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 경험 있고 확장 의지 큰 SM·하림에 눈길
'매각 주식수 유동적'…원매자 여력 감안한 듯
결국 자금 문제로 귀결…수조원 조달 쉽지 않아
HMM 현금 활용도 부담…PEF 등판 가능성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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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매각 공고 이후 시장의 관심은 누가 인수전에 참여할 것이냐로 모이고 있다. 자금력 있고 시너지 효과를 낼 만한 현대차, 포스코 등 대기업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그보다는 해운업 M&A로 재미를 본 SM그룹과 하림그룹이 현실적인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재계 라이벌로 사세 확장 의지도 강한데, 결국 중요한 것은 수조원대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있느냐다.
산업은행은 지난 20일 HMM 매각 공고를 냈다. 매각 대상은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주식 3억9879만여주다. 현재 보유한 구주 주식에 1조원 규모 영구채가 주식으로 전환됐을 경우의 2억주를 포함한 것이다. 내달 21일까지 예비입찰 서류를 받는다.
HMM은 팬데믹 이후 국제 해운 물동량과 운임이 폭발하며 기록적인 성과를 냈지만, 올해부터는 다시 업황 하향 주기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HMM에 적잖은 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연내 주식매매계약(SPA)도 체결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시장에선 물류와 관련 있는 유력 대기업의 참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시너지 효과를 낼 만한 현대글로비스는 일찌감치 HMM 인수에 관심이 없다는 뜻을 드러냈다. 포스코는 광물 원료를 나를 수 있는 벌크선 사업을 원할 뿐 HMM의 컨테이너 사업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CJ그룹 역시 군살빼기에 집중하고 있고, LX그룹은 관심은 있지만 수조원의 자금을 들이기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동원그룹의 입찰참여가 거론되지만 아직까지 시너지와 자금력, 그리고 인수의지 등이 확인된 바는 없다.
가장 큰 인수의지를 보이는 곳은 SM그룹이다. 작년부터 대형 은행과 증권사들을 접촉해 대규모 자금 조달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달 초엔 HMM 지분을 6.56%까지 늘렸다고 공시했다. 그룹은 단순투자목적으로 밝히고 있지만 시장에선 HMM 인수를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장남 우기원 부사장은 지난 4월 삼라마이다스에서 110억원을 빌렸고, 4~5월 중 비슷한 규모의 HMM 주식을 매입한 바 있다. 우 회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HMM 인수전 참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SM그룹은 2013년 대한해운, 2017년 옛 한진해운의 미주노선을 인수해 SM상선을 세웠다. 초기엔 업황 부진에 애를 먹었고, 2017년말 재무구조가 건실한 우방건설산업과 합병하기도 했다. 한동안 SM그룹이 해운업에 의지가 약해졌다는 시각이 있었지만, 최근 수년간 괄목할 성과를 내며 자신감을 되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SM상선은 작년 매출 2조2615억원, 영업이익 1조833억원을 올렸다. SM그룹은 올해 기업집단 순위 30위에 올랐다. 19위의 HMM을 인수할 경우 10위권 초반대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하림그룹의 행보에도 시선이 모인다. 2015년 팬오션을 약 1조원에 인수하며 해운업에 진출했는데, 다른 해운사와 마찬가지로 지난 수년간 재미를 톡톡히 봤다. 팬오션은 작년 매출 6조4203억원, 영업이익 7896억원을 올렸다. 최근 팬오션 시가총액은 2조 5000억원 선을 오가고 있다. 하림은 팬오션을 인수하며 ‘한국의 카길’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전부터 국내 물류사, 이스타항공 등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등 물류 사업 확장 의지를 보여 왔다.
하림그룹은 기업집단 순위 27위다. HMM을 인수한다면 중흥건설그룹(20위), SM그룹(30위), 호반건설(33위) 등을 넘어 창업주가 호남 연고인 기업들 중에선 가장 높은 위치로 올라가게 된다. 특히 SM그룹과 하림그룹은 창업주들이 초창기 사업에서 의기 투합했던 터라 라이벌 의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매각자 측 관계자는 “SM그룹은 모든 계열사가 다른 투자 활동을 중단했을 정도로 HMM 인수에 적극적이고, 하림그룹도 HMM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10위권 안의 대기업이 나서지 않는다면 해운업 경험이 있고, 사업확장 의지도 있는 이들 기업이 HMM 인수전을 이끌 가능성이 큰데 문제는 역시 자금력이다. 산업은행은 공고에서 HMM 매각 주식의 수량은 최종입찰 시점에 바뀔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원매자의 인수 여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SM그룹은 산업은행 등이 보유한 HMM 구주 약 40%의 적정 가치를 4조원 수준으로 보고 자금 마련을 자신하고 있는데 감당하기 녹록지 않은 규모다. 계열사 현금을 총동원해도 1조원 이상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이미 HMM 지분을 사모으는 데 1조원 가까이를 투입했고, 평가손도 수천억원에 달해 부담이 크다. 대출 금리가 높다는 점도 신경써야 한다. 자산 규모가 비슷한 하림그룹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HMM은 지난 수년간 호황에 힘입어 10조원 이상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이 자금을 적재적소에 쓰기 위해 M&A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기업이 돈을 빌려 HMM을 인수한 후 HMM의 자금을 활용해 빚을 갚는 식의 M&A는 배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어 추진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03년 건설사 '신한' M&A 관련, 인수자가 피인수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LBO, Leveraged Buyout)하는 방식이 문제돼 배임죄 판결이 나기도 했다.
한 M&A 전문 변호사는 “법원에선 특수목적회사(SPC)가 빚을 내 기업을 인수한 후 피인수기업과 합병하는 방식의 LBO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세다”며 “최근 LBO를 약간 풀어주는 듯한 판례도 있지만 신한 판례는 여전히 유효하고, 대형 거래에선 검찰이 LBO에 해당하는지를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PEF)의 등판 여부도 변수다. 정부 입장에선 유일한 국적 원양선사인 HMM을 PEF가 독자적으로 인수하게 허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재무적투자자(FI)로서 조력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드시 HMM이 필요한 기업이라면 최소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도 감수할 만하다는 것이다. 하림그룹은 팬오션 인수 당시 JKL파트너스와 손잡아 서로 덕을 본 경험이 있는, HMM 인수전에서도 합을 맞출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글로벌 PEF들이 HMM 인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많다”며 “경영권 인수는 어렵겠지만 하방 위험을 막아준다면 FI로 나서볼 만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