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매자 무리 않겠다 기류 속 예가 산정에 이목
예가 낮아야 성사 가능성 커지지만 명분은 희석
인수자 우려 계속…예가 높이면 매각은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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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매각을 둘러싼 공기가 점차 바뀌고 있다. 초기만 해도 인수 후보들이 HMM 몸값을 부담할 수 있겠느냐는 시선이 많았지만, HMM 주가가 하락하면서 이제는 자금 조달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무리한 금액을 써낼 이유가 없어졌다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산업은행은 HMM을 반드시 매각한다는 의지인데 ‘예정가격’을 어떻게 정할지 고민이 깊어질 상황이다. 상장사의 경영권 매각 거래니 시가에 프리미엄을 얹어 예가를 산정해야 하는데 주가 하락세가 부담스럽다. 당초 기대치를 반영하자니 후보들이 감수하기 어렵고, 너무 낮은 가격을 정하자니 투자금 회수나 매각의 당위성 면에서 아쉬운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19일 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HMM 매각 본입찰은 내달 24일 치러진다. 당초 본입찰 예정일은 17일이었으나, 사전에 1주일가량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수후보들에 알린 바 있다. 현재 하림그룹과 동원그룹, LX그룹이 각각 자문사를 선정해 인수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갖고 있는 HMM 구주와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한 물량까지가 이번 매각 대상이다. 총 4억주 가량으로 전환권 행사 후 지분율은 약 57.9%에 이른다. HMM 주가가 2만원, 시가총액 10조원을 오갈 때는 이 지분 가치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 7조원에 이른다는 평가가 있었다. 잠정 예상치긴 하지만 산업은행도 9월 국회 보고 당시 HMM 매각가를 7조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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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예상 몸값은 주가를 따라 점차 하락하고 있다. 최근 HMM 주가는 1만5000원 수준을 오가고 시가 총액도 7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현 시가총액에 향후 확보할 지분율을 적용하고, 20~30% 안팎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해도 5조~5조5000억원 정도에 그친다.
한 때 6조~7조원 기준으로 자금 마련을 고심하던 인수후보들의 분위기도 전과 달라졌다. 굳이 많은 돈을 쓸 이유가 없고 차입 부담도 줄었다는 것이다. 경쟁사를 의식해 몸을 웅크리는 연막작전일 수도 있지만 전보다 자금 부담이 줄어든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돈을 못 모아서 인수를 못할 상황은 아니고 얼마를 쓰느냐가 고민의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문제는 파는 쪽의 생각이다. 해양진흥공사는 HMM 매각을 무리할 이유가 없다는 기류가 있지만, 목소리가 더 큰 산업은행은 반드시 매각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끝까지 매각 절차를 진행한다면 파는 사람이 어느 정도 이상의 값을 정하느냐가 가장 중요해진다.
국가나 산업은행, 공사 등 ‘나랏일’을 하는 곳들은 자산을 팔 때도 국가계약법의 적용을 받는다. 낙찰자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최저 가격의 마지노선(예가)을 미리 정해놔야 한다. 예가 이상의 금액을 써낸 곳들이 있어야 유효경쟁이 성립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매각이 유찰될 수 있다. 비가격적 요소도 평가 기준에 담기지만, 가장 절대적인 평가지표는 가격이다.
매각 대상이 비상장 기업이거나 부실 기업의 경우엔 매각자가 예가를 산정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유연성이 부여되지만, 시가가 있는 상장사는 다르다. 거래의 정당성이 문제되지 않기 위해선 예가를 적어도 시가 이상으로 정해야 하고, 경영권 지분 매각이라면 그에 따르는 프리미엄도 얹어야 한다. 사안마다 다르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은 20~30% 수준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 과점주주 방식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 민영화 때에도 주가가 예가 산정의 기준점이 됐다. 당시 완전한 경영권 매각 방식이 아니고, 대규모 물량 매각에 따른 할인 요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시가에 최소한의 프리미엄은 얹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비밀 유지를 위해 본입찰 마감 시간과 맞춰 예가를 정했는데, HMM 역시 본입찰 직전 가격이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은 자본비율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HMM 매각 성과가 필요한 상황이다. 매각 자체가 목표라면 지지부진한 주가에 많지 않은 프리미엄을 얹는 선에서 예가를 산정하면 된다. 인수 후보들의 체력과 M&A 이후의 재무 부담을 감안하면 몸값을 낮추는 것이 매각 성사 가능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본격적으로 침체 국면에 접어드는 해운업황도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이 경우 정부와 국책은행의 지원으로 살려낸 HMM을 헐값에 판다거나 인수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가뜩이나 해운업계와 HMM 노조 등에선 인수후보들이 해양 인프라 확충에 쓸 돈을 배당으로 빼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후보들이 예가보다 낮은 금액을 써내 유찰되는 것도, 예가를 살짝 넘는 금액을 제시하는 것도 난처할 수밖에 없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부 인수후보는 5조원 이상은 쓰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는 데 이래서는 매각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예가를 높일 경우에는 거래가 더 어려워진다. 지금까지 HMM에서 받은 이자와 배당으로도 어느 정도 자금 회수를 했지만, 본 게임인 이번 매각 성과가 가장 중요하다. 한번 높아진 기대치를 대폭 낮추기는 쉽지 않다. 관 주도의 일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산업은행은 이왕 매각에 나섰으면 예가를 높여 최대한의 성과를 내야 하고, 인수자는 그에 화답하는 결단을 내려야 명분과 당위성이 선다는 것이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HMM의 사업이 매우 매력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파는 입장에서는 예가를 높여서 진행하려 할 수도 있다”며 “공적자금 회수 성격의 거래기 때문에 객관적 가치보다는 기업이 결단해서 매각자에 명분을 주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후보들이 저마다 M&A 후 시너지 효과를 강조하지만, 업황이 침체되는 상황에서 대형 국적 선사를 장기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글로벌 해운업 지형도가 바뀌면서 HMM이 홀로 영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선박 발주, 해운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산업은행의 자본비율이나 HMM의 민영화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자금 완충력이 있는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상황이 이러니 일각에선 예가가 거래 중단의 장치가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 해운업계 전문가는 “매도자의 의사에 따라 매각 절차를 중단할 수 있다고 알리긴 했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그러기는 쉽지 않다”며 “매도자가 가격 등 평가 기준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매각을 진행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