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진은 '총수 부재 리스크 강조'에 집중
총수 구속, 합병 시너지 전무, 천문학적 비용
"전략 대실패" 평가에도 승승장구한 가신(家臣)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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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하지만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일류주의, 일등주의, 제일주의 등 '최고의 최고'를 추구하던 이미지는 많이 옅어졌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글로벌 기업간 경쟁 강도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는데 위기를 타개할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인베스트조선은 시장 참여자들과 함께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의 문제점과 미래를 시리즈로 진단한다. [편집자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단행된지 무려 8년이나 지났지만 여파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물산 주가를 낮추고자 거짓 정보를 유포했단 혐의로 기소됐고 재판은 이제 시작이다. 정부는 합병 부당개입으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1300억원을 지급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시달리는 중이다. 삼성은 엘리엇에게는 724억원을 비밀 지급하고, 역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일성신약에게는 '배당금 토해내라'고 소송 중이다.
그 사이 삼성그룹의 모든 프로젝트는 사실상 멈춰 있었다고 평가 받는다. 삼성전자의 대규모 M&A는 2017년 하만(Harman)을 끝으로 멈췄다. 5년간 IR때마다 '유의미한 M&A'를 언급했지만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 AI로 대체된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도 놓쳤다. 파운드리 사업에서 TSMC를 따라잡겠다는 포부도 현실에서 멀어지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전국경제인연합회 재가입 여부 같은 사안 하나를 결정하는데 준법감시위원회를 열고, 계열사 대표에게 이를 떠넘길 정도로 그룹 컨트롤 타워와 리더십 부재 상황을 드러냈다.
이런 혼란들 속에서도 승승장구한 이들은 따로 있다. 계열사 임원과 대표이사, 그리고 부회장단 등이다.
부회장들, "총수 없어서 아무것도 못한다"…박수 받고 퇴임했지만 '책임론' 은 없어
이재용 회장이 구속될 무렵 계열사 최고 경영진들은 총수 부재의 상황을 '대규모 투자와 M&A 등 주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원인이자 방패막이로 삼았다.
윤부근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공식석상에서 "참담할 정도로 애로사항을 느끼고 있다. 마음이 아프고 사실 두렵기도 하다"(2017년 8월31일 IFA 기자간담회)며 눈시울을 붉혔는데, 9만명 임직원 수장의 이 같은 태도와 발언은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초격차' 이론으로 삼성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주역 중 하나인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現 고문)도 "저도 전문경영인 출신이지만 굉장한 적자, 불황 상황에서 '몇 조 투자하자'고 말하기 쉽지 않다"(2020년 7월 사내간담회) 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현석 전 가전부문(CE) 사장(現 고문)은 "큰 숲을 보고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 역할은 이재용 부회장이 하는 것. 전문경영인이 서로 돕는 체계로만은 잘 되지 않는다. 전문경영인은 큰 변화를 만들 수 없고 빅 트렌드를 못 본다"(2020년 7월 삼성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 방문시)며 전문경영인 체제의 한계를 인정했다.
이처럼 최고경영진(CEO)이 이 회장에 대한 '충심(忠心)' 경쟁을 펼치는 동안 삼성의 시계는 점점 느려졌다. 경쟁사 TSMC가 오히려 '초격차'에 힘을 쏟았고 삼성은 곳간에 현금을 쌓았는데, 이는 총수 부재의 위기론을 극대화하기 위한 '고의적 실기(失期)'로 해석됐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뒤쳐진 위기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되지 못했다. 권오현 전 회장은 삼성전자가 최고 실적을 달성한 직후 박수를 받으며 떠났다. 눈물을 흘린 윤부근 부회장, 신종균 부회장이 뒤이어 물러났지만 삼성그룹의 위기에 대한 문책 차원은 아니었다.
국정농단 재판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임원들도 마찬가지.
당시 이복현 부장검사(현 금융감독원장)가 이끄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최지성 전 부회장 ▲장충기 전 사장(미래전략실 차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최치훈 삼성물산 전 대표이사 ▲김신 삼성물산 전 대표이사 ▲이영호 삼성물산 전 최고재무책임자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 모두 현직에서 물러난 상태지만 연령대를 고려해보면 대부분 퇴임 시기가 맞물렸다.
특히 삼성의 합병을 앞서 주도한 인사로 꼽히는 최치훈 전 삼성물산 대표이사(이사회 의장), 이영호 전 삼성물산 사장은 현업에서 물러난 2021년에도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사내에서 최고 대우로 예우받았다. 김태한 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또한 지난해까지 대표이사직을 유지했다.
결국 사건의 직접적인 피의자 신분이거나, 중대한 사법리스크에 휘말린 최고위급 인사 몇몇을 제외하곤 대부분 자리를 유지한 셈이다. 현재까지는 이재용 회장만이 과오(過誤) 인정하고 책임을 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상황이 연출돼 왔다.
미전실 출신들 계열사 곳곳 알짜자리 꿰차…성과는?
과거 삼성의 브레인 집합소였던 미래전략실은 해체됐고 이후 그룹의 전략적 방향성이 사라졌다는 위기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미전실 출신 인사 대부분은 각 계열사의 핵심 보직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그룹이 2021년 전무 직급 없애고 부사장 직급과 통합하며 직급 인플레이션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대부분 승진한 후 핵심 보직을 꿰찼다.
