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공정거래·노무 등 전 분야 형사 사건화
9월 검찰 간부 인사 후 공격적 영입 이어져
전관 영입 실효성 의문에도 경쟁 이어질 듯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형 법무법인(로펌)들이 형사그룹 역량 강화에 분주하다. 한동안 실적을 견인한 자문 부문이 주춤한 가운데 기업, 금융, 증권, 공정거래 관련 일들이 모두 형사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법무법인들은 작년부터 형사 관련 일감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검찰 전관 출신 영입에 공을 들였는데, 이런 분위기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김앤장법률사무소는 국내 첫 여성 공안검사로 대표 '공안통' 서인선(사법연수원 31기) 전 서울북부지검 인권보호관을 영입했다. '기획통' 고필형(31기) 전 김천지청장도 김앤장에 합류했다. 광장은 반부패수사 및 금융수사 전문가인 조성윤 전 부산지검 동부지청 부부장검사(38기), 태평양은 대표 '형사통'서울고등검찰청 공판부장(차장검사) 출신인 박지영 변호사(29기)를 각각 영입했다. 화우엔 '금융 특수통'인 김형록(31기) 전 수원지검 2차장검사와 금융 및 특수수사 전문인 최종혁 전 대구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가 합류했다.
일부 대형 로펌들은 연내 검찰 출신 전관을 추가로 영입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9월 검찰의 중간 간부 인사가 발표되기 전부터 대형 로펌들의 치열한 물밑 접촉이 시작되기도 했다. 예상보다 많은 30명 가까이 인사가 사직 소식을 전하면서 추가 영입 여지가 남은 상황이다.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재의 경우 다수의 로펌이 영입을 제안하는 분위기로 전해진다.
로펌들의 검찰 간부 전관 영입은 매년 치열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작년에도 경제범죄와 특별 수사에 정통한 차·부장급 검사 영업 경쟁이 뜨거웠다. 아직 네트워크와 영향력이 남아 있는 검찰 출신 인사가 형사 일감을 수임하고, 이후 법리 공방이나 소송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쏠쏠한 활약을 할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
다만 올해는 로펌들의 형사 부문 강화 열기가 더 뜨겁다는 평가다. M&A 등 기업 법무 분야 일감이 주춤한 영향이 크다. 통상 대형 로펌의 매출은 M&A 등 자문업무와 형사 등 송무 부문이 두 축인데, 팬데믹 종료 후 자본시장이 주춤하면서 자문 일감도 줄어들었다. M&A가 호황이던 2020~2022년 초와 달리 자문 인력 영입 경쟁도 시들했다. 내년엔 다를 것이란 관측도 있지만 기업과 투자사 모두 여전히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법률시장 전반의 일감이 줄어든 가운데 형사 분야는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예전엔 그룹 총수의 실형을 막는 '회장님 일감'이 주력이었다면, 이제는 전방위로 형사 관련 일감이 확장하는 모습이다. 대형 로펌 사이에서도 '올해는 형사로 먹고 살았다'는 자평이 많다.
로펌들은 금융감독당국의 제재, 민·형사 및 행정 사건에서는 양호한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작년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현 금융증권범죄 합동수사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가 다수 진행되고 있다.
이에 금융·증권 분야를 선점하기 위한 로펌들의 검찰 '금융통' 영입 전쟁도 이어지고 있다. 금융권 수사 강화 기조가 계속되면서 추가 영입을 고민하는 곳도 있다. 최근엔 금융감독원이 금융기관뿐 아니라 주가조작, 분식회계 등 재계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면서 기업과 관련된 '잠재 형사 일감'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일부 효과가 나타난 곳도 있다. 세종은 사법 리스크를 맞이한 카카오를 대리하고 있다. 올해 3월 영입한 김민형 전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장이 앞단에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변호를 맡고 있다. 세종은 카카오의 M&A 자문에서 두각을 보였는데, 실리는 이번 형사 일감에서 챙기게 됐다는 평가다.
한 대형 로펌 파트너는 "최근 자문 일감은 줄어든 반면 그 외 모든 영역의 일감은 형사화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며 "지난 수년간 가장 공격적인 영입 전략을 편 세종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 있었지만 카카오 창업자 일을 맡으면서 부러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소형 로펌도 전관에 관심을 두고 있다. 소형 로펌일 수록 시장 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전관의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는 분위기다. 매출 100억원 미만 로펌들은 전관 취업 제한 문제에서 자유롭다는 이점을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공격적인 영입 전략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힘이 있는 전관을 영입하려면 2~3년간 후한 조건을 보장하면서 영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관이 그만큼 일을 따오거나 실적을 내지 못하면 다른 파트너들의 배당 감소가 불가피하다. 로펌 경영진 입장에서도 작년 이후 영입한 인사들이 활약을 해줘야 명분이 선다.
내년엔 태평양, 화우, 세종 등 여러 로펌에서 새 대표변호사 임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자존심 싸움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앤장을 제외한 대형 로펌 간의 매출 격차가 줄어들면서 내년에도 형사 일감을 둘러싼 경쟁은 더 격화할 전망이다.