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부실기업 대출 급랭에 CLO 투자 주춤…국내 투자자들도 촉각
입력 2023.07.03 07:00
    금리 인상 여파로 美 기업 자금 조달 '빨간불'
    도미노 부실 우려에 CLO 투자자들 노출 줄여
    최근 몇 년 국내 보험사·공제회 투자 늘려와
    고신용도 위주지만…익스포저 조절 등 대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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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1조4000억달러(약 1800조원) 규모의 미국 부실등급 대출(정크론) 시장이 위축되면서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시장 동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리 상승 여파로 저신용 기업들의 조달 어려움이 본격화한 가운데 미국 투자자들은 CLO 노출을 줄이고 있다. 지난 몇 년간 CLO 투자를 늘려 온 공제회 등 국내 투자자들도 투자 익스포저 조절을 고민하는 등 대응 마련에 나선 분위기다.

      최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저신용 기업들의 은행 대출채권을 묶어 이를 담보로 발행한 CLO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변동금리인 CLO의 기초자산은 대출(loan)인데, 이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기업들이 이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은행들이 대출 조건을 강화하면서 CLO의 기초 자산인 기업 대출이 줄어들자 자연스레 CLO 발행도 감소했다. 피치북(PitchBook) LCD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12일까지 CLO 신규 발행 규모는 500억달러대로, 전년 동기(600억달러대)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2021년(700억달러대)과 비교하면 더욱 감소폭이 더 크다. 

      CLO는 은행이 기업에 대출 후 발행한 대출채권을 묶은 유동화증권으로 일종의 레버리지론이다. 각각의 대출채권이 묶여 다시 만기와 신용등급을 부여받고 트렌치별로 구조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신용도가 보강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모기지 기반 부채담보증권(CDO)과 유동화 구조가 유사하다.

      CLO는 금융위기 이후 그 규모가 축소됐다가 저금리 시대를 지나며 점차 규모가 커졌다. 특히 기준금리가 0%에 가깝던 시기 절대 수익률을 원하는 투자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말 기준 CLO 등 레버리지론 시장 규모는 팬데믹 이전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고강도 금리인상과 거시경제 여건 악화로 올초부터 정크본드 발행사들의 등급 추가 하락과 조달금리 폭등 우려가 커졌다. 이로 인해 CLO의 최대 투자자인 글로벌 보험사나 공제회들은 해당 시장에 대한 위험노출액을 줄여왔다.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50%가 넘는 것으로 평가받는 트리플 C 등급의 편입 비중이 확대되며 투자자들이 빠르게 발을 빼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최근 하위 등급 CLO의 부실화 가능성이 급격히 커지면서 국내 투자자들도 시장 대응 마련에 나섰다.

      국내 기관들이 CLO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건 2017년 전후부터다. 일반채권 투자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꾸리고 있는 국민연금 등 대형 연기금은 투자에 나서지 않았지만, 당시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가 예상되며 공제회나 보험사 등 장기 투자자들이 CLO 투자에 나선 바 있다. 주식과 채권 등 전통 영역에서 높은 수익률을 얻기 어려운 상황에서 구조화채권 등 대체투자에 관심을 가졌다.

      CLO는 동일 신용등급의 채권에 비해 수익률이 높고, 변동금리(리보)에 스프레드를 더해 수익률이 결정되기 때문에 금리 상승기에 유리하다. 회원들에게 일정 이자율을 보장해야하는 공제회들은 저금리 기간 대안투자로 CLO를 찾았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우정사업본부, 군인공제회, 과학기술인공제회, 행정공제회, 경찰공제회 등이 CLO 투자를 진행한 바 있다.

      국내 기관들의 투자는 고신용등급 트렌치 위주로 이뤄졌다. 금액도 크진 않아 아직 미국 CLO 시장 냉각 여파를 맞을 수준은 아니라는 평이다. 다만 앞으로는 기관들이 CLO 신규 투자에 나서는 데 신중한 움직임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한 공제회 관계자는 “미국에서 CLO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는데, 공제회가 ‘중위험 중수익’ 구조다보니 익스포저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일부 기관들은 CLO 익스포저를 늘리기도 했다. 투자등급 이상 CLO 상품은 안정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CLO가 '부실채권'을 기초로 하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는 은행의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묶어 유동화한 증권이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CLO가 변동금리 론들을 구조화한 상품이다보니 금리 상승 시 추가 이익을 기대할 만하다.

      행정공제회는 2016년 초 CLO 투자를 시작해 1천억 규모의 해외 CLO를 투자한 바 있다. 과학기술인공제회도 최근 몇 년간 CLO 투자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에도 신규 CLO 투자를 한 건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군인공제회도 일부 CLO 투자를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앞서 2012년부터 CLO펀드에 투자했고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LO펀드 등에 약 350억원(3천만달러)을 투자하는 등 간접 투자를 진행하기도 했다. 

      다른 공제회 관계자는 “CLO가 신용등급별로 트리플A부터 C까지, 가장 밑단인 에쿼티도 트렌치가 나눠져 있기 때문에 트리플 B급 이상의 CLO는 오히려 안전하다고 보고 있다”며 “국내 기관들은 투자등급에 있는 CLO만 투자하고 있고 우리도 A급 이상에만 투자를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국내 기관들에서 CLO투자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은 안전성보다는 금리가 워낙 낮아서였고 최근에는 금리가 오르면서 CLO의 매력도가 높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존에 CLO 익스포저가 없는 기관들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CLO 관련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 구조화채권 투자에 신중한 입장인 국민연금도 현재 CLO에 투자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까지도 일부 생명보험사가 CLO 투자를 검토하는 등 보험사들의 관심은 아직 큰 것 같다”며 “B-이하 하위 등급의 부도율은 올해 급등할 것으로 보이지만 A급 이상 CLO는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