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기회' 일부 투자자 지분 매각 고려
벤처투자 혹한기에 투자회수 압박 커지고
컬리 사례로 커머스기업 IPO 기대도 주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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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패션 플랫폼 무신사가 몸값 3조원 이상을 인정받으며 신규 투자금을 유치했다. 벤처투자 혹한기에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일부 기존 투자자들은 이번 기회에 투자금 회수에 나설 지 고민에 나선 분위기다. 몸값이 높아진만큼 다음 라운드에 대한 부담도 커졌고, 커머스 플랫폼의 IPO(기업공개)에 대한 의구심도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글로벌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무신사의 2400억원 규모 시리즈 C 라운드에 리드 투자자로 참여하는 최종 협약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번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에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웰링턴매니지먼트(Wellington Management)도 참여한다. 한국산업은행, IMM인베스트먼트 등이 추가 투자를 검토하고 있고 규모는 수백억 수준으로 전해진다.
이번 투자유치에서 무신사는 3조5000억원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유치 과정에서 몸값이 최대 4조원까지 거론됐으나 지난 라운드보다 약 1조원 높은 선에서 마무리됐다. 무신사 측이 기대하는 상장 기업가치 눈높이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번 투자 유치에서 최종 기업가치를 두고 끝까지 고민했다는 후문이다.
무신사의 기업가치는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었다. 2021년 3월 무신사는 세콰이어캐피탈과 IMM인베스트먼트가 참여한 1300억원 규모의 시리즈B에서 2조 5000억원의 밸류로 투자 유치를 받았다. 2020년 미래에셋캐피탈 등이 무신사 투자를 검토할 당시 기업가치는 1조5000억원 수준이었다.
시장에선 현재 벤처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무신사가 상당히 긍정적인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는 평이다. 이에 일부 투자자들은 최적의 투자회수 타이밍을 잡기 위한 고민에 들어간 분위기다. 앞서 투자유치 완료 직전 국내의 한 자산운용사가 2년 전 가격인 2조원 중반대의 밸류 수준으로 소량의 구주 매각에 나서기도 했다.
한 대형 VC(벤처캐피탈) 관계자는 “일부 투자자가 투자유치에 앞서 지분을 던진 것은 펀드 만기까지 기다리기 어려웠기 때문일텐데, 밸류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을 것“이라며 “(우리 회사도) 이번 프리IPO 클로징 이후 지분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회수 실적 압박이 있는 하우스들이 많은데, 상대적으로 높은 밸류가 찍혔을 때 매각을 고려하는 것이 현명하다“라며 “결국 다음 라운드에도 누가 더 높은 밸류를 찍어줘야 할텐데, 이번에 찍힌 밸류에서 30~50% 할인해서 매각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무신사가 이번 투자 유치를 발판삼아 본격적인 IPO(싱장) 채비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해외 투자유치에 나선 점을 고려해 향후 해외상장 가능성도 열어둔 것이란 예상이 나왔지만 현재로서는 국내 상장 추진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마켓컬리 사례로 이커머스 유니콘의 상장에 대한 우려가 커진 점을 고려하면 ‘IPO까지 기다리기엔’ 부담이 있다는 투자자들도 있다.
물론 무신사는 ‘흑자 플랫폼’이란 차별점이 있다. 다수의 이커머스 업체들이 대규모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무신사는 2012년 법인 설립 이후 매년 흑자를 이어왔다. 무신사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2019년 2197억원, 2020년 3319억원, 2021년 4613억원, 2022년 7083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플랫폼 몸값의 근거가 되는 거래액도 꾸준한 성장을 보였다. 무신사의 연간 거래액은 2019년 9000억원, 2020년 1조2000억원, 2021년 2조3000억원으로 늘어왔다. 지난해 추정 거래액은 3조4000억원대다. 이익을 내지 못하고 거래액 규모만 키워온 e커머스 플랫폼 기업들과 대조적이다.
그동안 외부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오지 않아 주요 주주 구성도 단순하다. 2019년 세콰이어캐피탈로부터 처음 외부투자를 받았고, 2021년 시리즈 B 직전 기준 조만호 의장이 지분 70%를 보유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주요 투자자 이외의 지분은 기관투자자 및 개인주주들이 보유한 구주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정도다.
무신사의 IPO 성공에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준 성장세가 계속될 지가 관건이라는 평이다. 지난해 무신사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32억원으로 전년(585억원)에 비해 줄었다. 경쟁 심화로 인한 광고비 증가, SLDT(리셀 플랫폼 ‘솔드아웃’ 운영사) 등 자회사의 실적 부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해외 확장도 숙제로 남아있다. 무신사는 당초 올해를 기점으로 북미 지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인 진출이 예정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하반기에 이르렀지만 뚜렷한 해외 시장 확대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2021년 일본에 법인을 세우고 시장 진출에 나섰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해외에선 글로벌 업체, 로컬 업체들과 경쟁해야 하니 쉽지 않다는 평이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커머스 기업들이 상장 이후 주가가 곤두박질 치는 경우가 많은데 무신사가 예외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며 “일정 수준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상장 이후 락업(보호예수)이 걸리는 것도 부담이 되니 밸류가 찍힌 지금이 (지분을 팔기에) 안전하다고 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IPO가 아닌 인수합병(M&A)을 통한 투자회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 무신사의 기업가치가 국내 커머스기업의 M&A ‘마지노선’에 가까워졌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2020년 미국 이베이 본사가 이베이코리아 지분 100%를 내놨을 때 제시한 매각가는 약 5조원이었다. 당시 이베이코리아는 온라인몰 G마켓·옥션·G9의 총 거래액이 연 16조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 e커머스기업이었다. 2021년 이마트가 이베이코리아의 지분 80%를 3조4400억원에 최종 인수했다.
비슷한 시기에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됐는데 당시 배민 운영사 우아한형제들 100% 지분 가치는 36억유로(당시 약 4조8000억원)으로 평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