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안 모이는 K-바이오백신 펀드
국가 핵심전략 산업이라지만 "체감 어려워"
"국내에선 답 없다" 해외로 떠나기도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바이오 '암흑기’다. 국내에서 신약 개발 소식은 요원하고, 돈은 말라가는데 투자자들은 바이오 기업에 등을 돌렸다. 그나마 '생산 공장'으로 실적을 내는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만 주목받는 실정이다.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테크 기업은 '돈 먹는 하마' 신세로 전락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3년 연간 매출 전망치(가이던스)를 기존 15~20%에서 20% 이상으로 상향했다. 매출액 가이던스는 3조5265억원에서 3조6016억원으로 751억원 늘었다. 이번 가이던스 상향은 지난 4월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매출액 예상 상승률을 지난 전년 대비 10~15% 증가에서 15~20%로 상향 조정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매출 전망치를 올린 결정적인 이유는 신약 개발이 아니라 빅파마의 대형 CMO 계약으로 4공장 가동률 상승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글로벌 톱 빅파마 20곳 중 14곳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수주 규모는 누적 2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주액을 달성한 2020년 기록(약 1조9000억원)을 올해 반년 만에 경신했다.
이외에도 높은 매출을 기록한 대다수 상위권 바이오 기업은 글로벌 제약사에서 도입한 신약 덕분이다. 국내에서 신약이나 후보물질은 자취를 감췄다. 소위 대박을 터뜨릴 신약 후보 물질은 이미 글로벌 제약사가 독점하고 있다. 코로나 백신·치료제 개발 업체도 엔데믹 이후 동력을 잃었다.
국내 바이오 업계는 30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개발 역량을 쌓았다. 그러나 신약 개발 성공률은 극히 희박하며, 신약 개발(임상 단계~허가 승인)에 걸리는 시간은 약 10년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 기업은 1999년 선플라주(항암제)를 시작으로 2022년까지 총 36개의 신약을 개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작년 의약외품 생산업체 수는 1113곳이다.
-
투자자들은 사실상 신약 개발 소식을 기다리는 데 지쳤고 더 이상 '기약 없는'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기관들은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회수(엑시트)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오히려 지분 매각을 검토하기도 한다. 바이오 기업은 회사채나 기업어음(CP)도 발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술특례상장을 통해 증시에 입성한 바이오 벤처들은 결과물은 내지 못하고 있는데, 연구개발(R&D) 및 임상 등으로 보유 현금은 마르고 있다. 일부 기업은 관리종목 지정 위기에 놓여 상장폐지의 갈림길에 서있다.
정부는 바이오헬스 분야를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형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해 과감한 '혁신'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작년 8월 윤석열 대통령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이오헬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26년까지 13조 원의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는 바이오헬스 혁신 방안을 마련했고, 5000억원 규모의 백신 펀드 조성계획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5000억원 조성을 목표로 했던 'K-바이오백신 펀드'가 투자자(LP) 모집에 난항을 겪어 결성 시기가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올해 2월 결성하려던 펀드는 투자금이 제대로 모이지 않아 수차례 조성이 지연됐다. 미래에셋벤처투자와 유안타인베스트먼트가 각각 2500억원씩을 조성할 운용사로 선정됐으나 미래에셋벤처투자는 자금 모집에 실패하고 운용사 자격을 반납했다.
유안타인베스트먼트는 여전히 LP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에셋벤처투자를 대신할 운용사로 프리미어파트너스가 선정됐으나 펀드 규모는 1500억원 수준으로 규모가 1000억원 축소됐다. 정부는 나머지 1000억원도 추가로 운용사를 선정해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신약 개발과 바이오산업 육성 등을 지원하는 보건복지부 R&D 예산은 축소됐다. 지난 9월 발표된 2024년 보건복지부 예산에서 '제약산업 육성지원' 예산은 359억원으로, 2023년 446억원 대비 19.5% 감소했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에 배정되는 예산은 57%가 줄어들었다.
업계에서도 정부의 지원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인력 이탈 '러시'도 이어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책을 살펴보면 국내 바이오산업의 근본적인 개선보다는 불난 집에 불 꺼주는 정도에 그친다"며 "이미 국내 연구소의 연구 인력들이 해외 바이오 기업이나 국내 일반 대기업으로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오산업은 타 산업 대비 R&D 투자비 비중이 높은 기술집약적 산업이다. 예산 삭감, 투자 회피 등으로 자금이 '수혈'되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바이오산업은 성장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이미 상대적으로 자금이 넉넉한 대기업 계열의 바이오 기업도 안정적 실적을 위해 쉽사리 신약 개발에 나서지 못하고 CDMO로 몸집을 불리는 상황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K-바이오는 점점 내실이 비어가고 있다"며 "그나마 '희망 회로'를 돌리자면 글로벌 비만 치료제 등의 테마로 엮여 수급이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금이 순환하며 투자도 다시 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