열사 CEO 자리는 통상 농협은행에서 부행장들이 은행장이 되지 못했을 경우 부임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혀있다. 농협생명의 경우 계열사 중에서도 손꼽히는 대형사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해당 자리 CEO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는 후문이다.
한 전직 농협은행 임원은 “농협생명은 부행장 중에서도 실세들이 가는 자리다”라며 “농협은행 부행장은 임기 만료 후 퇴진하는 게 관례이기 때문에 농협생명을 비롯한 계열사 CEO로 가느냐 못 가느냐에 따라 은퇴 후 삶이 달라진다”라고 말했다.
금감원의 이번 조치는 이런 관행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평가다. 농협생명이 감독당국에 꼬투리 잡힌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번 정부 들어서 금융회사 CEO의 전문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비단 농협생명뿐 아니라 다른 금융지주 계열사에도 CEO 전문성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지주 산하에서 은행 출신들이 계열사 CEO를 독식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꾸준히 있었다”라며 “금융당국 내에서도 이런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증권사의 경우는 보험사와 달리 은행출신들이 해당 자리로 가는 것을 오히려 꺼린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 주가조작 등 굵직한 금융 범죄에 증권사들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CEO를 기피한다는 평가다. 내부통제에 대해서 금융당국이 강하게 요구하면서 자칫 금융회사 취업에 제한이 생길 수 있고, 금융당국에 계속 불려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증권업계를 전방위로 조사하면서 금융지주 소속 은행 고위 임원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라며 "이후의 커리어를 고려하여 혹시라도 금융당국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증권사 CEO 자리는 기피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