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못한 고금리 장기화로 내년 경기전망 불확실성 ↑
'기업대출 늘려야 하는데'...규제 속 BIS 비율 사수 '과제'
-
고금리가 예상외로 길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내년도 사업계획서를 준비하는 은행들은 분주한 분위기다. 경기전망이 반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으로 경기 불확실성이 커진 영향이다. 중장기적으로 기업대출을 늘려야하지만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만만치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의 각 사업부서는 내년도 사업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은행도 여타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3분기까지의 실적을 한해의 유의미한 영업지표로 삼는다. 3분기까지의 영업 환경이 4분기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해 실적이 예측 가능하고 내년도 자산성장 목표치 등을 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세계적으로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경영계획 수립이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당초 하반기 금리 인하를 전제로 은행권의 충당금 부담이 감소하고 건전성 이슈가 개선될 것으로 봤지만 금리 방향성을 예측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도 고금리 장기화로 예상했던 '그림(?)'이 틀어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내년도 경영계획을 수립하기에 굉장히 애매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라며 "지금이 금리 고점이라는 인식이 많지만 유지 기간이나 금리 향방에 대해 현재로선 쉽사리 말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금리인하를 전제로 내년도 은행권 이익이 소폭 증가할 것으로 봤는데 이젠 그림(전망)이 옅어졌다"라고 말했다.
올해 시중은행들은 너도나도 기업금융 강화를 외쳤는데, 경기불확실성으로 건전성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커졌단 분석이다. 지난 수십년간 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에 힘입어 성장했지만 정부가 가계대출 관리 강화 기조를 보이고 금리 상승으로 수요가 늘자 '기업금융'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기업대출의 경우 정부가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옥죄지 않고 있어 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실제로 하나은행은 올 상반기에 기업대출 비중을 크게 늘리며 리딩뱅크를 차지했다. 하나은행은 상반기 기준 1조844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27억원 차이로 KB국민은행(1조8419억원)을 따돌렸다.
-
문제는 전쟁발발·환율 상승 등 거시경제 불안요소가 산적하여 국내 기업들의 이익체력 불확실성도 커졌다는 점이다. 제조업의 생산·수출 회복에 힘입어 경기반등 조짐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이스라엘·하마스 간 무력충돌로 지정학적 불안은 고조되고 있다. 국제 유가가 추가로 상승하면서 국내 경기 회복이 늦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7월 기준 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 추이를 보면 기업대출 연체율은 0.41%로 집계됐다. 코로나19가 유행했던 지난 2020년 7월(0.44%)과 유사한 수준으로 코로나 팬데믹 상황만큼 빚을 갚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내년 경기 전망이 안좋은 시나리오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은행들의 건전성 부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내준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내년 경기 환경에 대한 걱정이 많다. 한국과 미국간 기준금리 차이가 크기 때문에 국내 기준금리가 추가로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상대적 저성장 구간에 들어간 것도 수출 하는 기업 입장에선 걱정되는 것"이라며 "올해는 건전성 이슈가 크게 부상하지 않을 것으로 보지만 내년은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불투명하다"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경기대응완충자본과 스트레스완충자본을 적립하도록 의무를 부과할 예정이어서 각 은행의 건전성 관리 부담은 심화될 예정이다. 금융당국이 건전성 허들을 높일 경우 KB금융을 제외한 3개 주요 금융지주(신한·하나·우리)가 당장 건전성 관리에 목을 메야될 것이란 시선까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내년부터 경기대응완충자본이 1%P씩 부과된다. 이미 예상된 일로 큰 부담은 아니지만 추가적으로 의무가 부과될 스트레스완충자본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만약에 스트레스완충자본 적립 의무가 2.5%P에 달한다면 BIS기준보통주자본비율 최소 충족 조건이 11.5%다. 금융당국의 기조상 최소 충족 조건에 버퍼를 요구한다면 건전성 마지노선이 13%까지 올라가는데 이를 충족할 수 있는 금융사는 사실상 KB뿐이다"라고 말했다.
대손충당금을 얼마나 쌓을지, 자산을 얼마나 늘릴 수 있을지에 대한 은행권의 고민이 한층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보다 대손충당금을 늘린다면 내년도 이익 수준이 감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선언한 우리금융과 공격적으로 중소기업대출을 늘린 하나금융의 향후 행보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