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8월 최총 결정 예정됐지만 10월 전후로 미뤄질 듯
대한항공 "총력 대응" 강조…쉽지 않아 보이는 美·EU
커진 '플랜B' 가능성…산업은행 지원 회수 여부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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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이 유럽 반독점당국의 심사를 또 넘지 못했다. EU집행위원회에선 대한항공에 운수권과 슬롯 반납 외에 ‘납득하기 힘든’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 경쟁당국 승인 여부를 점치기 더욱 어려워진 가운데 시장에서는 대한항공과 산업은행의 거래 무산 시 대응 방안 현실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EU집행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승인 여부 결정 시점을 연장하기로 23일(현지시간) 결정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다. 합병 심사 기한을 “업무일 기준 20일 연장한다”고 했다.
대한항공이 기존에 제출한 독과점 우려 시정조치안을 추가로 수정하기 위해 연장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대한항공은 같은 날 "시정조치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합병 심사기안 연장 협의를 진행하였고, 이에 따라 심사 연장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EU 경쟁당국은 2021년 1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 사전 협의 절차를 개시한 후 올해 1월 1단계(예비) 기업결합 심사에 착수했고, 올해 2월부터 2단계(최종)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심사 기한을 7월에서 8월로 한 차례 연장했고, 이번에 재차 연기했다. 합병 승인 결론이 최대 2달 뒤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합병을 위해서는 대한항공이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한항공이 연장을 요청한 데에는 EU집행위 측에서 ‘납득하기 힘든’ 조건을 제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전해진다.
EU집행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할 경우 여객 분야는 물론 항공화물 운송 시장의 경쟁제한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2단계 기업결합 심사가 길어진 것도 이 부분에 대한 검토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EU집행위는 5월 심사보고서(SO)에서 한국과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을 잇는 4개 노선에서 여객 운송 서비스 경쟁 제한 우려가 있고, 또한 유럽과 한국 간 모든 화물 운송 서비스의 경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여객 분야에선 유럽 공항 슬롯을 양보하고, 아시아나항공을 대체할 항공사 물색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이미 영국 히스로공항 7개 슬롯을 버진애틀랜틱 항공사에 내줬고, 중국에서도 베이징·상하이·창사 등 노선의 일부 슬롯을 반납했다. EU와 미국 법무부가 에어프레미아 등의 한국 항공사가 경쟁사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외항사에 슬롯을 넘길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대한항공은 팬데믹 기간 여객기를 화물기로 개조해 화물운송 사업을 하며 흑자를 냈다. EU의 시각에 따라 화물 사업을 줄인다면, 이후 수익성 유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은 EU 측의 강경한 기조에 당혹감을 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달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례총회에 참석한 계기로 진행한 외신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기에 100%를 걸었고, 무엇을 포기하든 합병을 성사시킬 것이다"며 합병을 향한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말 그대로 슬롯이든 화물운송이든 포기할 가능성이 있지만, 대가가 가볍지 않은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앞서 4월엔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위해 2년여간 국내외에서 1000억원 이상의 자문비용을 썼다고 이례적으로 밝혔다. 국내외 로펌 등 자문사와 해외 경쟁 당국 요구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는 것인데, 일각에선 '이만큼 돈을 썼으니 성사돼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산업은행은 합병 무산 가능성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20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이 무산되는 경우에 대한 플랜B는 현재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지금은 (양사의 합병) 무산 이후를 대비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합병에 온 힘을 쏟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산업은행에 ‘플랜B’가 필요해지는 상황이라는 시선이 적지 않다. 산업은행은 이번 거래를 기획했고 수천억원의 자금도 지원했다. 거래가 무산된다면 자금 지원의 명분이 사라지니 회수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 실패할 가능성이 커보인 거래를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기업결합 관련 자문 비용이 1000억원 중반대를 향하는 데도 결과는 낙관하기 어려우니 한진그룹에서 자문사들을 강하게 질책하고 있다"며 "거래가 무산되면 산업은행과 한진그룹 등 당사자간 계약 관계를 수정해야 하는 등 골치아픈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