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배정 안 되고 투자 보류건 증가 중
이자익 줄고 연체율 올라…위험자산 못 늘려
당국 규제 영향도…"충당금 보수적으로 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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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으로 LP(출자자)들의 움직임이 위축된 가운데 은행권의 하반기 사모펀드(PEF)·벤처캐피탈(VC) 관련 출자가 주춤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자익 성장세가 둔화하고 연체율이 오르면서 위험자산을 공격적으로 늘리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금융당국이 은행업계에 자본여력을 키울 것을 주문하면서 투자 줄이기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대형 시중은행 투자금융 관련 부서들에서 검토 중인 투자 건들이 줄줄이 보류되고 있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에선 한도 소진 등의 이유로 중견 사모펀드 운용사의 출자요청을 미루고 있다고 파악됐다. 은행권 투자금융 부서에선 주기적으로 출자 규모를 책정하는데, 하반기 예산(출자) 규모가 예상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은행권의 하반기 PEF 출자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본다. 실무진 차원에서 검토한 딜이 승인되지 못하고 보류된 건이 여럿"이라며 "한도 소진 등의 이슈로 트랙레코드가 좋은 PEF 출자도 신중히 결정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하반기 비우호적인 업황과 금융당국의 창구지도 등으로 기류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 시중은행 관계자는 "투자 결정을 하는 데 있어 보수적 태도로 바뀐 것이 사실"이라며 "코로나 팬데믹 기간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됐던 원금 및 이자상환 유예조치가 종료되면서 하반기엔 은행권이 건전성 및 연체율 관리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유동성이 조금씩 풀리는 분위기였으나 금융당국의 기조와 은행권의 비우호적 영업환경 등으로 PEF, VC업계를 대상으로 한 출자에 타격이 불가피하단 분석이 나온다. 이자수익 성장세가 낮아지고 재무건전성이 이슈로 부상하면서 당국에선 필요 자본여력 수준을 높이고 있다.
현재 전반적인 은행권의 영업환경은 그리 좋지 못하다. 대표적 수익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작년 4분기를 고점으로 하락세다. 과거엔 대출성장률이 회복하면서 이자익 하락을 방어했지만, 지금은 대출성장률도 더디다. 이미 고정이하여신이 매 분기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대손비용률도 오를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당국에서 요구하는 자본 버퍼(여력)는 더욱 커지고 있다. 예컨대 금융당국은 충당금 적립 수준을 높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은행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준하는 상황까지 감안한 새로운 부도율 지표를 적용해 충당금을 적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울러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경기대응완충자본 적립 비율을 위험가중자산 대비 1% 상향하기로 했다. 현행 보통주자본비율 규제 비율이 7~8%였다면 8~9%로 상향되는 셈이다.
국내 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은 현행 최저 자본비율을 넉넉히 상회하지만 은행들은 대체로 규제비율보다 어느 정도 높은 수준으로 자기자본을 관리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본을 추가로 쌓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일반 대출 등 은행권 영업이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투자업계를 대상으로 한 출자가 감소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란 설명이 나온다. 특히 PEF, VC를 대상으로 한 투자는 위험가중치가 일반 가계대출의 4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투자업계를 대상으로 투자를 하면 위험가중자산은 더욱 가파르게 늘어나기 때문에 쌓아야 하는 자본도 더 많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반기에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매칭 자금을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은행권은 출자로만 연 수천억원을 약정하는 투자업계의 큰손이고 계열사 가운데 출자 선봉장 역할을 했기 때문에 투자업계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은 단독으로만 연 수천억원씩 출자하므로 하반기에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매칭 자금 구하기가 더욱 난망해질 수 있다"라며 "은행이 줄이면 계열사도 영향을 안 받을 수 없고 증권사 같은 경우 해외 대체투자 손실을 염두에 두고 투자를 줄일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다만 은행업의 주 업무가 대출인만큼 인수금융과 관련해선 여력이 남아있다는 관측이다.
다른 관계자는 "원래 은행권의 주요 업무는 대출 주선이고, 투자는 대출 주선을 하면서 좋은 건에 한해 선별적으로 한다는 기조였다"라며 "인수금융과 관련한 거래는 지속해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