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기한 연장, FI 교체 어려워 매각으로 선회
어려운 국내 유통사보다 해외 커머스사들에 주목
Q10·아마존·알리바바 등 거론…거래 구조는 유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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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스퀘어가 11번가를 매각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기존 재무적 투자자(FI)의 회수 기한이 다가온 데 따른 것으로 당초 FI 교체, 투자 기한 연장 등 다양한 선택지가 고려됐으나 결국 회사 매각이 우선 선택지로 부상했다. 여러 해외 기업들과 협상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29일 M&A 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는 복수의 해외 기업과 11번가 지분 매각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잠재 투자자의 제안을 받아 계속 검토하는 단계로 아직 구체적인 거래 구조나 지분율, FI 처우 문제 등은 유동적이다.
11번가는 2018년 사모펀드(PEF) H&Q코리아로부터 50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5년 내 상장(IPO)을 약속했다. 약정 상장 시한은 9월말인데 작년부터 증시가 침체한 터라 이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새 투자자를 유치하는 안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시장의 관심은 저조했다. PEF 출자자(LP)는 공동매각청구권(Drag along)을 행사해서라도 제때 회수하라는 입장이라 상장 기한을 늘리기도 어려웠다.
SK스퀘어로선 상장, 상장 기한 연장, 새 FI 유치 모두 쉽지 않다 보니 결국 11번가 매각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정호 SK스퀘어 부회장은 올해 초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에서도 11번가 지분 매각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조만간 11번가 매각 관련 발표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내 유통사들은 11번가를 인수할 상황이 아니다. 신세계그룹은 이커머스 분야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베이코리아(지마켓)를 인수했지만 이후 사업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롯데그룹도 이커머스 분야에 관심을 가졌으나 그룹 전반의 자금 사정이 악화하며 확장을 자제하라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들은 처음부터 11번가에 관심이 없었거나, 가격차 때문에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찌감치 관심을 접은 국내 기업보다는 큐텐(Q10), 아마존, 알리바바 등 해외 커머스 기업들이 11번가 인수에 나설 만한 곳으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이들 기업은 SK스퀘어가 11번가 매각 가능성을 피력한 후 인수 제안을 하고 협상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11번가 기업가치를 높일 최고의 파트너를 찾겠다는 분위기다.
큐텐은 최근 티몬, 위메프 등 이커머스 플랫폼을 잇따라 사들였고 11번가 인수 의향도 드러냈다. 티몬, 위메프 등은 PEF의 투자를 받은 후 성장성이 둔화하며 애를 먹었는데 큐텐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PEF들은 이커머스사 지분을 큐텐에 넘기는 대신 큐텐홀딩스 지분을 받았다. 이 방식은 당장 원하는 기업가치를 받기 어렵고, 회수 시기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아마존과 알리바바도 11번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마존은 일찌감치 11번가와 상품 및 배송 서비스를 제휴한 우군이다. 지금까지 제휴 시너지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갖는 시선도 있지만, 아마존이 11번가를 인수할 경우 미국 외 시장의 채널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실적 및 주가가 침체한 알리바바도 해외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이커머스에 관심을 갖고 있는 큐텐, 제휴 관계에 있는 아마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알리바바 등이 11번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협상이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박성하 SK스퀘어 사장이 경쟁 구도까지는 잘 만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매각까지 변수는 많다. 회사의 기업가치, 거래 대상 지분율, FI의 거취까지 따져야 한다. 11번가는 올해도 손실을 내고 있지만 시장 점유율 면에선 티몬, 위메프보다는 우월한 위치에 있다. 원하는 기업가치 역시 두 기업보다 높을 것으로 보이는데 1조~1조5000억원 사이가 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거래 대상 지분율은 아직 유동적이다. 현재로선 새 인수자가 경영권을 확보하게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막판까지 지분율을 두고 실랑이를 했던 SK쉴더스 매각 상황과 비슷하다. 일부 기업은 SK스퀘어가 10~20% 사이의 지분을 계속 보유하길 원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1위 통신 사업자 SK텔레콤과의 사업 제휴 등을 이어가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11번가 FI의 회수 방식도 관심사다. FI는 투자 당시 11번가를 2조7000억원 규모로 평가했는데, 이번엔 그 정도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금 상환이라면 SK스퀘어가 매각 대금 일부를 FI에 보전해줘야 할 수도 있다. 지분 교환 후 다음 기회를 노리는 방안도 있지만, FI와 LP가 회수 시기를 늦추는 데 동의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