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풀지못한 숙제
전임 손태승 회장 시절 ‘완전민영화’에 성공
임종룡 회장 예보와 협약식 열며 민영화에 이름 올려
마무리 지었다고 하지만
'이미 끝난 딜'이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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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 이인무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그리고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금융 민영화 마무리라는 대대적인 홍보를 위한 우리금융-예금보험공사 주식양수도 협약 체결식 자리였다.
얼핏 보면 긴 여정의 마무리를 찍는 자리로 보이지만, 실상을 아는 사람들은 이미 끝난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 나오는 ‘쿠키영상’ 정도의 행사로 평가할 자리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자리에 없고,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영상을 만들었다는게 이색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 2016년 7월 한국경제학회 주관 한 세미나가 열렸다. 주제는 ‘국내 은행산업 경쟁력 제고와 금융회사 민영화 방안’이었다. 당시 세미나는 15년째 이어지고 있는 지지부진한 우리은행 민영화(우리금융지주 설립 이전)에 대한 성토의 자리였다. 당시 남주하 서강시장경제연구소장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 빠른 민영화, 국내금융산업 발전이란 세 가지 원칙은 모두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에 회수율은 매몰비용으로 생각하고 빠른 민영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매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 소개된 해외 사례에선 스웨덴의 노르디아은행, 호주 커먼웰스은행이 약 6년, 일본 리소나은행이 12년이 걸렸다. 이미 당시에도 세계 최장 민영화 기록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비판과 고심 끝에 우리금융 민영화의 돌파구가 마련됐다. 같은해 11월 드디어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한화생명, 동양생명, IMM PE, 미래에셋자산운용, 유진자산운용 등 7곳에 우리은행 지분 29.75%를 매각했다. 2001년 우리은행 민영화에 네번 실패한 이후에 이룬 성과였다. 당시 우리은행장은 이광구 행장이었다. 사외이사 추천권이라는 ‘당근’을 무기로 과점주주들을 초청한 전략이 15년째 막혀있던 우리금융 민영화의 물꼬를 튼 셈이다.
이후 과점주주들이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 독립경영이 가능하냐는 비판 속에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취임한다. 당시에는 금융지주 출범 이전이라 우리은행장으로서 ‘민영화’란 숙제를 떠안았다. 손 회장은 민영화 추진과 더불어 2019년 우리금융지주를 출범시키며, 4년2개월만에 다시금 은행에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에 성공한다.
더불어 2021년에는 새롭게 과점주주로 유진PE, KTB자산운용, 얼라인파트너스컨소시엄, 두나무 등 새로운 과점주주를 초청하며 사실상 완전 민영화를 달성하게 된다. 해당 매각 이후 예보 지분율이 10% 이하로 떨어지면서 예보의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 비상임이사 추천권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예보의 간섭에서 벗어난 ‘완전 민영화’를 달성한 셈이었다.
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 같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우리금융지주 출범 과정에서 우리은행은 자회사이던 우리카드가 우리금융지주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우리금융지주 지분 5.8%(상호주)를 떠안게 된다. 관련법에 따라 해당 지분을 6개월안에 우리금융은 해당 지분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작지 않은 지분 규모에 시간이 촉박했다. 여기에다 우리금융은 자본력을 갖추기 위해선 외부주주 초청이 절실했다.
이를 위해 지주와 은행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테스크포스팀이 꾸려졌고, 골드만삭스가 매각작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해당 딜에 물꼬를 트고 마무리 지은게 손 회장이다. 손 회장을 비롯해 지주 CFO 등은 푸본금융을 만나기 위해 대만으로 날아간다. 손 회장이 직접 푸본금융을 설득해서 푸본생명에 지분 4%를 매각한다. 당시 딜에 정통한 관계자는 “손 회장이 직접 딜을 발굴하고, 마무리 지었다“라며 ”금융지주 출범과 민영화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순간이었다“라고 회상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금융은 민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정부 관료 출신인 임종룡 회장이 올해 취임하고, 지난 5일 예금보험공사와 잔여지분 매각 업무 협약식이란 행사를 개최했다. 더불어서 우리금융은 “민영화의 마침표를 찍었다”라고 대대적으로 알렸다. 임 회장이 민영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무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주인공처럼 보이는 행사였다.
이를 두고 항간에선 임 회장이 업적이 필요하지 않았겠냐는 말이 나온다. 취임한 지 이제 반년이 되어가지만 임 회장의 치적이라고 할만한 일들은 아직까지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상반기 우리금융 실적은 ‘어닝쇼크’ 수준으로 떨어졌고, 4대 금융지주 중에서 가장 뒤쳐진 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임 회장에겐 민영화 업적이라도 간절했을 수 있겠다.
항간에는 딜 마무리를 자축하기 위한 기념물에 누구 이름을 넣어야 하느냐 하는 고민도 들려온다. 현재 권력이라면 임 회장을 넣어야 하지만, 그 이름이 걸맞은지에 대한 의문 때문일 것이다.
끝나지 않을 거 같던 영화는 끝이 났다. 하지만 긴 민영화의 진짜 마침표를 찍은 주인공들은 씁쓸한 입맛을 다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랜 시간 민영화를 간절히 바란 임직원들에게도 이번 ’쿠키영상‘은 감동도 재미도 없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