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들 매각·리캡 등으로 회수 성과 부각 분주
회수 성과 있는 곳이 대부분 출자사업 따내
선택지 늘고 관리 깐깐해진 LP 기류도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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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기관투자가(LP)들이 사모펀드(PEF)를 보는 시선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PEF는 대체투자에서 필수 불가결한 영역으로 여겨졌었고 유력 운용사(GP)에는 돈이 몰려들었지만 이젠 분위기가 다르다. 고금리에 유동성 긴축이 장기화하면서 LP들은 뿌린 돈을 제대로 거둬들일 수 있을지,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수 없이 출자 없다’는 명제에 갈수록 힘이 실릴 전망이다.
올해도 주요 기관들은 PEF 출자를 이어갔지만 분위기는 예년과 달랐다. 전통 자산을 보완한다기 보다는 빈티지(vintage)의 연속성을 이어가야 한다는 고민이 더 엿보였다. 출자 규모와 선정 GP 수를 줄이거나, 출자 리그를 통폐합하는 기관이 적지 않았다. 대형 GP의 주목도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주요 출자사업 역시 으레 받을 만한 곳들이 따냈는데 그 과정이 간단치는 않았다.
기관들은 유동성이 넘칠 때는 GP의 ‘이름값’에 주목했다. 회수 걱정이 크지 않다 보니 얼마나 주목도 높은 거래에 참여했고 운용 규모가 얼마인지가 더 중요했다. 그러나 PEF 시장이 위축되고 대형 거래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는 실제로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 GP인지를 깐깐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IMM PE가 대표적이다. 작년부터 블라인드펀드 결성에 나섰지만 에이블씨엔씨, 한샘 등 부진에 고전하면서 LP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유동성 위기에 빠진 LP들이 자금을 얼마간이라도 회수해달라 요청했다. IMM PE는 올해 에어퍼스트 소수지분 매각을 성사시키며 LP들에 만족스런 회수 성과를 안겼다.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 사업을 따내는 성과로 이어졌다. 출자사업을 따낸 다른 GP들도 대부분 회수 성과가 우수한 곳들이었다.
올해 한 기관투자가 출자사업에선 정량평가에서 최고점을 차지한 GP가 탈락하며 주목 받았다. 그간의 투자 성과나 포트폴리오의 투자 평가액 면에서는 경쟁사를 앞섰지만, 이제까지 회수 성과가 마땅치 않고 앞으로도 회수 시기를 점치기 어렵다는 점이 발목을 잡혔다.
한 기관 관계자는 “당장 대형 포트폴리오의 가치를 따지면 평가액이 크게 잡히겠지만 좋은 자산이라도 오래 묶이면 내부수익률(IRR)이 떨어진다”며 “적당한 때가 되면 돈을 회수해줘야 다시 출자를 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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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요 PEF들이 적극적인 회수 움직임에 나선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투자시장 침체가 길어지며 PEF가 자산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이제는 많은 곳들이 다양한 자금 회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 출자 사업을 따낸 운용사 대부분 회수 성과도 좋았다. VIG파트너스는 프리드라이프, IMM PE는 제뉴원사이언스 회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올해 대경오앤티, 맥쿼리자산운용은 SK쉴더스 소수지분 매각 성과를 냈다. 어펄마캐피탈은 인도 여행플랫폼 TBO 일부 회수에 성공했고, 장기 포트폴리오인 매드포갈릭 매각도 진행 중이다.
한앤컴퍼니는 최근 주력 포트폴리오인 에이치라인해운과 쌍용C&E 인수금융 자본재구성(리캡)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차입 금리가 2%포인트 안팎 올랐다. 금리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당장 LP에 자금을 돌려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란 평가다. CVC캐피탈도 여기어때 인수금융 리캡을 추진하고 있다.
해외 운용사 중에선 블랙스톤이 지오영, TPG가 녹수를 매각 중이거나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MS PE는 연내 전주페이퍼를 매각할 예정이다. 아시아에서 한국 시장의 중요성이 부상하면서 한국에서의 회수 성과도 중요해졌다. 국내외 LP 할 것 없이 회수 성과에 집중하면서 펀드 자금을 모집하기 쉽지 않아졌다는 평가다.
예전엔 하나의 블라인드펀드를 한 번에 개시하거나 오래 걸려도 몇 개월 안에는 내놓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전에 받은 자금을 돌려주고 나서야 다음 출자를 요청할 수 있는 분위기라 펀드 결성이 장기화하고 있다. 펀드 규모도 직전 빈티지보다 줄어드는 사례가 나타난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기관들이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GP가 한 번에 자금을 받기 어려워졌고 길게는 2~3년에 걸쳐 멀티 클로징(추가 증액)을 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예전엔 펀드마다 규모를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규모가 줄어들어도 부끄러운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체투자 시장의 기류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엔 지분(Equity) 투자를 통해 수십%의 IRR을 기록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제는 사모대출(Private debt)로도 10% 이상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보니 지분 투자에 목맬 이유가 없다. 회수에 난항을 겪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대기업이 수익률을 보장하는 거래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한 PEF 운용사 대표는 “대형 GP들은 회수 성과 없이 추가 펀드만 결성하겠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올해 바쁘게 움직인 것”이라며 “일부 LP들은 여전히 대기업이 하방 위험을 막아주는 거래를 선호하지만 이런 거래는 펀드 IRR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어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당장 회수 성과와 수익률 외에 PEF 운영 방식에 대한 잣대도 엄격해지고 있다. 당장 큰 돈은 벌지 못할 거라면 사고는 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대형 기관은 GP 내부자의 비위가 있을 경우 자금요청(Capital call)에 응하지 않는다거나, 기존 출자금을 회수하는 방안 등을 정관에 담는 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GP 지배구조의 안정성을 개선하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관들의 GP 관리 체계는 시나브로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