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 친환경 선박 외에 시추선도 검토 의제
상선 줄이고 고부가가치 선박 늘리기 위한 취지
기술 부족에 영향력도 미미…사업 본격화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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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은 한화그룹에 편입된 후 ‘종합 해양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다양한 확장 방안을 모색하는 가운데 '시추선'(드릴십) 분야도 새로 힘을 실을 만한 사업으로 거론되고 있다. 범용 선박에 비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최근 유가 상승으로 건조 수요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지난달 한화오션은 2조원 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결의했다. 증자금은 해상풍력설치선(WTIV), 친환경 선박, 방위산업 등에 투자하기로 했다. 최근 방위산업 수주에 총력전을 펴고 있는데, 2040년까지 신사업 및 특수선(함정·잠수함 등) 매출 비중을 41%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지난 5월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정관의 사업 목적에 해운업·해상화물운송사업 등을 추가하며 신사업 진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전부터 시추선 사업 확장 가능성도 검토해 왔고, 시추선 사업 관련 검토 내용도 그룹에 일부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은 지금까지 사업 구조로는 한화오션이 돈을 벌기 어렵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화오션 인수 실사(Due Diligence) 때 한화오션 경영진에 ‘영업이익률이 20%는 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과장섞인 엄포(?)를 했다는 후문이다. 일반 상선보다 고부가 선박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니 시추선도 꾸준히 검토 의제에 오르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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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보니 한화오션도 한화그룹에 들어온 후 경쟁사보다 훨씬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룹의 지원 의지가 크기 때문에 조선 관련 인력들도 한화오션의 행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시추선 등 해양플랜트 분야에서는 전세계적으로 한국인 근로자 비중이 높다. 한화오션이 시추선 사업을 키우려 한다면 관련 인력을 끌어오기 용이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여기에 최근 유가 상승으로 드릴십에 대한 수요도 다시 늘어나는 분위기다. 한화오션은 미인도 드릴십을 정리하고 있고, 삼성중공업이 사모펀드(PEF)에 넘긴 드릴십 4척도 최근 모두 주인을 찾았다. 당초 단기 자금 확보를 위한 임시 방편에 그칠 것이란 시선이 있었지만 유가와 환율 상승 효과로 원금을 훌쩍 넘는 자금을 회수하게 됐다. 한 조선해운 업계 전문가는 “한화그룹은 한화오션이 철판을 자르고 붙이는 것 외의 고부가가치 사업을 하길 바라는데 시추선 사업도 그 중 하나”라며 “이사회와 그룹도 시추선 사업에 대한 내용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M&A나 투자를 비롯한 구체적인 방안까지 마련되거나 정해지지는 않은 분위기다. 그룹이 증자 이후에 대해 밝힌 계획에도 시추선 사업 관련 내용은 아직 들어가 있지 않다. 한화오션도 “이사회에 시추선 사업부 신설이나 시추선 회사 인수 관련 안이 올라간 것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즉 아직은 '가능성'의 영역이라는 의미다.
향후 이 계획이 실행된다고 해도 난관은 많을 전망이다. 그간 국내 조선사들은 과거 시추선 등 해양플랜트(Off-shore) 사업에 공을 들였으나 경험 부족과 출혈 경쟁으로 손해를 본 사례가 많았다. 세계 경기 부침이나 수요처의 상황에 따라 드릴십 재고를 오랜 기간 떠안기도 했다. 해외에 의존하는 시추 설비 기술을 내재화하기 어렵다는 점도 걸림돌로 꼽힌다.
또 지금은 유가가 반등하고 해양플랜트 수요도 고개를 드는 모습이지만 몇 년이 지나면 다시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 과거 한화오션은 수년간 악성 드릴십 재고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이 선박들은 모두 유가가 고공행진하던 시기에 수주했던 것들이다.
한화오션 유상증자를 둘러싼 곱지 않은 시장의 시선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래 사업에 투자한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투자 대비 기대 수익률을 너무 낙관하고 있다”거나, “2027년 이후에나 나올 투자 성과를 지금 반영하긴 이르다”는 지적이 증권가에서 나온다. 여기에 사업 등락을 더 예측하기 어려운 해양 사업까지 더해지면 투자자의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화오션은 드릴십 핵심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시추 장비는 유럽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사실상 지금까지는 외형을 조립하는 데 그친 셈이다. 건조 경험이 쌓이면서 필요 자금을 ‘계산’하는 역량은 생겼지만 고부가가치의 중추는 빠졌다는 것이다. LNG운반선 수주를 싹쓸이하면서도 화물창 기술은 로열티를 주고 사용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해양플랜트 설비에서 일하는 한국 사람이 많다지만, 건조 분야에선 숙련공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 해양플랜트 시장의 주도권은 유럽이 쥐고 있다. 핵심 시추 기술은 물론, 수요처도 유럽에 있다. 한국 기업이 시추선 사업에 공을 들이더라도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시장을 이끌어가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화오션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시추선 사업 등 안건을 테이블에 올릴 수도 있겠지만 실효성은 두고 봐야 할 사안”이라며 “한국엔 해양사업 관련 전문가가 거의 없는 데다 ‘바이킹 카르텔’이 시장을 쥐고 있어 한국 회사가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