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연내 SPA도 기대…시장은 승자의 저주 우려
HMM보다 덩치 작거나 해외 해운사만 모습 드러내
HMM 현금 활용 LBO도 해외 매각도 어렵다 평가
"멈춰야 한다" 의견 있지만 산은은 강행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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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6월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HMM 매각을 낙관한다는 뜻을 밝혔다. HMM 인수에 관심있는 기업이 적지 않으며, 이르면 올해 안에 주식매매 계약(SPA)도 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 봤다. 한 달 뒤 매각 공고를 시작으로 HMM 매각이 본격화했다.
지난 21일 치러진 HMM 매각 예비입찰에는 하림그룹, 동원그룹, LX그룹 등 국내 기업과 독일 해운사 하팍로이드(Hapag-Lloyd)가 참여했다. 유효 경쟁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복수의 기업이 출사표를 던지며 강석훈 회장의 기대에 부응한 모습이다.
예비입찰 참여 기업들, 인수의지 및 자금력 물음표
HMM 매각을 진행할 최소한의 필요 조건은 갖춰졌다. 매각자는 이달 중 본입찰적격후보(숏리스트)를 선정하고 후속 절차를 이어갈 예정이다. 다만 이정도 후보군만 가지고 매각을 완주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최대 7조원까지 거론되는 HMM의 몸값을 감수할 의지나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참여 기업들의 기업집단 순위 역시 HMM보다 낮다.
하림그룹은 최대 2조원 규모의 지분투자금(Equity)을 조달하고, JKL파트너스의 블라인드펀드와 프로젝트펀드도 활용할 것으로 거론된다. 각 2조원 규모의 브릿지론과 인수금융을 활용한다면 6조원 이상의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수조원 규모의 외부 차입을 조달하고 감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의문이 적지 않다.
하림그룹은 부동산 자산이 있고, 일찌감치 금융사와 기관출자자(LP)들을 찾은 덕에 잠재 우군을 확보해가는 분위기다. 상대적으로 늦게 움직인 동원그룹과 LX그룹은 활용할 만한 카드가 적을 수밖에 없다. 한 기업은 지분투자금으로 5000억원 수준만 조달한다는 청사진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에서 6조원을 빌리겠다는 것이라, 실상 인수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재무역량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 HMM을 인수하는 데까진 성공할 수 있지만 그 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히 ‘승자의 저주’ 우려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해운업 경험이 있고,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만한 후보들도 있지만 이 정도 되는 선사를 관리할 역량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HMM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기업들을 보면 과거 대우건설을 인수해 몰락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며 “인수는 할 수 있겠지만 5년 뒤 HMM과 그룹 전체가 다시 M&A 시장에 매물로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유일한 국적선사 HMM, LBO도 해외 매각도 제약
기업들이 과감하게 인수전에 나선 배경으론 HMM에 쌓인 10조원 이상의 현금이 거론된다. 즉 인수한 후에 HMM과 합병하거나 배당 성향을 끌어 올려서 수조원의 차입금을 갚겠다는 것이다. HMM 자산에 기댄 차입매수(LBO, Leveraged Buyout)인데 합병형이나 자산인출형 LBO는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특히 배당 확대는 기타주주들의 이익에도 득이 된다.
이런 방식이 허용될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한진해운 파산 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HMM을 키워냈고, 그 결과로 지난 3년간 해운 호황에서 수혜를 입었다. 이렇게 쌓은 현금을 인수자의 재무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활용하도록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HMM 내부에선 작은 기업들이 현금을 활용하게 놔두느니 10조원어치 배를 사자는 격앙된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에서도 부정적인 기류가 있다.
독일 하팍로이드는 글로벌 5위권 선사로 HMM을 인수할 경우 MSC, 머스크와 함께 빅3 위치에 오르게 된다. 다른 기업들과 달리 HMM 현금에 기대지 않고도 거래를 완주할 역량이 있다. 골드만삭스와 독일 EY 등 자문사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HMM 매각 자문엔 관심을 보이지 않은 골드만삭스가 나선 만큼 인수 복안이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정부나 산업은행 입장에선 국가 전략 자산이자 유일한 원양선사를 해외에 팔 수는 없다. 하팍로이드 참여 소식에 해운업계에서도 국가 경제 및 안보를 위해 HMM을 해외에 매각해선 안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관련 법에선 해외 기업의 국내 해운사 지분율 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하팍로이드가 다른 후보들에 비해 압도적인 금액을 써내기라도 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별다른 이유 없이 하팍로이드를 배제하면 세계무역기구(WTO)가 문제를 삼거나, 기업-정부간분쟁(ISDS)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매각 중단이 현실적” 지적도…산은은 계속 강행할까?
이런 배경 때문에 이번 HMM 매각 절차를 중단하고 다음 기회를 보는 것이 나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정부 관련 일을 하면서 해외 기업을 차별할 수 없고, 그렇다고 애써 살려둔 기업을 다시 불확실성의 터널로 밀어 넣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번 HMM 매각에선 별도의 가격 마지노선을 정해두지는 않았다. 다만 매각 공고에선 ‘절차와 일정 및 내용은 매도인의 사정에 따라 취소 또는 변경될 수 있으며, 잠재투자자는 본건 거래 절차에 대하여 일절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했다. 파는 사람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거래를 거둬들일 수 있는 셈이다.
산업은행은 연결자회사 한국전력의 부진과 재무부담에 허덕이고 있다. BIS자기자본비율은 하락하는데 정부는 출자나 지원보다는 자구책 마련을 강조하고 있다. 위험가중치가 높은 기업 주식을 팔아서 현금화하는 것만으로도 BIS비율 개선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HMM 매각을 중단하기 쉽지 않다. 강석훈 회장 입장에서도 부산 이전이든 구조조정 기업 정리든 손에 잡힐 성과가 필요하다.
산업은행으로선 당장의 부담과 향후 더 크게 돌아올지 모르는 부담 중 어떤 것이 중한 것인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초 원했던 우량 대기업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불확실성의 씨앗을 제거하는 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현재로선 HMM 매각을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 정책 판단이 바뀌지 않는 한 절차는 계속해야 한다. 실무진들도 회장의 ‘가이드라인’에 최대한 맞출 수밖에 없다.
한 해운업계 전문가는 “산업은행의 사정도 급한 것으로 보이지만 HMM의 현금을 그대로 둔 채로 특정 기업에 주는 것은 말이 안되고 그 자체로 특혜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해외 업체를 차별할 수 없고, HMM의 현금만 보고 인수구조를 짠 곳에 회사를 팔 수도 없기 때문에 이번 매각 절차는 중단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