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재가입이 화두가 된 것 자체가 논란
총수가 탈퇴해 놓고, 결정은 계열사에 넘겨
준감위 권고는 사실상 '책임회피성'으로 해석
계열사 사장들, 일부는 10개월 뒤 퇴직할수도
그 어디서도 '리더십'과 '컨트롤타워'는 안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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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재가입 여부를 두고 홍역을 치렀다. 여러 가지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다.
굳이 지금 전경련 재가입을?
애당초, 굳이, 지금 이 시기에…. 4대 그룹 전경련 재가입이 왜 '화두'가 됐는지부터 이상했다.
총선이 7개월 남았다. 지난 2월 전경련에 온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은 윤석열 대통령 선대위원장 출신이다. 내년 총선서 '권력의 꽃'인 공천관리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전경련은 태생부터 '재벌 오너들' 모임이었다. 고(故)이병철 회장이 1961년 일본 게이단렌을 본떠 만들었는데, 게이단렌도 일본 자민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기 위한 단체로 평가 받았다. 전경련도 ▲전두환 전 대통령 일해재단 자금모집 ▲노태우 전 대통령 대선비자금 모집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그리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렸다.
이제 전경련이 쇄신해 재계ㆍ정부 가교 역할을 하겠다지만…전경련이 아니면 그 역할을 할 단체가 없나. 굳이 4대 그룹이 다 모여야만 재계를 대변할 수 있나.
차라리 '반도체산업 협의회', '증권사 협의회'처럼 산업별 단체라면 이해라도 한다. 게다가 4대 그룹이 먼저 나서 전경련에 가교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다. 그저… 막강한 위세를 누렸던 전경련 혼자서 '재벌그룹'들을 다시 초청하고 있는 거다.
삼성 준감위, '책임회피성' 발언만 남기고 빠져
어쨌든 판이 만들어졌으니… 4대 그룹들로서는 답을 해줘야 한다. 규모든, 상징성이든 총대 멜 곳은 삼성그룹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삼성그룹이 '총체적 난국' 수준의 의사결정 구조를 보여줬다.
일단 전경련 탈퇴를 선언한 건 '계열사'들이 아니라 '총수'다. 2016년 12월 국정농단 사건 국회 청문회에서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 본인이 "저는 앞으로 전경련 활동 안하겠다. 저희는 탈퇴하겠다"로 선언해 시작된 일이다. 그리고 7년이 지나 "재가입 하세요"라고 묻는데 총수는 아무 말이 없다. 그리고는 대답할 부담과 그로 인한 리스크를 모두 계열사로 떠 넘겼다.
그 과정에서 '준법감시위원회'에 판단을 맡긴 것도 코미디로 보인다. "위법사항이 있는지 판단하라"고 만든 위원회다. 그런 곳이 재가입 여부를 검토한다? "전경련 재가입=위법소지 있음"을 삼성그룹 스스로 인정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준법감시위원회는 "재가입에 반대한다"라고 답을 내줬어야 했다. 그런데 그 준감위의 결론도 재미지다. "(혹시라도 나중에) 정경유착 행위가 지속되면 즉시 탈퇴할 것 등을 검토한 후에 가입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권고한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았다. 기사 제목을 '가입 권고'라고 뽑아야 할지, 아니면 '가입 반대'라고 뽑아야 할지…
다만 확실한 것은 전형적인 '면피성' 코멘트로 이해됐다는 점이다. "알아서 판단하시라. 다만 준법감시위원회는 분명히 경고했다. 그러니 나중에 전경련 재가입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든 우린 아무 책임 없다. 오케이?"
임기 10개월 남은 월급쟁이 사장이 최종 의사결정권자
'그룹'에 재가입 의사를 물었는데…'총수'는 말이 없고, '위원회'는 "아버지는 남자다" 수준의 답변만 내놨다. 이제 모든 책임은 삼성전자ㆍ삼성SDIㆍ삼성생명ㆍ삼성화재ㆍ삼성증권 5개 계열사 이사회로 넘어갔다.
삼성전자 한종희 부회장은 그렇다치고, 전자 이사회 의장인 김한조 전 외환은행장은 임기가 1년6개월 남았다. 이후에도 삼성전자와 계속 연을 맺을지는 미지수다. 삼성SDI 최윤호 사장 임기도 1년6개월, 이사회 의장을 맡은 전영현 부회장은 그보다 1년 더 많다. 삼성생명 전영묵 사장도 2026년까지 임기고, 이사회 의장인 강윤구 전 보건복지부 차관은 내년 3월이 임기만료다. 삼성화재 홍원학 사장도 당면 임기는 일단 10개월 남았다.
