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사 500억 금융투자자산 요구에 발목
중소 PEF 어려움 커졌지만 제도 완화 미지수
당국·국회 모두 아직 ‘투자자 보호 중요’ 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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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내년이면 간접투자자산운용법 개정으로 사모펀드(PEF)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다. 간접투자 시장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 큰 변화가 있었다. 2011년 전문투자형 사모펀드가 도입됐고, 2015년 경여참여형과 전문투자형으로 관리 체계가 나눠졌다. 2018년엔 관리체계를 다시 일원화하기로 하는 개편안이 발표됐다.
사모펀드 규제는 점점 완화하는 추세였는데, 2019년 라임자산운용 사태가 변곡점이 됐다. 라임자산운용이 부정하게 수익률을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에서 시작된 이 사건은 이후 여러 펀드들의 환매 중단으로 이어지며 자본시장을 뒤흔들었다. 금융당국의 시각도 사모펀드의 자율성 보장에서 투자자 보호로 급선회했다.
속전속결로 자금을 모아 투자할 수 있는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와 까다로운 심의 절차를 거쳐 출자자(LP) 자금을 받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의 운용 방식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관리 일원화를 논하던 시기 라임사태가 터지면서 전문 PEF도 투자자 보호 강화라는 큰 흐름에 편입될 수밖에 없었다.
2021년 제도 개편의 핵심은 일반 사모펀드와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나뉜 것이다. 일반 투자자 자금을 받는 일반 사모펀드는 투자자 보호 기능을 강화하되, 상대적으로 투자 전문성이 있는 LP가 참여하는 기관전용 사모펀드는 완화된 투자자 보호 장치를 적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기관전용 사모펀드의 투자자(기관투자자 및 이에 준하는 자)의 범위가 넓지 않다는 것이다. 상장사의 경우 금융투자상품 잔고가 100억원(외감법인 50억원) 이상이어야 하고, 비상장법인은 500억원 이상이어야 기관전용 사모펀드의 LP 자격이 주어진다. 상장사는 자체적으로 투자처를 찾는 경우가 많고, 비상장법인은 500억원 이상의 금융투자 자산을 가진 경우가 드물었다. PEF 운용사 입장에선 이런 LP를 찾기 쉽지 않다. 있어도 LP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해서 혼선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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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꼽히는 대형 PEF야 연기금·공제회, 국가기관 등 자금을 주로 받기 때문에 기관전용 사모펀드로 인정되는 데 문제가 없다. 반면 기관, 기업 할 것 없이 손을 벌려야 하는 중소형 PEF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작년부터는 금융시장 불안, 새마을금고 비위 사건까지 겹치며 개점 휴업에 들어간 중소형 PEF가 적지 않았다.
이후 PEF 업계에선 LP 범위를 넓혀 달라는 요청이 이어졌다. 자기의 책임으로 투자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있는 비상장사들이 있음에도 투자 규모 때문에 전문투자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라임사태와는 무관하게 성실히 자금 모집과 투자를 집행해 왔는데, 업태가 다른 곳에서 발생한 과실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사모펀드 협의회도 이 같은 민심을 금융당국에 여러 차례 전달했다.
PEF 업계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당장 LP 기준이 완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 ‘2022년 기관전용 사모펀드 동향 및 시사점’ 자료를 발표하며 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 제도적 지원 등에 대한 업계 의견을 적극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중소형 PEF의 500억원 규정 완화 목소리를 확인했지만, 이제 한 달여가 지난 상황이라 당장 제도 변경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PEF 관련 제도를 개선하려면 법이 개정돼야 하는데, 국회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라임사태 후 시장을 살피는 단계고, 아직 법 개정 후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당장 준비하는 것은 없다는 분위기다.
한 국회의원실 관계자는 “법 개정 후 2년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 아직은 시장 반응과 부작용을 살피는 단계”라며 “당장 LP 범위를 조정하는 등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지만 향후 문제가 불거지면 고려해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엔 라임사태 후 시장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금융감독 당국의 판단이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달 금융감독원은 전수검사 결과 일부 사모운용사가 제도권 금융회사로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선관의무를 방기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라임사태의 악령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 부적격 사모운용사, 제2·제3의 라임펀드가 수두룩하고 규제 완화를 논하기도 이르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사모펀드 전수 조사 결과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난 곳들이 상당했다”며 “일반 사모펀드로 등록하면 부담이 크니 기관전용 사모펀드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는 데 편의적인 시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분간 중소형 운용사에 어려운 시기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기업의 경우 사모펀드에 적극적이지 않기도 하거니와, 지금은 여전히 투자 자율성보다는 안정성이 중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 연구기관 관계자는 “비상장사 출자 허들을 높여 출자자 군이 줄어든 것은 맞지만 원래 사모펀드 시장은 중소형 운용사들이 활약하기 힘들고 기업들도 출자에 집중하는 주체도 아니다”며 “지난 제도 개편은 투자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함이었고, 기관전용 사모펀드를 운용하기 어려운 곳들은 일반 사모펀드로 활동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