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SK하이닉스·TSMC '삼각편대' 이끄는 AI 산업
팹리스·파운드리는 물론 '메모리마저' 대안 밀려난 삼성
HBM발 D램 시장도 재편 전망…삼성 '1등' 전략도 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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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는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하지만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일류주의, 일등주의, 제일주의 등 '최고의 최고'를 추구하던 이미지는 많이 옅어졌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글로벌 기업간 경쟁 강도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는데 위기를 타개할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인베스트조선은 시장 참여자들과 함께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의 문제점과 미래를 시리즈로 진단한다. [편집자주]
인공지능(AI) 시대 들어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뒤바뀐 위상이 주가 흐름에서 드러나고 있다. AI 반도체에서 엔비디아나 TSMC와 같은 비메모리 부문에 이어 메모리 반도체마저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의 '대안'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확대가 D램 업황 반전을 앞당기며 삼성전자의 실적 회복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주가가 AI 산업 기대감을 온전히 반영할 시점은 점치기 어렵단 목소리가 높다.
SK하이닉스 주가는 올 들어 60% 가까이 상승했다. 연초 52주 최저가(7만3100원)을 기록할 당시부터 2분기 초까지 메모리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인한 조 단위 적자 우려가 주가를 짓눌렀지만 5월 엔비디아가 H100의 강력한 수요를 바탕으로 1분기 호실적을 발표하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3분기까지 영업적자가 예상되지만 현재 기업 가치는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준 1.4배 이상에 머물며 AI 반도체로 인한 재평가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주가가 업황을 6개월 선반영하는 전형적인 '메모리주(株)'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주가 흐름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올 들어 ▲메모리 반도체 시장 재고가 바닥을 찍고 ▲엔비디아 분기 실적으로 AI 반도체 효과가 증명되자 주가가 회복세를 보이긴 했지만 AI 산업 지형이 윤곽을 드러낼수록 비교적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우려가 늘었다. 지난 1일엔 삼성전자가 연말께 엔비디아에 HBM3를 공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모처럼 주가가 6% 이상 치솟았지만, 이후 다시 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주가 수익률은 약 27% 수준. 순수 메모리 업체인 SK하이닉스와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업황 부진 속 엔비디아 홀로 이끄는 AI 산업에 대한 기대감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 많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 H100의 메가히트로 HBM 수요가 늘고 D램 재고 소진 시점이 앞당겨지며 업황이 선순환 구도에 들어간다는 전망이 많은데, 이는 삼성전자의 메모리 사업 수익성이 곧 회복된다는 청신호"라며 "투자가들이 삼성전자를 바라볼 요건들이 충족되고 있는 건 맞지만 SK하이닉스 수준의 재평가까지 기대하는 목소리는 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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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 주가의 대비는 AI 시대 들어 반도체 시장의 지형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재 반도체 업계에서 AI 산업의 부흥은 엔비디아의 범용 그래픽카드(GPU), SK하이닉스의 HBM, TSMC의 칩온웨이퍼온서브스트레이트(CoWoS) 공정의 삼각편대로 요약된다. 팹리스(설계)와 메모리, 파운드리(위탁생산)가 과거 스마트폰 AP에 버금가는 새로운 컴퓨팅 시장을 이끌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엔비디아의 계속된 깜짝 실적은 3사 협력으로 만들어낸 H100 칩의 서버 시장 수요가 스마트폰·PC 등 기존 주력 응용처의 부침을 상쇄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H100의 폭발적 수요는 단순히 컴퓨팅 환경의 변화에 머물지 않고 반도체 산업 지형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서버 시장의 AI 반도체 채택률(%)은 아직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장기적으로 엔비디아가 로직 시장에서 AMD나 인텔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TSMC의 경우 갈수록 대체가 불가능한 독점적 지위가 굳어지고 있다. 지난 2016년 애플 AP 전량 수주의 배경이 된 후공정 패키징 선제 투자가 AI 시대 들어서도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단 평이다.
메모리 반도체 공급사에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난 수십 년 동안 D램 시장은 중앙처리장치(CPU)를 보조해 왔는데, HBM은 GPU를 보조하는 새로운 '장터'가 열린 격으로 비유된다. D램 여러 장을 위로 쌓아 올린 HBM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경우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삼성전자가 수십 년 지켜 온 1등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삼각편대와 직접 경쟁하고 있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후보군 또는 '독점을 견제할' 대안에 머무른 형국이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H100이 상징하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시스템LSI나 파운드리는 물론, 메모리 사업마저 후순위에 그치고 있다"라며 "AMD와의 협력이 주가에 먹히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서버 시장에서 채택될 가능성도 아직 미지수고 실적에 반영되기까지 한참 남은 이슈이니 당연한 얘기"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팹리스나 파운드리 사업뿐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려난 상황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지난 상반기까지만 해도 SK하이닉스 역시 엔비디아에 수익성이 휘둘리는 상황으로 파악하고 시장 개화에 따른 양사의 고른 수혜를 전망했지만, 예상보다 H100의 독점적 파괴력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삼성전자가 AMD와 협력하며 맞불을 놓는 전략에 대한 기대가 꺾이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가 서둘러 엔비디아에 HBM3를 공급하겠다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증권가는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3분기 들어 90%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모두 기존 D램 생산설비를 HBM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의 엔비디아 공급 물량을 뺏어오지 않는 한 양사 D램 시장점유율이 큰 폭의 변동을 보일 수 있다는 전망도 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반기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매출액 기준 점유율 격차는 6% 포인트 안팎으로 좁혀졌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향 계약을 따내긴 했지만, 엔비디아는 이미 SK하이닉스와 5세대 HBM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계속해서 엔비디아 내 공급 점유율을 두고 SK하이닉스와 경쟁해야 한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1등 지위는 비메모리 1등 전략과도 연관이 깊다. 이 때문에 관련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당분간 HBM 시장에만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시장에선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의 AI 반도체 협력이 TSMC와 파운드리에서 경쟁하던 삼성전자를 메모리 수성전으로 끌어내린 형국이란 시각이 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그동안 메모리에서 번 돈을 파운드리에 투자하면서 그나마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페이스메이커' 지위를 구축할 수 있었다"라며 "인수합병(M&A)도 불가능한 상황에 TSMC와 인텔이 대규모 투자를 내놓고 있는데 메모리 시장 지위까지 상실할 경우 중장기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