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시점 불투명…투자 회수 지연 가능성도
최근 LP 회수 압박 거세…인력 이탈도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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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PEF) 운용사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 과정에서 불거진 사법 리스크가 알짜 포트폴리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카카오엔터)의 회수 전망도 어둡게 하고 있다. 관련 사안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고서는 IPO(기업공개) 시점을 장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마켓컬리 등 한국 주력 포트폴리오들이 사실상 투자 실패를 겪으며 자금 회수 압박도 거세지고 있어, 앵커PE의 고민이 더 깊어질 전망이다.
올 상반기 카카오가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서 시세조종에 나섰다는 의혹을 조사해 온 당국이 최근 본격 칼날을 빼들었다. 19일 서울남부지법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금융감독원은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 센터장에게 소환을 통보했다. 당국은 카카오가 사모펀드 운용사(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시세조종성 대량매수에 나섰던 정황을 문제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SM엔터 M&A 과정에서 카카오 측의 ‘범법행위’가 이뤄졌을 수 있다는 개연성이 커지는 분위기다. SM엔터 인수 주체인 카카오엔터의 미래, 앵커PE 등 투자자들의 회수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앵커PE는 2016년 카카오의 콘텐츠 자회사였던 포도트리에 1250억원을 투자했고 2020년 카카오엠에 2098억원을 투자했다. 포도트리가 사명을 변경한 카카오페이지와 카카오엠이 2021년 합병 후 탄생한 카카오엔터의 2대 주주가 됐다. 카카오엔터는 2019년부터 상장을 추진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상장이 늦어지며 앵커PE가 기대하는 카카오엔터 몸값도 높아지게 됐다.
카카오엔터는 올해 1월 ‘빈살만 펀드’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국부펀드(PIF)와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부터 프리IPO 형식으로 1조20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다. GIC는 앵커PE의 주요 출자자이기도 하다. 카카오엔터는 이들과 수년 내 상장을 약속했다. 이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에는 본격적인 상장 작업이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SM엔터 인수 역시 상장 전 ‘몸집 불리기’란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카카오엔터의 상장 시점도, 사법 리스크가 어디까지 번질 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즉 앵커PE의 투자 회수 타이밍도 확신할 수 없게 됐다. 상장지로 한국을 원하든 미국을 원하든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바디프랜드 사례처럼 대주주 관련 이슈가 생기면 거래소가 상당히 심각하게 내용을 살피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진 사실상 상장 작업은 '올스톱' 된다"며 "미국 당국은 한국 기업의 위험 요소는 한국 당국의 판단에 주로 의존하지만 마찬가지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 증시 입성도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앵커PE는 카카오엔터 외에도 투자 회수가 늦어지고 있는 국내 투자 포트폴리오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아픈 손가락’은 마켓컬리다. 앵커PE 2021년 마켓컬리에 프리 IPO(상장 전 지분투자)로 2500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앵커PE 마켓컬리의 기업가치를 4조원으로 책정했다. 그러나 마켓컬리가 IPO에 실패하고 사업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기업가치는 1조원 내외로 급락했다. 컬리의 자금 압박이 커지자 앵커PE는 1000억원을 추가 투입했지만 여전히 회수 묘책은 보이지 않고 있다.
2022년에 1500억원을 투자한 두나무도 손실 구간에 들어왔다. 앵커PE는 당시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기업가치를 15조원으로 평가해 지분 1%을 확보했다. 이에 앵커PE가 투자 업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살 때도 있었지만, 가상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두나무의 기업가치는 현재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다수의 투자 건에서 부진하자 앵커PE에 출자한 해외 LP들의 불만이 커졌고 최근 회수 압박도 강해지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이에 최근 앵커PE는 다수의 포트폴리오 기업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카카오엔터 지분 일부를 매각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외에 메타엠, 엔코아, 단비교육, 교육지대 등 다수 포트폴리오 기업도 매물로 나와 있다. 최근엔 식자재기업 데일리푸드홀딩스도 인수 7년 만에 매각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아직까진 괄목할 회수 성과는 나타나지 않는 분위기다.
앵커PE는 최근 인력 이탈이 이어지며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PEF에서의 인력 유출입은 흔한 일이지만 투자 성과가 마땅치 않다 보니 내홍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앵커PE는 운용 규모가 비슷한 PEF 사이에서도 인력 규모가 큰 편에 속했는데, 상반기부터 1호 펀드 청산이 난항을 겪으며 파트너급은 물론 실무진들도 이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앵커에쿼티가 펀드 청산 후에 한국 법인을 철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에서 더이상 존재감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고민을 할 만한 상황이다. 다만 '한국 사업이 주력인 회사가 한국을 떠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의아한 반응도 나온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이 전반적으로 부진하긴 하지만 앵커PE는 특히 대부분의 포트폴리오 상황이 좋지 않다”이라며 “카카오엔터가 성장성이나 가치 측면에서 긍정적인 전망이 많았는데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면서 그마저도 회수 시점을 확신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