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컴퓨팅 시대" 수긍 분위기…시장지형 다시 쓰일 듯
수혜주로 옮겨가는 기대감…SK·삼성 모두 출렁이지만
낙숫물 대기해야 하는 삼성전자…비메모리 1등 비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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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2분기 실적에 대한 시장 총평은 '게임은 끝났다'로 요약된다. 시장 예상을 30% 이상 웃도는 성적표를 내놓으며 ▲넘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고 있고, ▲서버용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가 독주 체제를 굳혔다는 걸 증명한 덕이다. 자연히 AI 반도체 경쟁에서 메모리 업체 수혜 기대감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다만 SK하이닉스엔 명쾌한 AI 수혜론이 삼성전자에는 다소 찜찜한 형국이다.
23일(현지시각) 엔비디아는 2분기(5~7월) 매출액이 135억1000만달러(원화 약 17조9000억원), 영업이익이 77억7600만달러(원화 약 10조3000억원)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각각 시장 전망치보다 20.8%, 30.3% 높은 수치다. 지난 1분기 어닝서프라이즈에 증권가 전반이 전망을 올려잡았지만, 재차 이를 아득히 뛰어넘는 실적을 내놨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 매출 전망이 기형적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대부분이 AI 가속기를 채택 중인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구조"라며 "순이익률 50%를 기록했는데, 지난 2017년 슈퍼사이클 시기 메모리 업체 수익성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새 컴퓨팅 시대를 열었다는 말에 아무도 이견을 달 수 없다"라고 했다.
이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발표 후 "새로운 컴퓨팅 시대가 시작됐다(A new computing era has begun)"라고 밝혔는데 시장 전반이 수긍하는 분위기다. 지난 10일만 해도 엔비디아에 서버용 랙을 제공하는 슈퍼마이크로컴퓨터가 공급 병목을 거론하며 엔비디아 주가가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2분기 데이터센터 부문 매출액은 직전 분기보다 157%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당 6000만원을 넘는 엔비디아 범용 그래픽카드(GPU) H100 판매 비중이 공급 부족 우려를 깨고 그만큼 늘어난 덕으로 풀이된다.
증권가에선 엔비디아의 서버향 AI 반도체 매출 전망에 대한 눈높이를 일제히 올리고 있다. 최근 HSBC증권은 올해와 내년 AI 가속기를 채택한 서버가 기존 추정치보다 각각 23%, 80% 수준 증가할 것이라 눈높이를 조정했다. 엔비디아 GPU 탑재율은 95%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업계에서도 서버 학습용 AI 반도체 시장에선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주 체제를 굳힌 것으로 보고 있다. 생성 AI 시장에 뛰어든 빅테크들이 경쟁사 인텔, AMD 등 대안에 투자하기엔 AI 개발자 확보에서 한계가 뚜렷하단 평이다.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구현하기 위한 컴퓨팅 성능을 갖추자면 가장 비싼 엔비디아 칩이 가장 가성비 좋은 선택지가 된다는 역설도 거론된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젠슨 황 CEO가 '새 컴퓨팅 시대'를 언급한 대로 과거 PC 시장이 열렸을 때 인텔의 시장 지배력과 밸류에이션을 AI 시대 엔비디아와 비교하는 시각이 늘었다"라며 "AI가 반도체 시장에서 의심의 여지 없는 트렌드로 부상한 것이고, 반도체 시장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판"이라고 설명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엔비디아 독주로 인한 수혜주로 넘어가고 있다.
시장은 메모리·비메모리를 가리지 않고 재고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엔비디아 홀로 AI 시장에서 쓸어 담는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점검이 한창이다. 엔비디아 H100 공급량이 시장 기대보다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만큼 1차적으론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담당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수혜주로 꼽힌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2분기 호실적에 반응해 24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주가는 각각 전 거래일보다 4.2%, 1.63% 상승했다. 그러나 25일(현지시각) 예정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잭슨홀 미팅' 연설에 대한 경계감으로 엔비디아 주가마저 눌리자 양사 모두 전일 상승분을 반납했다. 25일 장중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주가는 각각 전일보다 3.9%, 1.6% 하락한 가격에 거래 중이다.
거시경제 변수로 인한 주가 출렁임을 떠나 결국 SK하이닉스의 수혜 기대감이 가장 뚜렷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4세대 HBM 양산에 가장 먼저 성공하며 엔비디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HBM을 어느 가격에 얼마나 탑재할지에 묶인 구도이긴 하나, 엔비디아 역시 SK하이닉스 외엔 당장 AI 반도체에서 메모리 부문 병목을 해결할 대안이 없다. 엔비디아의 H100 판매가 기대를 웃도는 만큼 SK하이닉스의 HBM 판매량 역시 기존 전망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AI 반도체 시장이 커지는 만큼 HBM 경쟁에서 맞불을 놓는 삼성전자 역시 장기적으론 수혜가 확실시된다. 그러나 SK하이닉스에 비해선 아직 기대감이 불명확한 데다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사업과 충돌하는 지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보다 한발 뒤처진 삼성전자는 AMD에 HBM과 2.5D 첨단 패키징을 결합한 턴키 공정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추격전을 예고하고 있다. 고객사인 빅테크 역시 엔비디아가 서버 학습용 AI 반도체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어 AMD-삼성전자 진영의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다. 그러나 당장은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를 한 번 거친 낙숫물에 기대야 하는 형국이란 평이 많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빅테크의 AI 서버 투자금이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를 거쳐간 뒤 낙숫물이 대안 격 후발주자에 떨어지는 구도"라며 "AI 반도체 시장의 절대 규모가 커지면 결국 AMD나 삼성전자도 돈을 벌겠지만, 아직은 AMD-삼성전자가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장 구도가 유지될 경우 수년 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격차도 큰 폭의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증권가에선 수년 내 HBM 시장 규모가 전체 D램 시장의 20~25% 이상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엔비디아의 시장 지배력이 90% 이상을 웃돌면서 SK하이닉스와 협업을 이어간다면 메모리 시장 지위에서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낙숫물을 기다리는 형국 자체가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엔비디아는 이번 실적 발표와 함께 하반기부터 추론용 AI 반도체 출시를 예고했는데, 사실상 삼성전자와 직접 경쟁하는 구도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이후 NPU 시장에 집중해 비메모리 1등 비전을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내놓은 바 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반도체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1차적으론 SK하이닉스에 먼저 반영되고, 삼성전자는 간접적으로 테마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형국"이라며 "비메모리까지 1등 목표를 내건 삼성전자인 만큼 단순히 HBM 납품 여부를 떠나 엔비디아와 직접 경쟁하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존재감이 흐릿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