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후 시장 경색되며 미래 일감 줄어
CS-UBS 통합, 글로벌 IB 구조조정 등 어수선
자문사들도 부진…실적 독려에서 부진한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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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은행(IB)과 자문사들은 상반기 자본시장이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도 어느 정도 실적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작년부터 추진된 굵직한 거래들이 시간차를 두고 상반기에 성사된 덕을 봤는데 하반기도 분위기를 이어갈지 미지수다. 자본시장은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그 여파가 하반기에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IB 업계에선 일감 기근에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흉흉한 소문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상반기 M&A 시장에선 11건의 조단위 거래가 이뤄졌다. 작년 상반기(9건)와 비슷하다. 오스템임플란트, SK쉴더스, SM엔터테인먼트, PI첨단소재 등 경영권 거래는 물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에어퍼스트, SK온 등 소수지분 투자도 있었다.
JP모건은 에어퍼스트, SK온, PI첨단소재 등 거래에 관여하며 따뜻한 상반기를 보냈다. PI첨단소재를 제외하면 대부분 올해 수수료를 챙길 전망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M&A 자문 2건에 그쳤지만 수익은 쏠쏠했다. SK하이닉스의 교환사채(EB) 발행 단독 주선으로 1000만달러 이상의 수수료를 챙기며 IB 중 가장 좋은 상반기 성과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모든 IB가 배를 두드린 것은 아니다. 투자 시장의 두 축인 대기업과 사모펀드(PEF)가 모두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 신규 거래를 따내기 쉽지 않았다. 상반기 진행된 대형 거래들은 화제성이 컸지만 대부분 작년 프로젝트가 올해까지 넘어온 것들이다. IB가 참여할 만한 3000억원 이상~1조원 미만 거래는 작년 상반기 24건에서 올해 12건으로 줄었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하반기 이후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M&A 거래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 걸리는데 작년 하반기 이후 시장이 급냉각하며 올해 하반기 이후 결실을 거둘 거래를 쟁여두기 어려웠다. 기업의 자잘한 사업 정리는 IB가 관심을 갖기 어렵고, PEF 회수 자문 역시 따와도 실행하기 쉽지 않은 시기다.
IB 업계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의 여파로 UBS와 크레디트스위스(CS)의 통합 작업이 진행 중인데, 국내에서도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두 회사 합해 30여명 수준인 한국 IB 인력을 3분의 1가량 줄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CS의 이경인 대표, 심종민·김세원 MD 등 핵심 인력은 UBS로 합류할 것으로 점쳐진다. 오신나 상무는 도이치로 자리를 옮겼다. 이외 주니어 인력의 처우 문제나 CS와 UBS의 직급차에 따른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천기 CS 아태지역 부회장은 UBS에 합류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야 더 많은 직원들이 UBS로 갈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SK그룹 관련 거래 수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보여 왔다. 이 부회장이 UBS로 가지 않는다면 SK그룹 자문 일감을 두고 IB들의 치열한 수임 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실적 불확실성이 커지며 IB의 임원은 물론 주니어 애널리스트까지 일감을 찾아나선 분위기다. 글로벌 IB 본사들이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국내 IB 터줏대감들도 떠날 것이란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BDA파트너스처럼 컨티뉴에이션펀드 전문 인력을 보강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IB가 인력 영입에 보수적인 모습이다. 미국계 IB들도 본사 지침에 따라 인력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IB의 수익은 결국 M&A, IPO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로 결정되는데 대형 M&A는 드물고 IPO도 씨가 말랐다”며 “올해 하반기 이후에도 크게 반등하긴 어려워 보여 IB의 실적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들도 침체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자문, 투자, 대출, 부동산 등 IB 사업 전반이 좋지 않다. 하반기는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지만, 아직까지는 비관론이 많은 분위기다. 자문 맨데이트를 여럿 받아둔 곳도 거래 성사를 자신하지 못하고 있다.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 역시 투자시장 침체의 된서리를 맞았다. 2021년 이후 경쟁적으로 인력을 보강했던 것이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회계법인들은 지정감사제 시행 후 감사부문에서 안정적인 실적을 내고 세무부문도 성장세를 보였다. ‘경영자문’ 부문은 대체로 부진했다. 각 법인에선 회계연도(삼정KPMG 3월말, 딜로이트안진 5월말, 삼일PwC·EY한영 6월말)에 맞춰 자문료를 빨리 받아오라 독려하는 움직임이 많았다. 일부 법인은 중간에 실적 목표치를 낮췄음에도 실적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법무법인들도 하반기 실적을 어떻게 채우느냐 고심하는 분위기다.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해지며 ‘저가 수임’ 부담이 커졌다. 어쩌다 일을 맡아도 고객인 기업들이 어려움을 토로하는 상황이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한 기업 변호사는 “최근엔 유명 변호사들은 한시간 자문료가 100만원을 넘기도 한다”며 “다만 고객 눈치에 이를 다 청구할 수 없으니 10시간을 일하고도 2~3시간밖에 못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