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당금 전분기 대비 112% 증가한 영향
드러난 부실 없는데 대규모 충당금 쌓아
선제적 차원이라는데 시장에선 의도된 ‘빅배스’ 의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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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규 우리은행장이 직원들에게 ‘절박함’을 호소했다. 상반기 부진한 실적을 만회하자는 주문도 냈다. ‘어닝쇼크‘라고 자평했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선제적 대규모 충당금을 제외하곤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성적표이기 때문이다. 경영진 교체에 따른 ’빅배스(Big Bath, 부실 털어내기)‘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국 은행본점에서 열린 ‘2023년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우리 현 주소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타행과 격차를 빠르게 축소시키기 위해 절박함을 갖고 노력하자”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은행 리더인 지점장들이 결코 후퇴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영업에 집중해서 상반기 어닝쇼크를 하반기에는 어닝서프라이즈로 되돌리자“라고도 주문했다.
이런 절박함은 부진한 상반기 실적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리금융은 상반기 순이익 1조5390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1조7620억원 대비 12.7% 줄었다. 2분기만 떼어놓고 보면 625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전년동기 9230억원 대비 32.3%, 전분기 9140억원과 비교해 31.6% 줄었다. 사실상 2분기 실적은 ’어닝쇼크‘ 수준인 셈이다.
갑자기 2분기에 순이익이 추락한 배경은 대손충당금 때문이다. 우리금융은 1분기 262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하지만 2분기에는 대손충당금 규모가 556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12.2% 증가했다. 4대 금융지주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증가율이다.
4대 금융지주를 살펴보면 KB금융은 지난 1분기에는 6682억원, 2분기에는 6513억원을 쌓으며, 2분기에 쌓은 대손충당금이 전분기 대비 줄었다.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은 2분기에 각각 5485억원, 4502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으며 전분기 대비 19%, 37.6% 정도 증가했다. 숫자로만 살펴보면 2분기엔 자산규모로 신한금융보다 200조원 작은 우리금융이 더 많은 대손충당금을 쌓은 셈이다.
그렇다고 우리금융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과거 발생한 ‘홍콩 오피스 펀드’ 관련해 2분기에 충당금으로 540억원을 쌓은 것 말고는 연체율이 치솟거나 하진 않았다. 해당 펀드의 경우 투자자들과 자율조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후 회수 가능성도 열려있다.
과거 2015년 농협금융도 ‘어닝쇼크’를 기록한 바 있다. 당시 농협금융은 전년 대비 순이익이 47.7%가 줄었다. 주요 계열사인 농협은행이 파산한 STX조선해양 부실로 5000억원의 충당금을 쌓으면서 충당금전입액이 전년대비 51%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금융은 손에 잡히는 대규모 부실이 없다 보니 증권가에선 갑자기 늘어난 대손충당금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부실 예측 가정이 새롭게 바뀐 것인지 내부 사정을 알 수 없다”라며 “대손충당금을 얼마 쌓을지는 경영진의 판단이라서 외부에서 알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리금융 관계자는 “이전과 달리 새로운 모델로 대손충당금 규모를 산출한 것은 아니다”라며 “선제적으로 대손충당금을 쌓았다고 보면된다”라고 말했다.
이전과 바뀐 것이라곤 경영진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지난 3월 24일 취임했으며,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7월 3일 취임했다. 2분기 실적이 회장과 행장이 바뀐 이후 첫 성적표인 셈이다. 통상 경영진이 바뀌면 이전의 부실을 털고 가는데 갑자기 늘어난 대손충당금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회사의 경우 대규모로 회사 이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은 대손충당금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금융회사 건전성 측면에서 많이 쌓으면 좋은 거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지만, 재무적으론 적정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대손충당금은 이익과 직결되고, 이는 법인세와도 연관된다. 세무당국 입장에선 과도한 대손충당금은 세금 회피 수단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회사의 상황이 바뀐 바가 없는데 어닝쇼크가 났다는 점에서 의도된 빅배스가 아니냐는 시선이 존재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