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에 사고 시 출자 제한 내용 담을 가능성도
“누가 거부할 수 있나”…과도한 영향력 행사 지적도
운용사 판단에 책임 묻는 기조는 점차 강화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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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연금의 사모펀드(PEF) 출자 기조가 더욱 깐깐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문제가 발생한 운용사(GP)의 자금집행 요청(Capital call)에 응하지 않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당장 국민연금이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더라도 GP 관리 체계는 보다 체계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이 전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안정성을 갖추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국민연금의 PEF 출자 사업은 예년보다 더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국내 기관출자자들의 자금 사정이 더디게 풀리면서 주요 GP들이 돈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국민연금 출자사업의 경쟁 강도는 세질 가능성이 큰데, GP에 요구하는 출자 조건 기준도 강화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자본시장에선 각종 증권 사기, 주가 조작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과 수사당국도 금융·경제 범죄들을 엄격하게 살피고 있다. 가장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도덕성을 요구받는 국민연금도 몸을 낮추고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할 상황이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기껏 공을 들여 선정한 GP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가장 부담될 수밖에 없다. 사전적으로 심사를 강화하고, 사후적으로는 중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 벌칙을 강하게 부과하는 안을 고려할 만하다. 최근에는 그 수단 중 하나로 국민연금이 GP의 자금 출자 요청에 응하지 않는 방법이 거론되기도 했다. PEF 해산이나 기존 출자금 회수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PEF 역사가 오래된 해외에서는 핵심 운용인력이 범법 행위를 할 경우 투자자 합의로 자금을 추가로 출자하지 않거나 PEF를 해산시키는 방안을 정관(LPA)에 담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도 이와 유사한 조항을 정관에 담기긴 하지만 관련 사례가 적어 실체적 효력이 있느냐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국민연금 역시 올해 출자사업을 하며 이런 내용들을 정관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고민에 대해 PEF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문제 GP에 돈을 주지 않겠다는 내용을 정관에 넣자고 하면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다른 출자자(LP) 동의 절차가 있더라도 사실상 국민연금의 재량에 GP의 명운이 갈릴 가능성이 크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에서 GP가 징계를 받거나 사고를 냈을 때 추가 출자를 않겠다고 하면 GP 입장에서는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앞으로 어느 수준까지 정관 내용을 강화하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이전보다는 깐깐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크다. 국내외 투자시장의 경기가 좋지 않고 국민연금의 투자 및 손실에 대한 감시의 눈이 많기 때문에, 사전에 문제 해결 권한을 확보하고자 할 것이란 지적이다.
꼭 출자의무에 대한 것이 아니라도 여러 조건들이 빡빡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를 들어 출자 요청액보다 자금을 덜 썼을 때는 높은 이자를 붙여 돌려줘야 한다거나, 거래 실패 시 실사 비용을 PEF 자금이 아닌 GP가 상당부분 떠안도록 하는 식이다. GP의 판단에 더 큰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다른 PEF 업계 관계자는 “요즘 국민연금은 투자자로서 GP에 상당히 빡빡한 요구를 하는 분위기”라며 “GP 입장에선 그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자기 책임이 아닌 사유로 발생한 문제에까지 이를 적용하면 어쩌나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핵심운용인력이 범법행위를 했을 때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PEF 정관들을 살펴 보기는 했지만 당장 확정된 내용은 없는 분위기다. 아울러 정관은 다른 LP와 GP들이 합의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마음대로 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는 PEF 운용역이 범법행위를 한 사례가 별로 없어 실제 정관에 출자 문제를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애매하다”며 “다만 문제가 됐을 때를 대비해 정관에 반영할 필요는 있고, 그 경우 출자자 전체 또는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건이 담기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