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2조 거론…"1위여도 부담된다" 시각
제약·유통사 등은 지분투자금 마련 어려워
대기업도 박한 마진율·잡음 가능성에 부담
결국 PEF?…인수 후 다음 인수자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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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1위 의약품 도매업체 지오영이 글로벌 사모펀드(PEF) 블랙스톤에 인수된 지 4년 만에 M&A 시장에 나온다. 회사는 공고한 시장 지위를 갖고 있지만 원매자를 찾기는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오영의 예상 매각가는 최대 2조원으로 거론되는데 제약사나 유사 사업을 하는 경쟁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대기업들도 위축된 상황이라 대형 PEF를 바라봐야 할 수 있다. 대형 PEF가 새 주인이 되더라도, 몇해 뒤 이번과 비슷한 고민을 더 심각하게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10일 M&A 업계에 따르면 블랙스톤은 최근 지오영 매각을 위해 주요 투자은행(IB)을 대상으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다. 블랙스톤은 조선혜지와이홀딩스(지분율 71.25%)를 통해 지오영 지분 99.17%를 보유하고 있다. 블랙스톤 외에 공동창업자 조선혜 회장(21.99%)과 이희구 회장(6.76%) 등도 지분 매각에 동참할지 관심사다.
지오영은 조선혜 회장과 이희구 회장이 2002년에 설립했다. 회사는 2009년 골드만삭스PIA에서 400억원을 투자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 각지에 난립한 도매업체들을 인수해 덩치를 키웠다. 2013년엔 골드만삭스에서 지오영 투자를 주도한 인사들이 설립한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1500억원을 들여 지오영 지분 57.6%를 다시 확보했다.
블랙스톤은 2019년 앵커에쿼티파트너스 및 특수관계자로부터 지오영 경영권 지분을 인수했다. 지분 100% 가치를 약 1조800억원에 평가하고, 지분투자(Equity) 5600억원과 인수금융(Loan) 5200억원을 조달했다. 두 공동창업주는 보유지분을 약 3000억원에 팔았고, 매각 대금 중 상당부분을 조선혜지와이홀딩스에 재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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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톤은 작년 하반기부터 지오영 매각 가능성을 저울질했다. 투자 3년이 넘어가기도 했지만, 그동안 한국 시장 성적표가 신통치 않았던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평가다. 블랙스톤은 대성산업가스, 휴젤 등 대형 M&A에서 소득이 없었다. 작년 한국 시장 확대를 천명한 후에도 메디트 등 굵직한 거래에서 고배를 마셨다. 첫 투자인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2015년, 3000억원)은 기관 수요 부진으로 2021년 상장을 철회했다. 현재로선 활용할 카드가 지오영뿐이다.
블랙스톤이 이번에 지오영 매각에 성공하면 확실한 회수 실적이 생기게 된다. 지오영은 몇 차례 재무적투자자(FI)가 바뀌는 과정에서도 볼트온(bolt on) 전략을 이어갔고, 시장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최근엔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등으로도 사업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이다.
블랙스톤은 지오영 매각 기업가치로 최대 2조원 수준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사 사업을 하는 의약품 유통사, 제약사, 대형 PEF 등이 잠재적인 후보군으로 꼽히는데 이 정도 몸값을 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몇 해 사이 기업가치가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볼 수 있는지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블랙스톤은 지오영 인수 2년 뒤인 2021년 인수금융 자본재구조화(리캡)를 단행했는데, 인수금융 규모를 400억원 늘리는 데 그쳤다.
한국의 의약품 도매시장은 과점 업체가 주도하는 해외 선진국과 달리 수천개 업체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사업 규모를 떠나 어떤 업체도 2조원의 몸값을 감당하기 어렵다. 업계 2위 백제약품조차 작년 매출은 2조원인데 영업이익과 현금성 자산은 수십억원 규모에 그친다. 수위권 업체들이 무리해서 지오영 인수에 나설 수 있다 쳐도 높은 기업결합 장벽을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제약사가 지오영을 눈독 들이기도 쉽지 않다. 전-후방 산업 관계에 있지만 한 제약사가 도매상을 가져가게 되면, 다른 제약사들의 견제가 불가피하다. 대출과 메자닌 등을 최대한 활용한다 해도 수천억원의 지분투자금이 필요한데, 대형 제약사 중에서도 이정도 여력이 있는 곳은 손에 꼽는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지오영은 안정적인 실적을 내는 좋은 회사고 인수 시너지 효과를 낼 만한 전후방 기업들이 많다”면서도 “다만 사업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제약 관련 기업들은 1000억원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곳들이 많아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지오영 인수전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미지수다. 회사는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지만 성장성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 대기업이 조단위 자금을 마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금 여력이 있는 곳들은 성장성 큰 ‘미래 산업’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중간에서 ‘마진 떼기’ 성격의 사업을 하다 보니 잡음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지오영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 ‘공적 마스크’ 유통 관련 특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결국 현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행선지는 자금력 있는 대형 PEF가 꼽히고 있다. 꾸준히 시장점유율을 늘리며 이익을 창출하고 있으니 PEF가 보기에 나쁘지 않은 매물이라는 것이다. 해외 글로벌 PEF도 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다.
다만 글로벌 PEF에도 2조원의 몸값은 싸지 않다는 평가다. 덩치가 커질수록 다음 회수 시 접근할 수 있는 원매자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좋은 회사를 사서 잘 키워도 팔기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다음 번에 회사를 받아줄 대형 PEF를 찾는 데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다른 M&A 자문사 관계자는 “현재 거론되는 지오영 몸값만 해도 손꼽히는 글로벌 PEF 외에는 접근하기 쉽지 않다”며 “이번에 지오영을 PEF에 판다 치더라도, 인수자 역시 다음 번엔 어느 PEF에 수건을 넘겨야할지 고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오영의 실적 개선세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쿠팡, 카카오모빌리티처럼 시장을 주도하면서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늘어난 곳이 있지만 지오영은 그와 같은 선상에 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대형 PEF 관계자는 “의약품 도매업 자체가 마진율이 좋지 않은 사업이고, 지오영의 외형을 키우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함께 늘어날 것이란 FI들의 전략도 큰 실효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매각이 시작되면 살펴보긴 하겠지만 현재 거론되는 가격으로는 인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