달리 말해…정경유착으로 그룹 총수마저 실형을 살게 만든 원흉(?)인 단체에 대한 재가입 여부고, 이게 걱정이 돼 준법감시위원회까지 열었는데. 정작 최종 의사결정은 짧으면 10개월, 길면 2년 뒤에는 회사를 떠날지도 모를 '월급쟁이' 사장들, 그리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사외이사들에 떠넘겼다.
문제는 그 뒤부터다. 이들의 '반대 없음'으로 재가입이 결정되고 난 후. 행여라도 수년 뒤 또 다른 정경유착 행위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재가입을 반대하지 않은 계열사 대표, 이사회 의장들에게 전가된다. 그때쯤 이들 가운데 삼성그룹에 몸을 담고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계열사 대표들이나 이사회가 내놓을 최고의 해결책은 하나다. 삼성증권처럼 "재가입에 반대한다"라고 선언하는 거다. 회사가 재가입을 신청한 것도 아니고, 자칫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이 은퇴 후 조용히 지내고 있는데 검찰과 법원을 들락거려야 할 일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 이렇다 할 실익도 없는데, 계열사 대표나 사외이사가 왜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지?
공교롭게도…유일하게 재가입을 반대한 삼성증권 장석훈 사장은 5곳 계열사 대표 중 임기가 가장 적게 남은 이다. 내년 3월이 임기만료다. 2018년부터 사장을 역임한 터라 3연임을 할지도 미지수. 그는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 홍원학 삼성화재 대표와 달리 미래전략실 금융일류화추진팀 (2013년~2018년) 근무 이력도 있다.
당사자의 반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장석훈 대표 입장에선 재가입 반대가 가장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 본인은 물론, 회사와 삼성증권 주주들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잔여 임기가 가장 짧은 사장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란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미전실은 사라졌고, TF는 묵묵부답…앞으로도 이런 식?
삼성SDI나 삼성생명, 삼성화재가 본인들이 나서 "전경련에 재가입하고 싶습니다"라고 신청했다면, 이 상황이 그리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들 가운데 자발적으로 전경련 재가입을 원한 곳이 단 한 곳이라도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 이들 모두 전경련 재가입을 묵묵히 승인했다.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드러나지 않은 실익 혹은 피치 못할 이유가 있다든가.
어쨌든 이재용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관련 재판이 남아 있고 아직 1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여당이나 정치권의 입김 하나하나에 조심하고 신경 써야 할 상황이다. 삼성 계열사 각 이사회가 아무리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의사결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삼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한 인사권자인 오너 관련 이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삼성은 아직도 그룹 차원이든, 계열사든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니 전경련 재가입 말고도 이런 일들이 또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다면 그때마다 매번 의사결정을 이렇게 할까. 총수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수뇌부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은 해제했다.
그 순기능을 이어가고자 설립한 사업지원TFㆍEPC경쟁력강화 TFㆍ금융경쟁력제고 TF는 이런 사안에는 일절 언급이 없다. TF와 전혀 무관한 사안이라고? 어쨌든 정현호 사업지원TF장은 그룹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그룹 2인자'로 불리면서 역할을 기대 받고 있다. 삼성생명ㆍ화재ㆍ증권은 모두 금융경쟁력제고TF 소속이고, 이승호 삼성생명 부사장이 장을 맡고 있다.
다르게 해석될 여지도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지 어쨌든 물밑에서 조용히 그룹 차원에서 의사결정은 이뤄졌다고. 하지만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주주들, 그리고 재계의 다른 대기업들이 목도한 모습은 그렇지 않다. '그룹'에 던진 질문에 총수는 조용하고, 위원회는 책임회피성 답변을 내놓고, 모든 책임과 결정은 '계열사' 사장에게 떠넘겨 졌다. 여기에 '리더십'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전경련 재가입은 삼성그룹 미래와 직결된 현안도 아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 속에서 바닥 친 실적과 떨어지는 주가로 고민해야 한다. 삼성 금융사들은 불안한 시장 상황과 급감하는 이익을 대비해야 한다. 위기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자잘한 의사 결정건에서도 저런 모습을 보여준 삼성이라면 정작 큰 위기 앞에서는 어찌 대응할지 불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