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1위 삼성생명, 경쟁사 살피며 머뭇 머뭇
금융권 전반 상생금융 불만 폭증…보험사들 피로도 높아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상생금융’ 압박에 은행ㆍ보험ㆍ카드사 등 금융업계 전반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감독당국 수장이 금융사들을 릴레이 방문하면서 관련 방안을 주문하자 은행들은 대출금리 인하와 함께 8000억원에 달하는 지원방안을 쏟아냈고, 카드사들은 우리ㆍ현대ㆍ롯데ㆍ신한 등이 나서 1조8000억원 규모의 지원책을 선언했다.
상대적으로 대응이 느린 부문은 보험사들이다. 다만 한화생명만 보험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서 이복현 원장의 상생금융에 적극 코드를 맞추며 호응했다. 지난 달 13일 한화생명은 여승주 대표가 직접 나서 상생친구 협약식을 맺고, ‘2030 목돈마련 디딤돌 저축보험’, ‘상생친구 어린이보험’ 등 상생금융 상품 출시 및 취약계층 케어 프로그램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5년 만기 저축보험으로 가구소득 중위 200% 이하인 만 20~39세까지 가입"이라는 취지로, 정부가 내놓은 ’청년도약계좌‘보다 가입요건까지 낮췄다. 한화생명은 이달 중 해당 상품 출시를 위해서 속도를 내고 있으며, 가입요건에 맞는 고객들은 제한 없이 가입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에 이복현 원장도 “그간 주로 은행권을 중심으로 상생금융 노력이 있었는데 최근 카드, 캐피탈, 보험사 등도 적극 동참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한화생명의 발빠른(?) 행보에 다른 보험사들도 금감원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보험업은 다른 금융업종과 달리 금리 인하 등의 혜택이 아니라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생금융 동참에 압박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그런 와중에 한화생명이 상품 출시에 나서면서 마냥 외면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가장 눈치를 보는 곳으로는 삼성생명이 꼽힌다. 자칫 자타공인 업계 1위인 회사가 감독당국 수장이 주문한 ‘상생금융’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수 있어서다. 삼성금융사 브랜드인 삼성금융네트웍스가 공동으로 상생금융 상품을 내놓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먼저 깃발을 꽂은 한화생명 발표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이렇다할 발표가 없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아직까지 상생금융 관련해서 특별하게 나온 방안은 없다”라고 말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기존에 발표된 한화생명의 세부안에 대한 분석이 한창인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적으론 경쟁사가 상품에 얼마나 많은 가입자가 몰리는지, 시장의 평가 등을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삼성생명 입장에선 업계 1위가 감독당국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해 이미 기회를 놓친 상황'이라며 "결국 삼성생명은 늦게 발표할 수록 선발주자보다 과감한 안을 내놓아야 하는 부담이 크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삼성생명 내부적으로 한화생명의 상생금융 상품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라며 "이는 삼성생명 내부적으로 오랫동안 리더십 부재 상황에서 ‘사고만 치지 말자’는 기조가 이어지면서 선제적인 의사 결정을 하기 어려운 기업문화가 자리 잡은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다만 보험사들 뿐만 아니라, 최근 금융권 전반에서는 상생금융 릴레이 압박에 대한 적지 않은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크고, 감독당국 수장이 주문하니 마지못해 참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는 것. 일각에서는 상생금융 압박이 관치금융 수준을 넘어 이복현 금감원장 개인의 목표와 연관된 움직임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제기된다.
게다가 보험사들의 경우, 1~2년짜리 상품이 아닌 중장기 상품을 계획해야 하는터라 상품제작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자칫 다른 보험상품에 대한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ㆍ자기시장 잠식) 우려가 있어서 대응이 쉽지 않다는 것. 이러다보니 한화생명을 제외한 다른 보험사들 역시 이렇다할 상생금융 관련 상품을 일절 내놓지 않은 상황인데, 업계 1위 삼성생명이 이를 대변하고 있는 모양새라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