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 시총 9조 증발…2차전지株 일제 '폭락'
전방불안·정책변화 등 내포된 함의 적지 않은 까닭
국내 2차전지株만 '딴 세상' 모순 누적된 상황에
당분간 조정 이어질 전망…투자사 불안도 커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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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이 "내년 매출 성장률은 올해만큼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놨을 뿐인데 국내 2차전지 상장사 주가가 일제 폭락했다. 늘어나는 우려에 솔직한 입장을 밝힌 것이지만, 시장 내 누적되던 2차전지 기업 가치 회의론엔 일종의 신호탄이 됐다. 올 한해 '스치면 날아가던' 2차전지 상장사 주가를 위태롭게 바라보던 측은 드디어 제 값을 찾아갈 때가 됐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25일 이창실 LG엔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한 기관투자자가 4분기 및 내년 전망을 묻자 "메탈가 하락은 시차를 두고 판가에 계속 영향을 줄 것이고, 내년 주요 시장 경기 둔화 및 고금리로 인한 구매심리 위축, 북미 대선과 일부 OEM의 전동화 속도조절 문제로 매출 성장이 올해만큼 크진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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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회를 마친 뒤 LG엔솔 주가는 하락세를 거듭해 전일보다 8.7% 떨어진 40만9500원에 마감했다. 줄곧 100조원을 웃돌던 시가총액은 9조원 이상 증발해 95조원으로 줄었다.
장 마감까지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 상위에 늘어선 2차전지 관련 상장사 주가가 줄줄이 미끄럼을 탔다. 7.19% 하락한 삼성SDI는 시총 1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5.67% 하락한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 SK온 몸값의 반 토막이 됐다. 코스닥 대장주인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도 각각 8% 이상 폭락했다.
이날 LG엔솔이 내놓은 '내년 사정이 올해 같지 않을 것'이란 한 마디에 숨겨진 함의가 적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배터리 셀부터 소재, 원재료 시장까지 2차전지 밸류체인은 전방 전기차 없이 성립할 수 없고 ▲아직은 각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과 보조금이 필수적이며 ▲매출·수익성 등 지금까지의 가정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최대 전기차 시장이던 유럽 지역은 지난 연말부터 둔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올 들어 그나마 북미 시장이 바통을 이어주곤 있지만 현지 진출한 전기차 기업은 전동화 전환 속도 조절을 시사하거나 신차 출시 일정을 미루고 있다. 고금리·소비심리 둔화로 가격 인하 경쟁을 이어가기 힘든 탓도 있지만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이 불투명해진 영향이 적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는 현지 증설부터 전기차 판매까지 보조금을 제공하는 사실상의 '전주(錢主)'로 통한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액공제는 5~6% 남짓한 셀 기업 마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약속한 세액공제 혜택을 무를 순 없겠지만 이미 완성차 기업이나 셀 기업 모두 미 대선 결과에 따른 '플랜 B'를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파업에 들어간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전기차·셀 기업 근로자 임금의 동반 인상까지 주장하고 있다. 현실화 여부를 떠나 하나 둘 늘어나는 변수 모두가 전방 전기차 기업과 배터리 셀 기업 수익성에 악재로 풀이된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에도 기준금리가 치솟으며 미국 현지 증설비 부담이 15~20% 이상 뛰자 셀 3사 모두 기존 계획을 검토했었다. 지금까지 확보한 캐파 만큼을 더 지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여기서 인건비, 운영비가 추가로 더 오를 수 있다면 비용 문제나 투자효율을 또 다시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투자업계에선 이미 작년부터 공공연히 거론된 우려이기도 하다. LG엔솔이 상장 이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SK하이닉스보다 높은 몸값을 인정 받고, 분기 3조원을 버는 글로벌 3위 전방 완성차 기업 현대자동차 주식이 후방 셀·소재 기업보다 싸게 거래되는 모순이 반복된 탓이다.
투자업계 다른 관계자는 "가령 전동화 전환 경쟁에서 탈락한 OEM이 한 곳만 나와도 뒷단에 늘어선 셀, 소재 기업 수주는 통으로 날아간다. 2차전지는 수주 사업이라 D램, 낸드처럼 남의 제품을 가져다 쓰거나 다른 고객사에 팔 수 없다"라며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전방 시장이 차를 못팔고 수익을 남기지 못해 고심에 빠졌는데 이들을 고객사로 둔 국내 상장사 주가만 고공행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부터 지속된 리튬·니켈 등 메탈가 하락으로 인한 판가 조정 우려는 전기차 기업이나 각국 정부 정책 등 전방 사정에 비하면 한가한 걱정이었단 평까지 나온다.
그간 2차전지 관련 기업은 메탈가 하락으로 인한 판가 조정, 재고평가손 등 래깅 효과에 대해 '매출액 외 장기 수익성엔 영향이 제한적'이란 입장을 고수해 왔다. 판가가 떨어져도 마진은 유지할 것이란 얘기인데, 이 역시 장담하기 어려운 가정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 CFO는 이날 미국 UAW 파업으로 인한 영향에 대해 "당사 수익성에 영향이 없을 거라 보지만 파업이 장기화하거나 임금이 오르면 OEM사 수익성에 영향을 주며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걱정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당분간 국내 2차전지 상장사 전반 조정이 이어질 거란 전망이 많다. 이들 기업이 천조원을 웃도는 수주잔고를 기반으로 셀 기업부터 소재사까지 증설만 거듭하면 6~7% 수익성을 남길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수년 뒤 실적까지 당겨 반영하며 몸집을 키워 온 탓이다.
조정이 길어질 경우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비를 마련해야 하는 비상장 2차전지 기업이나 주가 상승 여력에 기대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등 메자닌을 발행한 상장사나 투자자 역시 주름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