국정농단 사태로 잠시 삼성을 떠난 멤버들조차 상당수는 다시 돌아와 그룹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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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삼성그룹 2인자로 평가받는 정현호 부회장은 미전실 해체 이후 회사를 떠났지만 2018년 복귀한 이후 여전히 삼성전자의 중추를 맡고 있다. 사실상 포스트 미전실로 평가받는 사업지원TF장을 맡아 현재까지도 이끌고 있는데 2021년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사업지원TF가 처음 신설했을 당시만 해도 실제로 '포스트 미전실'의 역할을 맡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미전실에 비해 권한이 대폭 축소됐다고는 하지만 오너의 최측근 인사들이 포진했고, 실제로 삼성전자는 물론 각 계열사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막강한 권한을 가진 컨트롤타워도 아니고, 이사회처럼 전면에 나서지도 못한 사업지원TF의 역할의 한계는 분명했다. 사업지원TF가 신설한지 5년, 그간의 성과는 초라하다.
안중현 사장은 삼성전자를 떠나 삼성글로벌리서치로 자리를 옮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룹 내에서 가장 무게감 있는 인물로 평가 받는다.
TF의 여전한 실세인 정현호 부회장, 과거 크고 작은 투자를 진두지휘했던 안중현 사장 손에서 성사된 M&A는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각국의 반도체 기업이 명운을 걸고 투자에 나서는 동안, 삼성의 핵심은 반도체 부문은 과거의 위상을 잃어가면서 사업지원TF의 역할론과 책임론이 대두하고 있다.
과거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미전실 해체 이후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퇴임했던 박학규 현 삼성전자 DX부문 경영지원실장(사장)은 화려하게 복귀한 케이스다.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부사장) 직함으로 삼성을 떠난 박 사장은 친정인 삼성SDS의 사업운영총괄(부사장)으로 기용된 이후 삼성전자DS부문 경영지원실장으로 복귀했다.
지금은 삼성을 떠났지만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의 커뮤니케이션 팀장을 맡으며 삼성의 대변인 역할을 해 온 이인용 전 사장도 삼성전자 대외협력(CR) 사장으로 퇴임 이후 곧바로 복귀 했었다.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의 전반적인 조율 역할은 과거 미래전략실 인사들이 깊게 관여해왔다. 크고 작은 사안들에 대해 그룹 차원의 일관된 메시지 전달이 가능한 순기능이 있었지만, 이인용 사장 후임인 백수현 사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부터는 대외협력 및 커뮤니케이션 등 조직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단 평가가 나온다.
오너의 구속수감을 막지 못한 원죄(?)가 있는 미전실 법무팀 출신 인사들도 잠시 자리를 피하고 다시 돌아왔다. 김수목 삼성전자 법무실장(사장), 엄대현 송무팀장(부사장) 등 현재 삼성전자 법무라인의 핵심 인사들은 과거 미전실 해체 이후 삼성을 떠났지만 곧바로 복귀했다. 김수목 사장은 2020년 삼성전자로 돌아온 이후 1년여만에 사장단 승진 인사에 포함되기도 했다.
미전실 중에서도 중추로 꼽히는 '전략팀' 소속 인사들의 약진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전실 해체 직전(2016년 3분기) 전략팀에 소속된 임원들 대다수는 현재 부사장급 이상으로 승진했다.
미전실 소속 당시 상무 직급이던 강병일 사장은 삼성물산과 제조계열사를 총괄하는 EPC경쟁력강화TF장을 맡고 있다. 현재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대표로 재직중인 정해린 사장 역시 미전실에 전략팀 담당임원(상무급) 출신이다.
EPC경쟁력강화TF 팀장은 사실 삼성물산 사장의 겸직하는 자리, 그 이상의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게 사실이다. EPC경쟁력강화TF를 통해 각 계열사 별로 뚜렷한 사업적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단적인 예로 TF의 중심인 삼성물산은 최초 합병 과정에서 그렸던 청사진을 달성하는데 실패했다. 그렇다고 지배구조상 최상단에 위치한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그룹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역할도 소화하지 못했다.
과거 미래전략실 소속, 금융일류화추진팀 임직원이 대거 포함했던 금융경쟁력제고TF 또한 마찬가지다. 최초 지배구조의 재편을 목적으로 계열사 지분을 일부를 정리한 것 외에 뚜렷한 성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
최근 삼성그룹 계열사 내 유일하게 유의미한 실적을 내고 있는 삼성SDI의 최윤호 대표이사(사장)도 미전실 출신이다. 최 사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직전인 2014년 전무 직급으로 미전실을 떠나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겼는데 2017년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담당임원(부사장)을 맡았고, 2021년부터는 삼성SDI를 이끌고 있다.
결국 그룹 내에서 가장 엘리트로 불리던 이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도 삼성그룹 어디에서도 이렇다할 성과나 긍정적인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란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평가를 배경으로 "승승장구한 정현호 부회장을 필두로 과거 미전실 출신 인사들 간 밀어주기를 한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투자은행(IB) 업계 고위 관계자는 "총수는 구속, 사업 시너지는 전무, 합병을 위한 비용 지불, 그룹 이미지의 돌이킬 수 없는 손상, 사법리스크로 인한 유무형의 손실 등을 겪어 왔는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사는 삼성그룹에 없어 보이는 게 시장의 판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