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 올해 반등 예상했지만 중국 영향으로 고전
신사업 확장 위해 석화 자산 매각 이어질 수도
가격 차이, 업황 부진 등 "거래 쉽지 않다"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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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 공급 과잉이 여전하고 기대했던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도 미미했다. 기업들은 신성장 산업으로 눈을 돌리며 기존 석유화학 자산을 정리하려 하는데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 자산을 내놓아서는 좋은 값을 받기 어려운데 업황 회복은 계속 지연되고 있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LG화학은 2021년 석유화학 사업에서 4조원 이상의 이익을 냈지만 작년 이익은 1조원으로 줄었고, 올해 1분기는 507억원의 적자를 냈다. 재고자산 규모도 2021년말 8조2834억원에서 올 1분기 11조9700억원으로 늘었다.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SK지오센트릭, 여천NCC 등 주요 NCC(Naphtha Cracking Center) 설비 보유업체들의 사정도 어렵다.
화학제품 원재료인 납사 가격은 코로나 팬데믹 초반 유가를 따라 급락했다가 이후 반등세를 보였다. 그러나 작년 2분기부터는 유가보다 크게 낮은 가격이 형성됐다. 기업 입장에선 원재료 가격이 하락한 것이지만, 전방의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줄어들고 가격이 떨어진 데 따른 타격이 더 컸다.
올해 초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며 하반기부터 완연한 업황 회복기에 접어들 것이란 예상이 많았는데 현재 상황은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글로벌 경기가 확실히 살아나지 않고 있다. 전쟁 중인 러시아는 자금을 마련하려 중국 등 우호국에 원유를 '덤핑' 판매하고 있다. 그보다 더 비싸게 원재료를 들여오는 우리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동률도 하락세다.
중국의 경기 부진은 이어지고 있다.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은 7%대로 예상됐지만 6.3%에 그쳤다. 자산 가격 거품이 심해 과거처럼 돈을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서기 쉽지 않다. 중국이 화학굴기에 나서면서 생산 능력이 수요를 뛰어넘은지 오래고, 올해 이후로도 대규모 증설이 예정돼 있다. 제품 절반을 수출하고, 그 중 절반가량을 중국으로 보내던 국내 석유화학사들이 고전할 수밖에 없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은 경기에 민감한 사업인데 국내 수요가 침체된 상황에서 중국 판로까지 줄어드니 우리 기업들이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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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큰 성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보니 기업들은 점차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신성장 산업에 집중하는 한편 비주력 사업은 정리하려는 모습이다.
SK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2차전지에 관심을 보였고, 최근에도 논카본(친환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정유·석유화학 등도 일찍부터 정리하고 싶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SK에너지의 주유소 사업은 매각했고, SK지오센트릭 등 석유화확 사업에서도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모인다.
LG그룹도 배터리와 신소재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 LG화학은 진단사업부를 매각했고, 백신사업부를 활용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성장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LG에너지솔루션 주식 기반으로 20억달러 규모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이 외에도 가동을 중단한 여수 NCC 2공장 매각 가능성이 거론된다. 회사는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케미칼도 배터리·수소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인수했고, 청정수소 생산 역량을 확대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과 손을 잡았다. 석유화학도 고부가 제품 위주로 바꾸기 위해 해외 자산을 정리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른 기업과 달리 해외 NCC 사업(인도네시아 라인 프로젝트)에 공을 들이는 점은 눈길이 간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석유화학 쪽 사업이 너무 부진하다 보니 계속해서 관련 매물이 나올 수 있다”며 “LG화학, SK지오센트릭 등이 사업부나 자산을 내놓을 수 있고 롯데케미칼도 해외 비주력 자산을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석유화학 기업들이 자산을 내놔도 팔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팔려는 입장에선 막대한 설비 투자금을 고려해야 하고, 언제 반등할지 모르는 산업에 투자하는 쪽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동종 경쟁사들은 모두 전통 석유화학 사업에는 관심이 없다.
LG화학의 NCC 여수 2공장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이 잠재 원매자로 거론됐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정유사들도 새로운 먹거리가 필요해졌고, 인접 산업인 석유화학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LG화학은 2000년대 초 2조원대 자금을 들여 해당 공장을 지었다. 지금 그만한 설비를 다시 갖추려면 그 이상의 자금이 들어갈 수도 있지만, 사는 쪽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GS그룹은 의사 결정 체계가 복잡하고, 에쓰오일은 대주주 아람코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쓸만한 곳은 아깝고, 정리할 곳은 원매자를 찾기 힘든 시기다. SK그룹은 탄소 기반 산업에 관심이 많이 줄었지만, 핵심 캐시카우 중 하나인 석유화학을 정리하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회사나 사업부를 팔려면 직원들의 반발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롯데케미칼의 말레이시아(타이탄)나 인도네시아(라인) 사업은 수익성을 떠나 현지 수요는 충분하다. 2019년 가동한 미국의 ECC(Ethane Cracking Center) 사업도 현지 사업성이 우수해 팔 가능성이 크지 않다. 경쟁이 심화한 중국이나 소규모 시장의 석유화학 사업 정도가 처분 가능한 대상으로 꼽힌다. 성장재원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긴 어려울 것이란 평가다.
국내 석유화학 관련 매각 거래가 추진되더라도 국내 기업중에선 나설 만한 곳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해외 기업이나 사모펀드(PEF)에도 시선이 모인다. 물론 이들도 진입 가격을 낮춰야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유럽 석유화학 시장의 통합은 끝났고 이제는 아시아 NCC 통합 차례인데 결국 가격이 문제"라며 "국내 기업은 자산 매각 시 프리미엄을 받고 싶겠지만, 해외 전략적투자자(SI)는 공격적인 사업 통합을 위해 진입가를 낮추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증권사 임원은 "파는 쪽에선 설비 투자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지금 상황에선 원하는 값을 받기 쉽지 않다"며 "업황 회복 시기가 늦어지고 있어 제값을 받으려면 거래 시기를 내년 상반기 이후로 늦춰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